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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설교본문 사 6:1-1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3-10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310n.mp3

20190310n

사 6:1-13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사 6:1-13, 개정)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사야의 소명 장면입니다. 주전 740년경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어느 날 성전에서 기도하던 이사야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습니다. 1절 이하입니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사야가 기도 중에 본 환상입니다. 그렇다면 이사야로 하여금 이런 신비한 이상을 보게 하고, 선지자의 소명을 받게 했던 당시 이사야의 기도를 보겠습니다. 이사야는 어떤 기도를 했을까요?


우선 이사야의 기도는 회개하는 기도였습니다. 5절입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것은 이사야의 처절한 통회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빛 앞에 서면 이렇게 회개가 비명처럼 터집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 서면 비로소 자신의 추한 몰골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처음 주님을 뵈었을 때도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고 했고, 바울도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뵙기 전에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의식이 없던 사람들입니다. 어둠속에 있으면 자기 모습을 못 보지만, 밝은 빛 앞에서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서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면 누구나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회개의 기도가 나를 새롭게 합니다. 6절 이하입니다.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스랍은 하나님의 호위천사입니다. 날개가 여섯 개입니다. 그 스랍 중 하나가 제단에서 핀 숯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술에 댔습니다. 그러면서 ‘네 죄가 다 제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 기뻐하십니다. 회개의 기도를 기꺼이 접수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회개의 기도를 바치면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당장에 접수하십니다. 보십시오. 거의 반사적으로 하나님이 스랍을 통해 이사야의 모든 허물을 사하셨습니다. 이사야가 회개하자 당장 스랍 중 하나가 숯불을 가져와서 이사야의 입에 대며 모든 악을 제하며 선언까지 합니다. 여러분, 이 사순절에 특히 회개의 기도에 소홀하지 맙시다. 회개의 기도가 우리 영혼을 맑게 합니다. 회개의 기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게 합니다. 회개의 기도가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만듭니다. 


이사야는 순종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8절입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 얼마나 명쾌하고 분명한 순종입니까? 내가 누구를 보낼까 라는 말씀을 듣자마자 이사야는 지체하지 않고 자기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우리도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바로 이런 순종의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랴? 누가 나를 위해 갈꼬?’ 이 소명에 나를 보내소서 하며 응답하고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가 은혜와 복을 얻습니다. 부모가 심부름을 시키면 다녀오겠다고 하는 아이는 칭찬과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응답도 순종도 없는 아이는 책망을 듣고 매 맞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시키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다 옳은 것입니다. 내게 복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 이사야 선지자처럼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그런 자에게 무한히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도 반드시 주님의 뜻과 부르심에 이사야처럼 응답하고 순종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특히 사순절에 기도하실 때는 주님 뜻과 명령에 순종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은혜와 신비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의 기도는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13절입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사야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대체 어느 때까지 이 백성이 이토록 미련하게 살아야 합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13절 말씀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좌절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이사야 선지자를 위로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신을 위한 기도 이상으로 남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중보기도라 부릅니다. 남의 축복, 치유를 위한 기도 말입니다. 이웃 사랑, 나라 사랑의 최고봉이 중보기도입니다. 중보기도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내 기도에 빠져 헤맵니다. 가만히 우리의 기도를 들여다보십시오. 얼마나 나라와 우리 사회를 위해 기도합니까? 중보기도에 우리의 기도 시간을 얼마나 안배합니까? 저는 새벽기도 때 나라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렇게 마음이 가볍고 좋습니다. 어떤 때는 제 기도만 하고 말 때가 있는데, 그때는 기도하고 나서도 개운치 않습니다. 우리는 갈수록 남을 위한 기도, 중보기도 시간을 더 늘여야 합니다. 사실 이사야의 경우는 소명 이후 전부 중보기도였습니다. 바울의 기도도 보십시오. 다 남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에도 중보기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져가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중보기도를 많이 해야 교회가 잘 되고, 이웃이 잘 되고, 나라가 잘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우리 사회를 위해 열심히 중보기도했다면, 벌써 나라가 새롭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는 하는데 다 자신의 기도에 매몰되어 있어서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가 암울합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더 많은 시간을 중보기도에 할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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