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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나의 그릇
설교본문 행 9:15-19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7-15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715n.mp3

20180715n

행 9:15-19

나의 그릇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천하의 바울, 안하무인의 유대교 전사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주님을 극적으로 만납니다. 사도행전 9장 1절 이하입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은 이 사건으로 눈이 멉니다. 빛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사흘 동안 그는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0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바울을 찾아가라고 합니다. 아나니아는 이렇게 답합니다. 13절 이하입니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그때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다시 말씀하신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가라고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로 말하면 호전적으로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박멸하는 데 가장 열을 올리던 선봉장이었습니다. 스데반을 살해할 때도 바울은 주동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죄인 중 괴수라고 했는데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두고 나의 그릇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바울을 저주는커녕 내가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바울이 악했지만 지금은 회심했기에 나의 그릇으로 택했다가 아닙니다. 이 사람은 창세 전에 이미 내 그릇으로 택한 사람이기에 내가 그의 회개와 개종을 강제했으니 네가(아나니아) 가서 도와주라는 뜻이 오늘 본문입니다. 바울이 헌신하고 희생을 많이 했기에 주님이 당신의 그릇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택함을 얻은 주님의 그릇들이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강제로 회심시키고 믿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릇은 다양합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다양한 그릇으로 택하셨습니다. 용도가 다를 뿐입니다. 바울도 한참 뒤에 그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입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당신의 자녀로 택하셨기에 우리가 그렇게 못난 짓을 하며 살았음에도 결국 불러주셨습니다. 강제로 우리를 쓰러트리고 목을 눌러 회개시키셨습니다. 


구약 예레미야 1장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레미야가 선지자의 소명을 사양합니다. 그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아이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네가 엄마 배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선지자로 세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고, 무엇을 명령하든지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다 창세 전에 택함을 입은 주님의 그릇입니다. 우리의 수용이나 부정과는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준비된 상태는 이것입니다. 우선 그릇은 깨끗해야 합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눈에 씌었던 죄악의 꺼풀이 벗겨졌습니다. 세례도 받았습니다. 과거의 모든 죄를 씻고, 죄인의 괴수로 살던 옛 사람을 수장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주님이 쓰기에 합당한 모습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신 주님의 그릇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그릇임에도 쓰임 받지 못한 이유입니다. 우리의 그릇을 비웁시다. 주님이 신령한 것을 담고 싶어도 우리 그릇이 가득 차 있습니다. 바울이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릇에 담긴 모든 것을 비우고 씻어냈듯이 우리 그릇도 그렇게 비우고 씻읍시다. 준비된 그릇이 됩시다. 


주님의 그릇이 갖추어야 할 필수덕목 두 번째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도금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욱 아름답고 빛나는 그릇이 됩니다. 본문 17절 하반절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주님의 그릇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성령으로 도금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 능력이나 재주로 일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이후의 삶을 오직 성령에 붙잡혀 삽니다. 그의 일을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성령의 능력을 덧입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반을 넘게 바울이 썼습니다. 그가 개척한 교회도 확인된 것만 20개입니다. 그 옛날에 오직 도보로 아시아와 유럽을 여행하며 무려 20여개 처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박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틈틈이 장막 짓는 일로 생활비를 조달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그릇은 무엇보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릇 안팎이 성령으로 확실히 도금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무슨 일이든 주님께 쓰임 받는 합당한 그릇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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