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설교제목 뭇랍벤에 맞춘 노래
설교본문 시 9:1-1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1-05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105n.mp3

20200105n

시 9:1-14

뭇랍벤에 맞춘 노래


(시 9:1-14, 개정)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시편 9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표제어는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뭇랍벤은 아들의 죽음이라는 슬픈 노래를 뜻합니다. 이 시를 그 비가의 곡조에 맞춰 부르라는 뜻입니다. 시편 9편의 곡은 슬픈데, 가사는 슬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문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감사, 기쁨, 즐거움, 찬송 같은 희망적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왜 이 노래를 굳이 슬픈 곡조인 뭇랍벤에 맞춰 부르라고 했을까요? 왜 아들의 죽음이라는 슬픈 가락에 맞춰 이 노래를 부르라고 했을까요?


당시의 삶이 슬퍼서 그렇습니다. 당시 삶이 이방 악인들 때문에 우울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시의 사정이 슬픈 현실이었기에 정작 시의 내용은 희망적입니다. 구원에 대한 기대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윗은 주를 기뻐한다, 즐거워한다, 찬송한다, 주의 기이한 구원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올해도 개인에 따라서는 현실이 뭇랍벤의 곡조처럼 슬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즐겁게 찬송할 수 있를 바랍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주께서 우리를 변호하시기 때문입니다. 4절입니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누군가 내 편이라는 것은 힘이 됩니다. 가족은 언제나 맹목적인 내 편입니다. 그래서 소중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가족보다 더 합니다. 누가 감히 자기는 외톨이라 하고, 우주의 고아라 하고, 혈혈단신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결코 천애고아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 삶 가까이에서 올해도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무조건 우리의 편이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켤코 외롭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가 그리스어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변호사가 파라클레토스입니다. 변호사 없이 재판받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딱합니까. 우리는 가장 능하고 탁월한 파라클레토스, 주님이 우리 편을 들어주고 계십니다. 필요하면 나서서 적극적으로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새해에도 주님이 우리를 변호해 주시고, 아낌없이 우리 편을 들어주십니다. 어떤 송사든 결국 우리가 이깁니다. 그래서 우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새해에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부디 새해에는 우리를 변호해주시는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4절 하반절입니다.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8절 상반절입니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우리는 세상이 불공정함을 경험할 때 가슴이 쓰립니다. 세상이 가장 공정하다고 여기는 데가 법정입니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법이 공정합니까? 우리의 현실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무전유죄, 유전무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습니다. 세상의 불의한 판결에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맷돌은 너무 커서 천천히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맷돌이 돌아가는 것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완벽하게 심판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의 불공평과 모순에 대해 괴로워하지 맙시다. 가장 공의로운 심판주 하나님께 다 맡깁시다. 주님이 이 세계를 반드시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새해는 불의한 세상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 주님의 공평한 심판을 믿고 감사합시다. 그렇게 마음 편히 삽시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삽시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구원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13절 상반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14절 하반절입니다.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우리가 주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부르짖으면 주님은 응답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보다 더 강하고 완전한 존재는 없습니다. 주님보다 더 부요한 존재는 없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자녀들의 이 복된 특권을 결코 놓치지 맙시다. 우리가 억울할 때 호소하고, 무엇인가 필요할 때 구하고, 이 우주에서 나를 가장 생각하시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 수중에 모든 것이 다 날아가도,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주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하고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맞춤형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진지하고 정직하게 은혜를 구하고 구원을 호소하면 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아무리 삭막하고 새해가 불투명하고 불확실하고, 팍팍한 한 해가 될 것이라 예상되어도, 우리에게는 기도가 있고, 기도하는 한 응답이 있고, 구원이 있기에 신년주일부터 감사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찬송하며 사는 것이 옳습니다. 부디 일찍이 다윗이 고백한 시편 9편의 감사와 찬송이 2020년 새해 여러분의 감사와 간증과 기쁨과 찬송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