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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천 년의 예언
설교본문 시 22:1-25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4-14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414n.mp3

20190414n

시 22:1-25

천 년의 사랑


(시 22:1-25, 개정)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아얠렛샤할(사슴이란 곡조)에 맞춘 노래]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시편 22편은 메시아 수난의 시로 유명합니다. 종려주일이나 고난주간에 묵상하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지금으로부터는 3000년 전이지만 주님으로부터는 1000년 전에 다윗을 통해 그야말로 천 년의 약속, 예언을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고 구체적이며 문자적이기까지 한 예언입니다. 천 년 전에 다윗이 주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실제 어떻게 예언했는지,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어떻게 약속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절 상반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이 말씀을 그대로 아람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입니다. 천 년 전에 다윗이 예언한 말씀인데 문자적으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의미상의 예언이라면 긍정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문자적으로도 완벽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시편 22편을 암송했다고도 합니다. 이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최악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데 시편을 암송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혼미한 가운데 자신의 심경을 하나님께 토로한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 천 년 전에 다윗을 통해 문자적으로 예언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인위적으로 시편 22편을 대사로 삼아 자신의 최후를 연출하신 게 아니라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운명하셨는데 알고 보니 이미 그게 천 년 전에 예언한 시편 22편의 말씀과 무섭도록 일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버리셨습니다. 주님이 과장하신 게 아닙니다. 만약 주님이 그렇게 버림받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우리 죗값을 그렇게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대신 그렇게 하나님의 버림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겁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더는 버림받지 않고, 저주받지 않고, 심판받지 않게 된 겁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6절 이하입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벌레 취급을 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7절 이하입니다.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홍포, 곧 왕복을 상징하는 옷을 입힌 것은 희롱한 겁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보면 사람들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오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구원하며 어떻게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온갖 조롱을 다 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심지어 함께 못 박힌 강도들도 주님을 욕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며 한도 끝도 없는 모욕을 당하셨는데, 그게 이미 천 년 전에 생생히 예언되었다는 겁니다. 십자가가 천 년 전의 예언의 성취라는 겁니다. 18절도 놀랍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설마 로마 군인들이 천 년 전의 말씀을 이루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닐 겁니다. 


시편 22편 마지막 절도 보십시오. 31절입니다.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이를 행하셨다는 히브리말을 헬라말로 옮기면 다 이루었다는 말이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연이 아닙니다. 용의주도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건입니다. 천 년 전에 이미 다윗을 통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예언해 놓으신 사건의 완벽한 성취가 십자가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신비이고,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이고 섭리입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22절입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선포하는 일, 주님의 십자가의 진정한 증인이 되는 일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고난을 헛되게 하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사실, 그 복음을 이웃과 형제, 세상을 향해 널리 증거하며 살아야 옳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신성한 사명입니다. 


다음은 우리가 찬송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23절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평생을 찬송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한들 어찌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평생 십자가만 알고, 자랑하고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평생 찬송하며, 그 주님께 평생 영광을 바치며, 감사하며 살아야 맞습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찬송가 311장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여러분은 주님께 무엇을 드리고자 하십니까? 평생 찬송과 영광을 드립시다. 평생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힘쓰며 삽시다. 그래도 주님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그저 찬송하며 사는 것만 남습니다. 


주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급하면 주님과 약속도 하고 서원도 자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고의적으로 그것을 다 잊습니다. 25절 하반절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하나님을 보십시오. 다윗을 통해 하신 천 년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약속에 불성실합니다. 천 년 전에 약속하신 것도 하나님은 문자적으로 지키셨는데 우리는 엊그제의 약속과 다짐, 결단, 서원도 까마득히 다 잊고 아무 고민도 없이 살아갑니다. 요즘은 신용 시대여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과의 약속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신용을 더욱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길이고, 더욱 큰 십자가의 은총을 누리는 길입니다. 


부디 주님의 십자가를 감상적으로 대하지 말고 좀 더 진지하고 책임적으로 바라봅시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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