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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비포와 애프터
설교본문 눅 24:28-35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4-08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408n.mp3

20180408n

눅 24:28-35

비포와 애프터


(눅 24:28-35, 개정)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보통 성형광고를 할 때 수술 전후를 대비하여 수술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본문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비포와 애프터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성형을 한 사람만큼이나 부활하신 주님을 뵌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13km 정도 떨어진 마을입니다. 부활절 당일 두 제자가 거기로 낙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부활하신 주님을 아직 뵙지 못했기에 그 얼굴이 어두웠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5절 이하입니다.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당시 그들이야말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당일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여인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11절에 보면 그들은 여인들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했습니다. 


이렇게 눈도 귀도 가려져 있던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나서는 이렇게 변합니다. 31절입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누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면 반드시 눈이 밝아집니다. 눈과 귀가 열려 주님을 보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눈이 열렸다는 것은 영안이 열렸다는 것이고, 귀가 열렸다는 것은 영귀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신령한 눈과 귀가 열린 겁니다. 우리는 늘 말씀을 들어도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계시하셔도 제대로 보지도 깨닫지도 분별하지 못합니다. 우리 눈과 귀가 가려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처럼 주님을 뵙기 전에는 누구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뵙고 나면 눈과 귀가 열려 신령한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부활하신 주님을 뵈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눈과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계시를 제대로 깨닫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뵙기 전에는 그들의 마음이 몹시 어둡고 슬펐습니다. 17절 하반절입니다.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그들은 아직 주님의 십자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주님이 부활하셨는데도 그들은 아직 주님을 뵙지 못했기에 여전히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3년간 주님을 따라다니다가 십자가 사건으로 낙담해서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향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21절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그들이 이렇게 기대했는데, 십자가를 맞았으니 얼마나 착잡했겠습니까? 


그랬던 그들이 엠마오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주님의 말씀을 듣자 그들은 32절처럼 됩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고 가볍게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십니다. 요즘은 사람 마음을 움직이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문화 자체가 지극히 자극적이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면 우리는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기쁘고 즐겁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행복을 느낍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도 그렇게 슬프고 우울했는데 주님이 말씀을 풀어주시니까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올해도 새롭게 부활하신 주님을 새로운 감격으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우울했던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기를 빕니다. 


당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는 깊은 불신앙에 빠져 있었습니다. 22절 이하입니다.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두 제자는 이미 여인들에게서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25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두 사람의 불신앙을 꾸짖습니다.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예루살렘의 여인뿐만 아니라 이미 성경이 나(예수)의 부활을 예언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의 책망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엠마오 도상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들에게 주님 만난 이야기를 간증하며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34절 이하입니다.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그들은 자기들이 주님을 만난 것을 알리며 이제는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변해야 합니다. 부활의 산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을 확신하며 늘 부활의 산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부디 엠마오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칼처럼 비포와 애프터가 갈린 두 제자처럼 우리의 삶도 완전히 변하고 새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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