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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사랑의 계절
설교본문 고전 13:4-7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12-01

* 녹화 사정으로 영상과 음성은 없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20191201n

고전 13:4-7

사랑의 계절


(고전 13:4-7, 개정)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이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주님은 사랑의 화신이십니다. 우리는 사랑의 화신이신 주님의 분신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대강절은 사랑의 화신이신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대강절은 사랑의 계절입니다. 사랑의 화신이신 주님을 사랑의 분신들이 기대하며 준비하는 계절, 그래서 대강절은 사랑의 계절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은 사랑을 추상명사로 보지만, 성경은 동사로 봅니다. 구체적인 행위와 실천적 삶으로 봅니다. 본문이 가르치는 사랑의 실천적 규정을 살펴보며, 우리가 어떻게 사랑의 화신인 주님의 성탄을 준비해야 옳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4절 상반절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에 대한 정의의 첫 마디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합니다. 뜻밖입니다.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이 사랑에 대한 첫 번째로 정의한 것 말입니다. 짜릿한 것, 설레게 하는 것, 눈물의 씨앗이 아니고 오래 참는 게 사랑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추상, 감성이라는 말과 얼마나 거리가 멉니까? 매우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정의입니다. 참는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는 기다린다는 말이고, 질적으로는 견딘다는 뜻입니다. 상대를 오래 기다려주는 것, 현실의 모진 아픔을 참고 견디는 것, 이것이 다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오래 기다리셨고, 오래 참고 견디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오래 참고 기다리지 않으시고 그때마다 그대로 우리 행위를 갚으셨다면, 우리는 저주를 수없이 받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오래 참고, 기다리며 사랑하십니다. 디모데전서 1장 16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오래 참고 견디는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사랑입니다. 막연한 사랑을 이야기하지 맙시다. 남편에 대해, 아내에 대해 오래 참고 기다립시다. 자녀들에 대해서도 오래 참고 기다립시다. 이웃에 대해서도 오래 참고 기다립시다. 주님도 우리를 지금도 그렇게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이고, 특히 대강절에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입니다. 


다음은 온유입니다. 온유는 남에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지 절대 막연한 게 아닙니다. 오래 견디고 참는 사랑이 소극적 사랑이라면, 온유는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오래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는 남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푸는 것입니다. 주님은 온유하신 분입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따뜻함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중세의 여러 성화를 보십시오. 화가들마다 주님의 모습이 다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은 주님의 이미지가 따뜻합니다. 주님의 모습이 거칠거나 강한 모습의 성화는 없습니다. 주님의 실제 모습도 그랬을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에 대해서는 마음이 온유하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주님처럼 온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바라보며 삽니다. 당연히 우리의 모습도 온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서와 이미지는 온유함이 그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난폭하거나 과격하거나 뾰족하거나 파괴적이면 안 됩니다. 요즘 문화는 다 폭력적입니다. 얼마나 요란하고 난폭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흔히 막장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 반성서적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은 온유입니다. 실은 온유가 더 강합니다. 거친 강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 사람의 겉옷을 벗깁니다. 주님께 온유함을 배워서 더욱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온유함이 바로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성도의 마음가짐과 정서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시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어 사전을 보면, 타인의 성공이나 명예, 행복을 보면서 마음이 상해 분노가 끓어오르는 상태를 시기라고 합니다. 인간적 사랑에는 반드시 질투심, 투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에는 이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요셉도 형제들의 시기심 때문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사울도 다윗을 시기해 일곱 번이나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기심이 없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요나단은 친구 다윗이 백성들의 폭발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으며 하루아침에 자기 경쟁자로 등장해도 절대 아버지처럼 그를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사무엘상 20장 17절입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사랑이 시기심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어제까지는 자기를 따르던 많은 사람이 오늘은 다 예수님께로 몰려갑니다. 자기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요한복음 3장 29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강절에는 질투심을 발동하기보다는 남을 축하하고 축복하며 자신을 더욱 겸허하게 비워야 합니다. 남의 성공이나 행복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마음, 복잡하고 잡다한 감정으로 가득 찬 마음에 주님이 성탄하실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공간에 성탄하십니다.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은 공간에 성탄하십니다. 시기심과 질투심을 깨끗이 비운 마음에 올해도 주님은 성탄하십니다. 


모두가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구현하여 사랑의 화신이신 주님의 성탄을 뜨겁게 체험하는 올해 성탄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