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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인생은 나그네길
설교본문 히 11:13-1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9-02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902n.mp3

20180902n

히 11:13-16

인생은 나그네길


(히 11:13-16, 개정)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최희준 선생이 고인이 되었습니다. 지난 달 8월 24일 82세를 일기로 작고했습니다. 그분이 부른 노래 가운데 하숙생이 유명합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렇게 노래했는데 그분은 이 땅에서의 하숙 생활을 접고 본향으로 귀향했습니다. 최희준 씨의 하숙생뿐만 아니라 성경도 우리를 나그네라고 합니다. 본문 13절 하반절입니다.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6절 상반절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본문뿐 아니라 성경의 유수한 믿음의 선진들도 모두 자기를 나그네로 고백합니다. 창세기 23장에서 아브라함이, 49장에서는 야곱이, 시편 39편에서는 다윗이, 신약의 베드로 사도도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모두 객지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가 객지에서 나그네 생활을 해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사는 게 옳고 바른 것일까요? 하숙생 신분에 어울리는 삶은 무엇일까요? 최희준 씨는 정일랑 미련일랑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만 성경은 무엇이라 가르칩니까?


우선 성경은 현세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주어진 과제에 충실하되 거기에 안주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왜 이런 권면을 할까요? 우리는 나그네요 하숙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우리가 마냥 살 본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광야를 거쳐 가듯 그렇게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리 물이 많은 오아시스라 하더라도 절대 거기에 정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천혜의 오아시스인 엘림도 떠났습니다. 하숙방에 마냥 뭉그적대면 되겠습니까? 세상에 연연하는 사람은 본향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본향이 없기에 광야에 눌러 앉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세상에 대한 애착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향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요단강을 건너 들어갈 가나안이 우리의 최후 목적지입니다. 거기가 우리가 살 영원한 본향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절대 연연하거나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나그네는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최대한 간편한 몸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이후의 12장 1절입니다.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온갖 무거운 짐을 진 나그네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딱합니까? 얼마나 미련합니까? 나그네는 몸이 가벼워야 합니다. 생활이 방만하면 순발력이 떨어집니다. 언제든 다시 출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짐이 많으면 그게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든 짐을 주님께 맡깁시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가볍게 해주겠다.’ 가진 게 많아 짐이 무거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뒤쳐집니다. 그러면 자칫하면 가나안 대열에서 낙오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나그네는 객지에 자꾸만 투자합니다. 지혜로운 나그네는 한 푼이라도 알뜰히 천국 곳간에 축적합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는 가난하게 사는 게 맞습니다. 천국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허투루 듣지 맙시다. 소박하고 간단하게 삽시다. 


나그네는 늘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16절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도 모두 본향을 사모하며 살다가 천국으로 귀향했습니다. 나그네는 본향이 인생의 목표요 목적입니다. 우리의 종착지는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향을 바라보며 그리워해야 합니다. 길을 잃지 않고,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온갖 고난을 견디려면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본향을 대망해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비록 애굽에서 살다가 거기서 죽었지만 그는 언제나 가나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유언으로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갈 때 내 백골을 가져가서 거기에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그 후손들이 출애굽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져나와서 가나안에 묻었습니다. 죽으면서라도 가나안을 대망한 사람은 백골로라도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을 실향민이라 부릅니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는 실향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본향, 아버지 집, 아버지의 품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본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권자요 가나안 국적을 가진 자들입니다. 한 순간도 이 사실을 잊지 맙시다. 이 땅은 나그네 된 우리가 잠깐 거쳐 가는 객지입니다. 저 천국은 우리의 영원한 본향입니다. 본향을 희망하며 살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부르실 때 아버지 품에 안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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