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설교제목 너희 자녀를 위하여
설교본문 눅 23:27-28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5-05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505n.mp3

20190505n

눅 23:27-28

너희 자녀를 위하여


(눅 23:27-28, 개정)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형장인 골고다를 오르고 계신 대목입니다. 27절을 보면 한 무리의 여인들이 슬피 울고 가슴을 치며 주님 뒤를 따릅니다. 그때 주님이 뒤를 돌아보시며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너희 자녀들이 당하는 고난이 훨씬 더 절실하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는 것은 울며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와 이교를 막론하고, 재래종교든 고등종교를 막론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기도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를 위해서는 울어야 합니다. 본문의 주님 말씀도 그런 뜻입니다. 


어거스틴 354년 11월 13일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났습니다. 거기가 지금은 알제리 땅입니다. 아버지는 파트리키우스인데 이교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이때는 북아프리카가 로마 치하에 있었기에 로마에서 기독교가 그리로 전래된 겁니다. 그래서 모니카는 일찍부터 주님을 섬겼습니다. 모니카는 23세에 어거스틴을 낳아 기도로 키웠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이미 소년 시절부터 어머니의 기도를 무참하게 했습니다. 그는 12살 때 고향을 떠나 북아프리카 최대 항구도시 카르타고로 유학을 갔습니다. 카르타고는 지금은 튀니지의 도시입니다. 그는 그때부터 방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머리는 비상해서 공부는 잘 했지만 생활은 엉망이었습니다. 수많은 여자와 동거하다가 18세 때는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는 마니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모니카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그녀는 날마다 교회에 가서 울며 기도했습니다. 한번은 타가스테 교회의 목회자가 모니카에게 ‘눈물의 기도로 키운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위로했는데, 모니카는 그 말을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평생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습니다. 한편 어거스틴은 카르타고에서 공부를 마치고 로마로 건너갑니다. 거기서 그는 공부를 더 하고 수사학 교수가 됩니다. 당시 최고의 학문은 수사학이었습니다. 수사학은 정치나 법관이 되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었습니다. 그는 밀라노 시의회의 대변인도 됩니다. 그때도 그의 종교는 여전히 마니교였습니다. 또한 그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깊이 빠져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는 로마에서 승승장구합니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승리합니다. 386년 어거스틴의 나이 23세가 드디어 어느 날 자택 무화과나무 아래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라틴말로 <톨레 레게 톨레 레게>라는 말을 듣습니다. <들어서 읽으라>는 뜻입니다. 깊숙이 쳐박아두었던 성경을 찾아 급히 읽었는데 그 대목은 로마서 13장 13-14절입니다.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식음을 전폐하고 사흘간 회개한 후에 드디어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는 2000년 기독교사에 바울 이후 최고의 수도사로 높임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믿는 교리는 거의 어거스틴의 사상입니다. 바울의 사상을 어거스틴이 교리화했고, 칼빈이 정리한 것이 장로교의 신학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거스틴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겁니다. 


어거스틴은 자기의 극적 회심이 순전히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고백록 여러 곳에서 그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희대의 탕아였는데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는 탕자를 성자로 변화시킬 만큼 위대합니다. 눈물의 기도로 키운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모니카가 보여줬습니다. 부디 가정의 달, 어린이주일에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는 말씀을 깊이 새깁시다. 


수잔나라는 영국의 한 여인도 있습니다. 그녀는 19남매를 낳았습니다. 그녀는 19남매를 철저히 기도로 키웠습니다. 가난한 삶에 집이 좁아 별도로 기도할 공간이 없었기에 그녀는 늘 식탁에서 앞치마를 둘러쓰고 기도했습니다. 아이들이 놀다가도 엄마가 앞치마를 뒤집어쓰면 조용히 있거나 밖에 나가 놀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기도 하나로 승리했습니다. 19자녀를 영국 사회를 이끈 훌륭한 인물로 키웠습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예수 부활하셨네 할렐루야라는 찬송은 찰스 웨슬레가 작사 작곡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을 중심으로 신앙운동의 새 바람을 일으켜 감리교를 세운 요한 웨슬레입니다. 정치가, 법관, 의사 등 모두를 당시 영국 사회를 이끈 위대한 지도자들로 만들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우십시오. 솔직히 지금 부모가 자식을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자녀의 장래를 책임져 주시도록, 모든 자녀의 삶에 복 주시도록, 자녀의 생애를 전적으로 책임져 주시도록, 그때그때 자녀들의 미래를 열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는 주님의 말씀을 새겨들으시고 늘 주님을 위해 울기보다 자녀를 위해 우는 부모가 됩시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