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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위기와 극복
설교본문 마 26:69-75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7-14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714n.mp3

20190714n

마 26:69-75

위기와 극복


(마 26:69-75, 개정)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위기는 누구에게나 오고, 또 언제나 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위기란 어휘는 위험과 기회라는 말의 복합명사입니다. 위기는 위험인 동시에 기회입니다. 잘 대처하고 극복하면 더욱 도약하고 발전하는 기회가 되지만 위기는 잘못 관리하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위험입니다. 오늘은 베드로의 실패 원인을 살피며 그는 인생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74절입니다.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주님을 그토록 열성적으로 따르며 수제자를 자처하던 베드로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저주하고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가 터무니없는 허세를 부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최후만찬 때 그날 밤 다 나를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기는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그를 향해 더 구체적으로 오늘밤 닭 울기 전에 3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때도 그는 절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에는 베드로가 감옥뿐만 아니라 주님과 죽는 데까지 함께 가겠다고도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이 코앞에 닥쳤음에도 때에 대한 아무런 분별이나 감각 없이 터무니없는 허세만 부렸던 겁니다. 신앙생활에서 방심은 금물입니다. 언제나 신중하고 긴장하며 근신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늘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그 쓰디 쓴 고배는 방심의 결과였습니다. 


다음은 베드로가 졸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ㅁ 26장 40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기도하다가 돌아와 보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거기는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주님은 다가오는 십자가 앞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신 장소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천하태평입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당부에도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시험은 바로 여기에서 옵니다. 잠자면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3절입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마태복음 26장 38절 하반절에서 주님은 분명 당부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말입니다. 


다음은 베드로가 주님과는 멀리하고 세상과는 가까이 했기에 실패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8절 상반절입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에서 안전거리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왜 멀찍이서 주님을 따라갈까요? 그래야 우리에게 편리하고 부담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장 58절 하반절입니다.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주님을 체포당해 희롱하고 온갖 모욕을 다하는 거기에서 베드로는 불을 쬐고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믿는 자는 함부로 자리를 같이 하면 안 됩니다. 함부로 세상 장단에 맞추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입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을 3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합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했을까요? 그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주님을 세 번째 부인했을 때 새벽 닭이 웁니다. 그러자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3번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난 겁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를 구출하는 한줄기 빛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를 참담한 실패에서 건져내는 한 가닥 생명줄입니다. 늘 말씀을 붙잡고 삽시다. 혹 실패했다면 다시 주님의 말씀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회복합시다. 


베드로는 즉각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불신의 현장, 주님을 3번이나 부인한 자리에서 철수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면, 그래서 제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면, 빨리 그 실패의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틈에 끼어 함께 불을 쬐던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합니다. 거기서 계속 미적대다가는 끝내 일어나지 못합니다. 롯의 두 사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소식을 듣고도 그 성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함께 거기서 그들은 멸망한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내게 깨달음이 오면 그 실패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납시다. 베드로는 즉각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 후 그는 심히 통곡했습니다. 본문 75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 통곡은 회개의 통곡, 통회입니다. 통회는 절대 형식적 회개일 수 없습니다. 통회는 절대 거짓 회개일리 없습니다. 그래서 통회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합니다. 통회는 어떤 실수나 죄악도 다 용서받게 합니다. 베드로의 주님 부인의 죄는 악성 죄입니다. 그 죄는 주님을 부인한 정도가 아니라 저주하고 모른다며 맹세까지 했던 악질입니다. 그러나 그의 통회의 기도는 그 모든 허물을 용서받고 수제자의 자리를 다시 회복하게 했습니다. 통회와 참회로 실패와 위기를 극복하고 본래의 자리와 지위를 다 회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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