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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청년과 성령
설교본문 삿 6:1-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5-20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520n.mp3

20180520n

삿 6:1-6

청년과 성령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5]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본문을 지나 6장 34절 상반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지금으로부터 3000년도 더 된 구약 사사시대였는데, 그때도 이미 청년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신이 강림했습니다. 이 대목을 히브리어에서 직역하면 <하나님이 기드온을 하나님의 영으로 옷 입혔다>입니다. 요즘은 잘 쓰지 않습니다만, 예전에는 장로님이 설교하는 목사님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혀달라고 자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힌 것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성령충만했습니다. 


여러분은 기드온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300명의 군사로 개미떼 같은 미디안을 물리친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전사입니까? 그런데 사실 기드온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영웅도 위인도 전사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잘 난 사람이 아닙니다. 6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경유형이지 그가 본래 큰 용사여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닙니다. 


6장 11절 하반절입니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당시 미디안 사람들은 교활해서 한창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추수 때가 되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이 어렵게 추수한 곡식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추수한 밀을 포도주 틀에 숨어서 타작합니다. 타작은 넓은 마당에서 합니다. 포도주 틀은 통일 뿐인데, 그 좁은 공간에서 밀 이삭을 타작하고 있었다는 건 말이 타작이지 한 알씩 까고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가장 비굴한 모습으로 숨어서 밀 이삭을 하나씩 까고 있는데, 그런 기드온 앞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라고 부릅니다. 사람을 놀리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15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셔서 네가 이스라엘을 미디안으로부터 구원하라 큰 용사여! 라고 하자 기드온이 자기는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자기는 작은 자라는 겁니다. 그랬던 사람이 후에는 그야말로 이스라엘 전사에 길이 빛날 전과를 올리고 이스라엘의 뇌리에 영웅으로 각인되었습니다. 겁쟁이 청년이 어떻게 하여 하루아침에 이스라엘 군대를 진두지휘하는 장군이 되고,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사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 포인트가 바로 6장 3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여호와의 영 때문입니다. 겁쟁이가 탁월한 리더로 세워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는 유대인들이 두려워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자 거기서 나와 복음의 전사들이 되었습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두려워 떨던 베드로가 성령을 받자 하루에 3천 명씩 회개시키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 성령 받았다는 것의 차이입니다. 주님의 영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약함, 두려움, 무능, 인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기드온처럼 베드로처럼 사도들처럼 담대히 주님의 일을 할 수도 있고, 앞장 서 나팔을 불 수 있고, 위기에 처한 그 사회와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명하신 성령강림의 전제는 무엇일까요? 6장 25절 이하입니다. “[25]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26]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이것은 우상의 제단을 헐라는 말씀입니다.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찍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수소를 잡아 그 찍어낸 아세라 목상으로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사람이 그때까지도 바알과 아세라를 하나님과 함께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며 우상에게도 기도하고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도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우리에겐 이런 우상이 없을까요?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면 그것이 모두 우상입니다. 그것들이 나의 바알이고 아세라입니다. 기드온 시대 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사람들도 얼마든지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바알이 있고 아세라가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척결하지 않으면 성령이 우리에게 감림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다 내려놓고 비워야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목상으로 번제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완벽하게 척결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충만이 이뤄지고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할 수 있습니다. 무섭고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모험이었지만, 우상의 단을 허물고 거기에 우상 대신 여호와의 번제단을 쌓으라는 명령에 기드온이 순종했기에 그에게 강력하게 성령이 임합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기드온처럼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의 제단을 척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래야만 큰 일을 할 수 있고, 적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분부하신대로 우상을 척결하고 그 제단에서 찍어낸 아세라 목상을 태워 번제를 드리자 드디어 기드온에게 성령이 강림합니다. 그래서 졸지에 겁 많던 청년이 담대해지고, 작은 자라고 했던 청년이 명실상부한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앞에 나서 군대를 소집하고 나팔을 불었더니 전국에서 32,000명이 모였습니다. 기드온이 크게 고무되었는데, 하나님은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십니다.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집에 돌려 보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겨우 1만 명만 남았습니다. 2/3가 돌아간 것입니다. 적 미디안 군대는 메뚜기떼나 해변의 모래처럼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도 숫자가 많으니 줄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냇가로 인도해 물을 마시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물에 얼굴을 박고 마시는 사람들은 다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 서서 손으로 움켜 마시는 사람만 남기라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300명만 남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300명만 남기고 다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300명으로 메뚜기떼와 해변의 모래같은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은 그들 300명이 창과 칼과 방패가 아니라 항아리, 횃불, 나팔로 싸웠습니다. 300명을 100명씩 편제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동시에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고 함성을 지르며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뛰라고 했습니다. 적들이 보고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횃불을 보고 반딧불로 여기고, 항아리를 깼다고 하지만 그 소리가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 자다가 깬 미디안 군사들이 서로 자기들끼리 싸웠습니다. 자기들끼리 싸우다 다 도망갔습니다. 창 한 자루, 칼 한 자루 없고 항아리 깨고 함성 지른 것밖에 없는데 300명 기드온 군사들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메뚜기떼 같은 적군을 300명으로 상대하게 하셨습니까?


7장 2절로 하여금 자기들 손으로 전쟁을 이겼다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서 싸우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의 군대는 무기도 없었기에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3만 2천이나 되는 다수보다 성령으로 무장한, 성령충만한 300명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숫자가 아니라 성령께 붙잡힌 사람만 쓰십니다. 성령충만합시다. 그래야 세상과의 한 판에서 우리가 이깁니다. 성령충만해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어디서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고, 기드온처럼 위기 앞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기드온의 화신이 되시고, 300명의 전사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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