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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설교본문 요 11:38-4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11-17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1117n.mp3

20191117n

11:38-44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11:38-44, 개정)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우리는 전에 삼일장, 오일장을 치렀습니다. 팔레스틴은 더운 지방이기에 사람이 죽으면 즉시 매장했습니다. 본문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심하게 냄새나는 나사로를 주님이 그 무덤에서 다시 불러내신 사건입니다. 39절입니다.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그런데도 주님은 그 시신을 무덤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기적 중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40절입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통해 사람들이 생생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주님이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셨습니다. 우리는 늘 무덤 앞에서 슬퍼하며 삽니다. 우리는 늘 죽음에 직면해서 산다는 뜻이기도 하고, 현실이 무덤처럼 늘 절망스럽다는 의미에서도 그렇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절망하고 슬퍼하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쉰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닙니다. 주님은 그들과 똑같은 현실인데도, 그러니까 무덤 앞에 서 계시는데도 주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셨습니다(41). 마르다와 마리아는 땅을 보고 시신 썩는 냄새를 맡는데, 같은 자리에서 주님은 하늘을 보셨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한숨과 절망뿐입니다. 그러나 무덤 앞에서도, 냄새나는 시신 앞에서도 현실에 연연하지 않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면 거기에 희망과 생명, , 구원이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라는 것은 해나 달, 구름을 바라보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원래 위를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말로 안트로포스(anthropos)라는 뜻은 위를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는 물 위에서 균형을 잡았는데, 발 아래 거센 물결을 내려다보는 순간 파도에 휘감기고 말았습니다. 현실을 내려다보면 누구나 실패합니다. 물에 빠질 수밖에 없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늘을 바라보셨습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의 첩경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비결입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감사하셨습니다. 어떻게 냄새나는 무덤 앞에서 감사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41절 하반절입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절 상반절입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아직 나사로가 살아나기 전인데 주님은 감사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기도 전인데 주님은 선제적으로 감사하셨습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이미 나사로의 회생을 확신하셨습니다. 이제 1,2분 후면 베로 몸을 동인 채 나사로가 걸어 나올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비 오긴 전에 강력한 빗소리를 들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늘 결과가 내 수중에 들어와야 비로소 감사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닙니다. 아직 걸어 나오고 있지도 않은데 아버지가 들어주실 줄 믿고 먼저 감사하셨습니다. 주님은 응답받기 전에 감사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감사가 기적을 부른 것입니다. 선제적인 감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경지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큰 소리로 나사로를 부르셨습니다(43). 주님은 현실, 사건, 죽음, 시신을 향해 큰 소리로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위협을 당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위협에 항복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풍랑 때문에 사경을 헤매는데 주님은 그 풍랑을 딛고 서서 파도와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나사로야 나오라. 우리도 이렇게 믿음의 담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꾸짖어야 합니다. 주님의 권세로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믿음의 담력으로 세상을 제압해야 하는데, 우리는 참으로 세상 앞에서 나약합니다. 우리는 세상 앞에서 우리가 압도당하고 항복하고 맙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시신에서 냄새가 납니다. 그런 현실 앞에서도 주님은 포기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랬더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세상을 제압해야 합니다. 풍랑을 잠재우고, 사건을 평정해야 합니다. 무덤을 향해 나오라고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죽은 자를 일으키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사태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해야 할 권능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도 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부디 주님이 주신 믿음의 무한한 권능으로 주님이 세상을 이긴 것처럼, 죽음의 권세를 물리친 것처럼, 나흘이나 된 시신으로 하여금 무덤에서 걸어 나오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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