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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요셉에게 배우자!
설교본문 창 45:3-8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8-12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812n.mp3

20180812n

창 45:3-8

요셉에게 배우자!


(창 45:3-8, 개정)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저는 우리 민족의 화해와 관련하여 롤모델로 삼아야 할 성경의 인물이 있다면 요셉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은 요셉이 자기를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졌다가 외국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렸던 형제들을 13년 만에 극적으로 만나서 그들을 용서하고 통곡하며 화해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끝까지 형제애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그를 가장 편애한다는 이유로 다른 형제들로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형들이 그를 죽이려고 구덩이에 빠트린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를 다시 구덩이에서 끌어올려 미디안 장삿꾼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런 형제들을 증오하거나 원수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45장 1절 이하를 보면, 요셉이 13년 만에 형들을 만나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해 방성대곡했다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복수의 칼날을 갈다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면 당장 요절을 내고 말았을텐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라는 천하대국의 총리 공관이 떠나가도록 크게 울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도 요셉의 형제애가 필요합니다. 북녘 사람들은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지난 70년간 우리가 서로 저주하고 증오하며 살았습니다. 철저히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맞서며 살았습니다. 그것은 율법일 뿐입니다. 복음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 그런 형제애로 자신의 뼈아픈 상처를 극복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북녘 사람들을 향해 좀 더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요셉과 같은 형제애를 발동해야 합니다.


요셉은 유명한 그의 섭리신앙을 발동했습니다. 요셉이 자기를 배신한 형제들을 만나 방성대곡하며 극적으로 화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철저한 섭리신앙이 숨어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아픈 과거사를 운명의 장난이나 형들의 악의로 치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경륜으로 이해하고 해석했기에 형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깊은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억울하기 그지없고 원통하기 그지없는 불행입니다. 아무리 형제라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치명적인 배신인데 요셉은 그것을 인간적인 비극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배후에는 보다 깊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5절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7-8절도 보십시오.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떠는 형들에게 요셉이 한 말입니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철저히 하나님의 섭리로 돌렸지 그는 형제들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근심하지 말라며 형들을 위로합니다. 


우리에게도 요셉과 같은 섭리신앙이 필요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명, 민족사를 관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사람이 제멋대로 역사를 주무르는 것 같지만 그것은 어림없는 얘깁니다. 인간사 그 어떤 사건도 하나님의 간섭 없이는 이루어지는 게 없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배신당하지 않았다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지 않았다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그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을까요? 요셉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할 때, 거기서 애굽 정부의 고위관료를 만납니다. 거기서 요셉이 그의 난해한 꿈을 해몽해줬습니다. 그 관료가 복직했을 때 바로가 난해한 꿈을 꿉니다. 그런데 해몽할 이가 없었습니다. 그때 갖 감옥에서 나온 고위관료가 요셉을 기억합니다. 그가 요셉을 바로의 꿈 해몽자로 추천합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거침없이 해석합니다. 요셉은 단순한 꿈 해몽에서 멈추지 않고 7년 풍년, 7년 흉년에 대한 대비책까지 제시합니다. 바로가 요셉의 혜안에 탄복하면서 그 자리에서 그를 총리로 임명합니다. 이방인 노예로 감옥살이를 하던 죄인이 하루아침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소설 같은 반전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요셉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도 요셉의 섭리사관을 배웁시다. 요셉의 감동적인 고백을 다시 들어봅시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해석과 확신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섬김의 정신입니다. 평화나 화해에는 반드시 희생 제물이 요구됩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습니다. 자식이 고집을 피우면 대개는 부모가 집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져주지 않으면 그 자식과는 원수가 되고 맙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화해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이 져주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도 보십시오. 강자는 요셉입니다.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요셉은 당시 유일한 강대국 이집트의 총리이고, 요셉의 형들은 이집트까지 양식을 구하러온 거지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가 받은 놀라운 복과 은혜를 복수하는 데 쓰지 않고 형제들을 용서하고 섬기는 데 썼습니다. 본문에 이어지는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원래 화해는 강자가 먼저 손을 내밀고 양보해야 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겼지, 제자가 주님의 발을 씻기지 않았습니다. 약자는 자존심이 전부이기에 먼저 숙이기 쉽지 않습니다. 이집트 총리인 요셉이 먼저 형들을 끌어안은 것처럼 강한 사람이 먼저 약자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이어지는 14-15절도 보십시오. “[14]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15]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요셉이 먼저 그들을 끌어안고 입맞추며 울자 그제서야 형들도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포용하고, 과감히 북녘 동포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요셉의 다짐과 결단을 배워야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독일도 보십시오. 잘 사는 서독이 못 사는 동독을 섬겼습니다. 


요셉을 우리의 화해와 통일의 훌륭한 모델로 삼읍시다. 그의 형제 사랑과 섭리신앙과 희생과 섬김의 신앙을 본받읍시다. 그래야 우리도 화해와 통일을 이룩하여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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