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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엄히 명하라!
설교본문 딤후 2:14-2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10-06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1006n.mp3

20191006n 

딤후 2:14-26

엄히 명하라!


(딤후 2:14-26, 개정) [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디모데후서가 주후 66년에 사도 바울이 쓴 최후의 서신입니다. 그는 이 편지를 쓰고 그 다음해에 순교합니다. 그러므로 이때는 그가 이미 자기 죽음을 예감하고, 지난 30년간의 선교 사역을 마무리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자신의 후계자 디모데에게 목회적 권면과 조언,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도 그런 차원의 바울의 당부요 권면입니다. 


14절 상반절입니다. “너는 그들로” 너가 가리키는 사람은 디모데입니다. 그들이 가리키는 사람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에베소 교회의 일꾼들입니다. 오늘은 그들이 바로 우리 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입니다. 


바울의 몇 가지 당부입니다. 우선 부끄러움 없는 일꾼이 되게 하라는 겁니다. 15절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여기서 말씀하는 부끄러움 없는 일꾼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데 그분께 자신을 드리지 않는 사람은 일꾼이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 안 하는 부끄러운 일꾼들은 모든 것을 입으로 때웁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일꾼 가운데 두 사람을 거명합니다. 후메내오와 빌레도입니다. 그들은 말만 하는 부끄러운 일꾼의 전형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여기서 바울이 거명하듯이 주님도 우리를 파악하고 계십니다. 올해도 여러분은 헌신하는 종이 되어서 부끄럽지 않은 일꾼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이것이 순교를 앞둔 노사도의 바울의 최후 당부입니다. 그야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쓰는 헌신하는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라는 겁니다. 21절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주인은 빈 그릇, 깨끗한 그릇을 씁니다. 귀한 그릇이라 해도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그릇, 깨끗하지 않은 그릇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인은 거룩한 분이기에 절대 깨끗하지 않은 그릇은 쓰지 않습니다. 바울은 22절에서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이 깨끗한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훗날 심판하실 때도 우리가 금 그릇이냐 은 그릇이었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직분을 따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주님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이었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각양각색의 그릇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소재나 재질이 아니라 얼마나 깨끗한 그릇이냐 입니다. 안을 비우고 자신을 깨끗하게 관리하면 주님이 그런 그릇을 기쁘게 쓰십니다. 우리는 큰 그릇이 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그릇이든 자신을 다 비워낸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그릇이든 애써 깨끗이 관리하는 그릇이 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깨끗한 그릇이란 말은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을 가진 그릇입니다. 부디 우리 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은 주님이 즐겨 쓰시는 그릇, 깨끗한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온유한 종이 되게 하라고 합니다. 24절 이하입니다.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여기서 우리는 종이란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앞의 일꾼이나 그릇보다 훨씬 강한 표현입니다. 종이란 뜻의 그리스어 <둘로스>는 노예라는 뚯입니다. 바울 시대 때도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를 소개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된 나 바울은>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아마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적으로 주님의 소유라고 합니다. 노예는 절대 자기의 뜻이 아닌 주인의 뜻과 명령에 따라 주인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어 <둘로스>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종에게 온유하라고 합니다. 종은 무조건 주인 말에 복종해야 합니다. 종이 따지면 안 됩니다. 주인이 그에게 온유하라고 하면, 노예는 무조건 온유해야 합니다. 주인이 다투지 말라고 하면 절대 다투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노예는 주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종인 우리를 향해 온유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사람을 온유함으로 대하고 가르치라고 합니다. 순종하지 않는 노예는 징계를 당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주인은 그 종을 팔아버립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으로 부르는 이상, 우리는 주님의 종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것에는 <우리는 주님의 노예>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복종합시다. 매사에 온유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합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신실한 주님의 종들로서 칭찬받고 복도 받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