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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사랑이란?
설교본문 고전 13:4-7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12-02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1202n.mp3

20181202n

고전 13:4-7

사랑이란?


(고전 13:4-7, 개정)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이 하나님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합니다. 주님은 사랑의 화신입니다. 우리는 다 사랑의 화신이신 주님의 분신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대강절은 사랑의 화신이신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을 사랑을 추상명사라고 하고, 성경은 동사로 봅니다. 성경은 사랑을 실제적 삶이라고 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의 실제적인 규정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사랑의 화신이신 주님의 성탄을 준비해야 옳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오래 참고라고 합니다. 뜻밖입니다. 사랑을 얘기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이 첫 번째 정의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합니다. 설레게 하는 것, 눈물의 씨앗이라 하지 않고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추상이나 감성과는 거리가 먼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규정입니다.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 것은 성경밖에 없을 겁니다. 참는 것은 시간적으로는 기다린다는 뜻이고, 질적으로는 견딘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주님이 오래 참지 않으시면 우리는 수없이 저주를 받았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6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후서 3장 9절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골로새서 3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오래 참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입니다. 막연하거나 감상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사랑이라고 하지 맙시다. 오래 견디는 것이 사랑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 이웃에 대해서 오래 참아야 합니다. 더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도 우리를 그렇게 참아주고 계십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오래 참는 사랑입니다. 


다음은 온유한 것이 사랑입니다. 온유는 남에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입니다. 추상적인 정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남에게 온유해야 합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마태복음 11장 29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성화들을 보면 주님의 이미지가 모두 온유합니다. 아마 주님의 실제 모습도 그랬을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에 대해 나는 마음이 온유하다고 하신 그대로 주님은 온유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모두 주님처럼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서와 이미지는 온유함이 그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문화나 정서는 얼마나 폭력적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막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반기독교적이고 반성서적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은 온유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것이 강한 것입니다. 거친 강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 사람의 겉옷을 벗겼습니다. 주님의 온유함을 배웁시다. 더욱 부드러운 사랑의 사람이 됩시다. 온유가 성탄을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기, 헬라어로 <젤로이>는 투기나 질투라는 말입니다. 사전적으로 질투와 분노가 끓어오는 것이 시기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에는 결코 시기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 이하입니다.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요셉도 형들의 시기심 때문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사울 왕도 다윗을 질투해서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길을 걸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입니다. 그는 왕자였지만, 다윗이 하루아침에 자기의 경쟁자가 되어도 그를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사무엘상 20장 17절입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요나단에게는 다윗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있었기에 그를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도 보십시오. 어제까지는 자기를 따르던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몰려갔습니다. 심지어는 그의 제자들까지 예수에게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3장 29절 이하입니다.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그런데 이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이 충만해지면 반드시 시기심이 극복됩니다. 여러분,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인 이 대강절에는 질투심과 시기심을 발동하기보다는 진정으로 남을 축하하고 축복하며 자신을 겸허하게 비웁시다. 복잡하고 잡다한 감정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결코 주님이 성탄할 수 없습니다. 깨끗이 비운 마음에 주님은 새롭게 성탄하실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구현하여 주님을 뜨겁게 체험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