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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설교본문 창 2:15-17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6-02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602n.mp3

20190602n

창 2:15-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창 2:15-17, 개정)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7절을 다시 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장 3절도 보십시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엄중한 사전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의 실과를 범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었습니까? 그들이 죽기는커녕 아담은 천수를 다했습니다. 창세기 5장 4절 이하를 보면 자그마치 그는 930년을 삽니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단지 겁주는 말씀일까요?


그 말씀은 우선 영적 죽음을 뜻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영적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죽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범한 직후 상황인데 창세기 3장 8절입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이 구절에는 중요 동사 2개가 나옵니다. <피했다>, <숨었다>입니다. 이것이 범죄한 후 아담과 하와에게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리를 기뻐한 게 아니라 두려워서 피해 숨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파국을 맞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부르시는데 타락한 인간은 그 음성을 피해 달아나 숨습니다. 아이들도 잘못한 게 있으면 부모의 눈치를 보며 자꾸만 숨습니다. 이제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죽음입니다. 죄는 이렇게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고,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게 하여 하나님과의 거리를 아득하게 벌려 놓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인간의 지적 파국을 가져왔습니다. 창세기 3장 7절에는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고 합니다. 그들이 벗고 있었음에도 벗었다는 것조차 모르던 그들입니다. 벗다 입었다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까지 한 번도 입은 적이 없었기에 자신들이 나체라는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범죄하고 나자 엉뚱하게도 자신들이 벗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걸 알게 되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범죄가 가져 온 지적 능력의 왜곡입니다. 죄는 우리가 몰라도 될 것을 알게 합니다. 오히려 몰라야 약이 되는 걸 죄는 알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알게 된 사실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가 몸을 가립니다. 부부만 있는데 새삼 뭐가 부끄럽다는 겁니까? 이게 다 인식의 왜곡입니다. 이것이 비정상적인 겁니다. 죄가 알 필요 없는 걸 알게 하고, 느낄 필요 없는 걸 느끼게 해서 하지 않아도 좋을 엉뚱한 걸 하게 합니다. 마약 같은 걸 알 필요도 없지만, 그걸 알게 하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모르면 차라리 건강하고 행복한데 기어이 그걸 알게 하여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마귀는 항상 그렇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악한 세계, 악한 정보를 알게 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파멸에 이르도록 만듭니다. 창세기 3장 11절 상반절입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하나님이 알 필요도 없는 걸 누가 알게 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죄는 항상 우리에게 왜곡된 지식을 제공해 그것으로써 망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선악과를 범한 데서 오는 피할 수 없는 지적 능력의 타락이며 그 결과입니다. 


다음은 사회적 관계의 파국입니다. 창세기 3장 11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그러자 12절에서 아담이 답합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그냥 여자가 아니라 악착같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라고 합니다. 아담은 하와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저의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아담에게 여자를 인도하셨을 때, 아담은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고 했습니다만, 범죄하고 나서는 여자가 책임을 전가하는 대상이 되고 맙니다. 게다가 아담의 아들 사이에서는 살인까지 벌어집니다. 이것이 다 죄가 가져온 인간 관계의 타락이요 파국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환경 파탄을 가져왔습니다. 지구 환경의 생태학적 파국은 인간 타락의 결과물입니다. 인간 타락 전에는 땅에 독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갑자기 돌연변이가 발생해 땅이 거친 가시나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계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살벌한 정글 질서로 재편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천적이 되어 무자비하게 파괴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연이 반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재해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은 일찍이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 파괴가 인간 타락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자연 회복도 인간 회복에 달렸다는 겁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복귀해 아들의 지위를 되찾아야 자연도 회복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연이 인간이 본래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자연을 인간에게 위탁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자연과 인간은 운명 공동체가 됩니다. 사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인간이 거듭나지 않으면, 자연도 회복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범죄는 영적, 지적 타락과 인간관계의 파탄, 자연 파괴 등 총체적인 죽음의 문화를 낳았습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범해서는 안 될 선악과가 지금도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합시다. 그게 아무리 보암직 하고 먹음직 하고, 내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 같아도 범죄하지 맙시다. 그래서 파국이나 파멸이 아닌 늘 복과 행복을 누리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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