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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자연과 말씀
설교본문 시 19:1-1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6-03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603n.mp3

20180603n

시 19:1-14

자연과 말씀


(시 19:1-14, 개정)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편은 유명한 장인데, 주제가 두 가지입니다. 자연과 말씀이 주제입니다. 인생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복과 선물이 무엇일까요? 시편은 답하기를 자연과 말씀이라고 합니다. 자연과 말씀은 하나님이 인생에게 당신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신 가장 위대한 계시의 수단입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는 자연을 일반계시라 하고, 말씀을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일반 은총, 특별 은총이라고도 합니다. 시편 19편은 이 두 가지 계시와 은총을 우리에게 다 말씀합니다. 본문을 문단으로 나누면 1-6절까지는 자연을 말하고, 7-10절까지는 말씀, 11-14절은 이 두 은총에 대한 다윗의 응답입니다. 


우선 자연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자연에는 하나님의 능력, 신성이 나타나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자연이 있는 한, 우리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한, 누구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연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교과서요,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는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 이하입니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언어도 소리도 없지만 자연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 하나님을 드러내는 계시라는 말씀입니다. 6절 하반절입니다.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우리는 자연에서, 저 들풀 한 포기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가닥 햇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무한한 우주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신비와 조화,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오묘하신 능력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그 넉넉함과 풍성함을 통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자연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자연은 이렇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계시하는 풍요하고도 위대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자연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자연은 일반계시로서의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과 위대하심을 자연이 웅변하고 있지만 보다 결정적인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나 속죄의 은총을 깨닫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연이 주님의 성육신을 우리에게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십자가의 구원을 계시하지는 못합니다.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하나님 이해나 인식에는 자연이 도움이 되지만 결정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 은총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는 말씀이 절대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느끼고, 그의 존재를 체험하는 데는 자연이 대단히 유용하나 구원을 얻게 하는 데는 특별계시, 특별 은총인 말씀이 절대적입니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선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놀랍게도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설교는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입니다. 육신이 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설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록된, 선포된,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 가지 하나님의 말씀의 형태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경도 읽어야 하고, 설교도 들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도 열심히 좇아가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 말씀이라는 특별계시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절 이하도 보십시오.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말씀이 순금보다 더 귀하다고 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돈은 우리를 죽이지만 말씀은 우리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윗이 응답합니다. 하나님의 자연과 말씀 앞에서 다윗은 두 가지를 결단합니다. 13절입니다.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는 한, 우리가 짓는 모든 죄는 고범죄입니다. 고범죄는 고의로 짓는 죄입니다. 민수기 15장은 이를 그릇 범죄라 하고, 히브리서는 짐짓 죄라고 했습니다. 알고도 짓는 죄를 가리킵니다. 자연이라는 일반계시가 있고, 말씀이라는 특별계시가 있어 이미 다 알지만 우리는 죄를 범합니다. 그것을 두고 고범죄, 짐짓 죄라 일컫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범죄를 범치 말게 해달라고 합니다. 모르고 짓는 죄는 정상참작이 됩니다만, 알고 짓는 죄는 악성입니다. 


다음으로 다윗은 자신의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바랍니다. 14절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마음이 성결해야 합니다. 자연과 말씀의 계시에 늘 바르게 응답하며 살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자연이라는 일반계시가 있습니다. 성경과 설교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특별계시가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더는 고범죄를 짓지 않고, 생각이나 말로 하나님을 늘 영화롭게 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다윗의 그것처럼 하나님을 기쁘고 영화롭게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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