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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아삽의 시
설교본문 시 50:8-15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1-19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119n.mp3

20200119n

시 50:8-15

아삽의 시


(시 50:8-15, 개정)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은 전체가 150편인데 그 가운데 73편이 다윗의 시입니다. 그 다음이 아삽의 시입니다. 시편 73편부터 83편까지가 다 아삽의 시이고, 다 합하면 12편입니다. 본문 50편도 아삽의 시입니다. 아삽은 성전 성가대 지휘자였습니다. 다윗 왕 때 예루살렘 성전에는 성가대가 3개가 있었는데,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성가대 중 하나를 지휘했습니다. 다윗 왕 때 성가대는 제금, 비파, 수금, 나팔이 갖춰진 120명의 큰 악단이었습니다. 한 성가대 단원이 120명 정도였습니다. 아삽은 당대에 뛰어난 노래하는 자였을 뿐만 아니라 직접 작사 작곡도 했습니다. 역대상 25장과 역대하 29장을 보면 아삽은 선견자로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작시했다고 합니다. 시편 50편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기가 지휘한 성가곡이지만, 가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50편은 성가곡인데도 정서적이나 감성적이기보다는 과격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순을 지적하고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내용이 불편합니다. 


3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6절입니다.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아삽은 무엇을 지적하고 책망하려고 광풍이나 삼키는 불, 공의와 심판장을 말씀할까요?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식적인 제사입니다. 8절입니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안 드린 것은 아닙니다. 10절 이하입니다.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고 원하시는 것은 따로 있다고 하십니다. 14절 이하입니다.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형식적 제사, 의식이 아닙니다. 수소의 고기나 염소의 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에 목마른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제물로 하나님을 달래려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수소의 고기가 아니라 진심어린 감사입니다. 염소의 피가 아니라 서원한 것을 하나님께 갚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리고 형식과 의식만 남은 제사를 드린 겁니다. 번제는 다 태워 바치는 제사를 말하는데, 그것은 모든 것을 바친다는 헌신을 상징합니다. 번제물은 바쳐도 자기 존재를 바치는 희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책망할 때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형식이나 제물이 아니라, 그것들로 표현되는 우리의 중심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정신을 받으십니다. 이스라엘은 알맹이는 다 놓치고 껍데기만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삽이 하나님이 주신 영감으로 격렬하고도 신랄하게 책망하며 예루살렘 백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삽은 이스라엘의 형식적인 믿음을 고발했습니다. 17절 이하입니다.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주의 은혜와 율례를 달고 살면서도 그야말로 말 뿐인 믿음, 허울뿐인 신앙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마저도 자기들과 같은 존재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21절 상반절입니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주님의 분노를 삽니다. 


우리가 아무리 번제를 드리고, 주님의 율례를 입에 달고 살아도, 주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경건한 척 해도 주님은 우리를 다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여전히 잠잠하신 것은 우리에게 속아서가 아니라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속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속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예배며 믿음을 훤히 다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형식뿐인 죽은 제사인지, 정신이 살아 있는 산 제사인지, 우리의 믿음이 허울뿐인 죽은 믿음인지, 행함이 따르는 산 믿음인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본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더는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고, 감사의 제사와 행함이 있는 믿음을 회복하라는 경고입니다. 그렇게 하면 구원을 보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예배와 믿음에 있어서 외식이나 형식에 빠지기 쉽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나태해지고, 내성이 생기고, 무감각해집니다. 사고방식이 굳어져서 자칫 근본정신과 내용을 놓치기 쉽습니다. 정신을 차립시다. 올해는 무엇보다 예배의 정신을 회복합시다. 믿음의 진정한 내용을 회복합시다. 산 믿음을 되찾읍시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구원을 보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예배와 참된 믿음으로 올해는 주님의 큰 구원을 보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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