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60
Extra Form
설교제목 바울의 감사
설교본문 고후 1:3-11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7-0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701n.mp3
20180701n
고후 1:3-11
바울의 감사

(고후 1:3-11, 개정)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은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하고, 마지막 11절은 감사로 끝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찬송과 감사 그 사이입니다. 3절과 11절 사이입니다. 절마다 환난과 고난이 가득 차 있습니다. 심지어 사형선고도 나오고, 큰 사망도 나옵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울이 말씀하는 찬송과 감사는 다 환난 중에도 하나님께 바치는 찬송이고, 고난 중에도 주님께 올리는 감사이고, 사형선고 중에도 하나님께 올리는 영광입니다. 보통은 일이 잘 되어야 감사합니다. 성공하고 형통해야 감사하고 기뻐하며 찬송합니다. 시련이 닥치거나 시험이 오고 실패하면 감사는커녕 비관하고 원망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실패하고 고통당하고 시련이 닥치고 시험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이게 어떻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바울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우선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를 체험하기에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환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난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고통당할 때 특별히 우리를 찾아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절 상반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주님은 우리가 환난당할 때 가장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성도에게 고난이 닥치면 성령은 비상체제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결코 우리를 고난의 장에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고 시험을 당해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연약할 때가 강할 때라고 합니다. 성령이 특별한 관심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환난 중에도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을 만납시다. 그러면 더는 환난이나 불행이 아니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도 바울처럼 환난 중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환난을 통해 고난당하는 이웃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기에 환난 중에도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4절 하반절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환난을 겪어본 사람만 환난 당하는 이웃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한 사람만이 환난 당하는 이웃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난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인간미가 넘치게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든든한 위로자가 되시는 것도 주님이 짧은 생애 동안 친히 환난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환난의 정점까지 가보신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십니다. 주님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의 위로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고난을 겪어봐야 그런 아픔 중에 있는 이웃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고 위로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이야말로 감사해 마땅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고 주님만을 더욱 붙잡게 하기에 환난 중에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9절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바울이 겪은 고난이 얼마나 처절하고 절망스러웠으면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했겠습니까? 사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면 그런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때는 돌에 맞아 혼절했는데 사람들이 바울이 죽은 줄 알고 그를 성 밖에 내버렸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런 환난을 주셨습니까? 바울로 하여금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그 환난이 어찌 은혜요 복이 아닌가라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길 때는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주옥같은 시들이 그때 나온 신앙고백입니다. 나중에 궁중생활을 할 때는 시 한 편도 짓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밧세바 사건이 터집니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참회의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주님이 때로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오직 주님만 바로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환난이 은혜요 복임을 깨닫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아픔과 고통은 전적으로 주님만 의뢰하게 하려는 주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