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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기도 쉬는 죄를 범치 말라
설교본문 삼상 12:22-25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10-13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1013n.mp3

20191013n

삼상 12:22-25

기도 쉬는 죄를 범치 말라!

 

(삼상 12:22-25, 개정) [22]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성경에는 참 많은 죄가 나옵니다. 신약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죄 목록을 보면 불의,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악독, 비방, 능욕, 교만, 부모거역, 우매, 무자비, 무정 등이 나옵니다. 이게 다 하나님 앞에서 못된 죄들입니다. 로마서 1장에는 동성애도 죄라고 합니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게이, 여자가 여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는 레즈비언이 다 죄입니다. 로마서 1장에는 수간도 나오고 근친상간도 나옵니다. 성경에는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성령훼방죄도 나옵니다. 히브리서 10장에는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짐짓 죄도 나옵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다양하고도 많은 죄명이 나오는데, 본문 23절에도 의외의 죄목이 나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입니다. 본문은 사무엘 선지자의 다짐이자 고백입니다. 그는 기도를 하지 않거나 쉬는 것도 죄라고 합니다. 구약의 인물 가운데 엘리야는 전설적인 기도의 거장입니다. 그런데 사무엘도 기도의 사람입니다. 사무엘은 기도의 여인으로 유명한 한나의 아들입니다. 한나가 기도해서 낳은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인데, 하나님께 서원하고 낳은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아예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젖 떼자마자 한나가 사무엘을 성전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생생한 육성을 들으며 성장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모든 버스에는 <오늘도 무사히>라는 액자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 액자의 그림이 영국 화가 레이놀드가 그린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성전에서 잠을 자는데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처음에는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가 해서 그에게 뛰어갑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시 잠을 청하자 다시 부릅니다. 사무엘이 다시 엘리에게 달려갑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이 눈치를 챕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번 더 부르시면 종이 여기 있나이다 하고 답하라고 합니다. 화가 레이놀드가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해서 그린 게 <오늘도 무사히> 그림입니다.

 

바로 이러한 기도의 선지자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백성 앞에 나서서 자기는 백성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어째서 기도를 쉬는 행위가 살인이나 강도 같은 죄가 될 수 있습니까? 기도는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액세서리가 아니라 필수라고 합니다. 필수과목은 학점을 반드시 따야 합니다.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주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외마디 명령입니다. 거기에는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만나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약속까지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명령은 조건부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것과 진배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좀처럼 기도하지 않을까요? 우리 나름대로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해서 해봤더니 안 주시더라는 경험입니다. 사실 기도해도 안 이뤄지는 게 훨씬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지금 내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내가 구하는 게 내게 결코 이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게 꼭 필요한 것 같아서 열심히 구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것이 결국 나를 해칠 흉기가 된다고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졸라도 하나님은 주시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안 들어주시는 게 복입니다. 칼을 달라는데 아이에게 칼을 줄 부모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이렇게 설득합니다. 이것은 절대 저만 좋으라고 이러는 것 아닙니다. 이게 잘 되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된다고 말입니다. 사실은 자기가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면서도 갖다 붙이는 것은 하나님 잘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우리 속셈을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이것이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돈과 건강, 출세를 구하는데,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것이 여간 고민스러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구한다고 다 주시면 우리는 망하고 맙니다. 우리 가운데 돈 있고, 건강하고, 명예가 주어지면 예배 자리에 나올 사람이 없을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42절 이하입니다.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정확한 지적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다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구했지만 잘못 구해서 응답받지 못한 경험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기도에 담을 쌓고 살다보니 응답받을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기도응답을 받고 싶다면, 이 점을 주님 앞에서 분명히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 응답 이후의 자세를 미심쩍어 하십니다. 그러다보니 일단은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을 유보하십니다. 우리가 한두 번 주님을 속였습니까? 우리가 다급할 때는 온갖 것을 다 걸다가도 막상 기도 응답이 이뤄지고 나면 입 닦은 적이 한두 번입니까? 주님은 늘 우리의 이런 부분을 믿지 못하십니다.

 

우리는 결코 기도 쉬는 죄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