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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담과 화평
설교본문 엡 2:14-18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8-1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811n.mp3

20190811n

엡 2:14-18

담과 화평


(엡 2:14-18, 개정)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둘>이라는 단어입니다(14-16, 18). 주님이 <둘> 사이의 담을 허셨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자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피스 메이커(peace maker)가 되어 둘 사이의 담을 헐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둘 사이에 헐어야 할 담은 우선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담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하나님과의 화평이야말로 모든 평화의 근원이요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불화하면 다른 모든 관계도 다 불편한 관계, 갈등 관계, 적대 관계로 전락하고 맙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담의 소재지를 물은 것이 아니라 관계를 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화평한 관계에 있느냐? 불편한 관계에 있느냐?를 묻고 계신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의 얼굴이 무서워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둘 사이의 평화가 깨지고 긴장과 갈등과 불화가 조장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네가 어디에 있느냐?>를 물으시며 둘 사이의 담을 헐 것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불화나 긴장 관계는 아닙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화가 없고 하나님은 계속 <네가 어디 있느냐?>를 물으시고 우리는 끊임없이 달아나는 관계라면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지키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불화하며 다른 관계가 바르고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 모든 관계의 첫 단추입니다.


다음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자신과의 화해와 평화가 중요합니다. 의외로 자신과 불화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에 대한 불신, 회의, 미움으로 자신을 자학하고 비관하고 증오하며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고 이해합시다. 주님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주제는 이웃 사랑이지만, 그 이웃 사랑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기준이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를 용납하지 못하면 이웃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이 못난 나를 용서하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받아주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과거를 묻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너와 맺은 사랑의 줄은 누구도 끊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좀처럼 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주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에 우리가 투철하면 우리도 우리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남도 포용하고 용납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순을 잊지 맙시다. 자신과의 화해는 하나님과의 화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해 없는 자신과의 진정한 평화는 없습니다. 부디 자신이 하나님의 귀한 자녀임을 새삼 깨닫고 발견합시다. 자기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성도가 됩시다. 


다음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형제나 이웃과 잘 지내지 못합니다. 이웃과의 평화가 없다고 봐야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이웃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태롭습니까? 화평보다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그야말로 시한폭탄과 같은 불화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불행이고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복수의 하나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칭호도 엘(단수)이 아니라 엘로힘(복수)입니다. 이 세 분 하나님이 완벽히 조화되어 하나로 계시기에 우리는 이를 일컬어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심동체라는 말과 같습니다.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태초에 우리가 우리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당연히 복수입니다. 우리도 복수로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과 형제와 더불어 살 때만 인간입니다. 마치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화평하며 완벽한 하나로 존재하듯 우리도 형제와 이웃과 화해하며 사랑하며 화평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샬롬(평화)의 하나님입니다. 우리 각자가 평화의 사도, 전사, 피스 메이커가 됩시다. 그래서 하나님과도 자신과도 이웃과도 화평하여서 장차 평화의 왕국인 천국에서도 영원히 평화를 누리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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