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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하나 됨을 위하여
설교본문 엡 4:1-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2-10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210n.mp3

20190210n

엡 4:1-6

하나 됨을 위하여


(엡 4:1-6, 개정)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어제 국민일보가 보도한 기사입니다. 국민일보가 지난 달 22일부터 이달 7일까지 페이스북에서 왜 교회를 옮겼냐를 설문조사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교인간의 불화였습니다. 물론 목회자의 비리, 당회의 독재, 봉사 스트레스, 헌금 강요, 설교 불만도 있었습니다. 모이면 서로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텃새를 부리고, 끼리끼리 모여 세를 과시하는 모습에 실망하여 출석하는 교회를 떠났다는 겁니다. 공감이 되십니까? 


본문 3절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것이 성경의 처방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입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한 자녀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분 성령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궁극적 소망도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보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절대 내 의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도 내가 푸른교회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한 공동체로 엮어주셨습니다. 분당만 해도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작은 푸른교회의 성원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이 맺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정확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지켜야 힘써 지켜야 우리의 하나 됨이 유지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 되게 하신 사역은 성령의 몫이고, 성령이 이룩하신 하나 됨을 지켜가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만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것과 그 원리가 같습니다. 부부도 교회도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인위적으로 깨면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성경이 아무리 금해도 이혼하고, 하나 됨을 깨는 게 현실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 되게 하신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를 굳이 푸른교회로 하나 되게 하신 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 조합으로 하나님은 뭔가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공동체를 바르게 지켜갈 수 있을까요? 


2절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마태복음 11장 29절을 보면 주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품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이 우리가 하나 됨을 지킬 수 있는 최상의 비결입니다. 공동체의 성원이 모두 온유하고 겸손하면 하나 됨이 깨질 일이 없습니다. 서로 다투고 싸우기에 하나 됨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겸손하고 온유합시다. 니체는 온유와 겸손을 약자의 미덕, 노예의 도덕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겸손하고 온유한 자가 진정한 강자라고 합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입니다. 강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이 외투 벗기기를 했는데 햇볕이 이겼습니다. 주님은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며 서로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영웅호걸들은 무덤 하나 남겼지만 주님은 지금도 온 세계를 차지하고 계십니다. 온유하고 겸손합시다. 주님이 하나 되게 하신 우리 공동체를 애써 지킵시다.


다음은 참음입니다. 얼마나 참아야 할까요? 일흔 번씩 일곱 번입니다. 끝없이 참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과 몇 번도 못 참습니다. 구약시대 노아의 방주는 신약시대의 교회인데, 노아 가족들이 방주생활을 참지 못하고 탈출했다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요즘은 교회 안에서 절대 참지 않습니다. 모두 성질과 감정을 자기 맘대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주님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막무가내인지, 자기 감정에만 충실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주님은 참는 자에게 복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 됨은 절대 거저 지켜지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성경이 힘쓰고 애써 지키라고 했겠습니까? 참아야 지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용납입니다. 2절 하반절입니다. “서로 용납하고” 우리가 왜 서로 용납해야 할까요?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완전하거나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5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 같이 너희도 서로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문제가 많습니다만, 주님께 받아들여진 자들입니다. 우리가 의롭고 완전해서 주님이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허점투성이고 죄악 투성이인데도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찬송은 <내 모습 이대로 받으소서>라고 잘 합니다만, 남은 좀처럼 용납하지 못합니다. 부부간의 갈등도 마찬가집니다. 서로가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경은 절대 일방적 용납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2절 하반절을 다시 보면, 서로 용납하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그 가정, 공동체가 끝까지 하나 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래야 하나 됨을 지킬 수 있습니다. 도저히 남이 용납되지 않으면 나를 용서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무려 10억이나 되는 큰 빚을 탕감 받고도, 내게 100만원 빚진 자를 탕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우리는 내가 탕감 받은 것을 먼저 생각하면 남을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자꾸만 주님이 나를 받으신 사실을 망각하기에 남을 용납하는 데 인색합니다. 여러분, 나는 더 큰 용서, 탕감을 받았습니다. 용납합시다. 그래야 우리 공동체의 하나 됨이 지켜집니다. 


여러분, 교회의 하나 됨이란 절대 옳고 정당하고 잘나고 똑똑한 것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겸손, 오래 참음, 용납으로만 가능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하나 됨을 지키는 주님의 복 된 처방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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