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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부득불 할 일
설교본문 고전 9:16-27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2-04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204n.mp3

20180204n

부득불 할 일

고전 9:16-27


(고전 9:16-27, 개정)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예정과 선택의 교리를 믿는 장로교 신자 가운데 전도나 선교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게 전도하지 않아도 예정된 사람이면 하나님이 결국 그를 구원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전도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는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아무리 선택 받고 예정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제 발로 걸어 나오게 하지 않고 우리의 전도를 통해 당신께 나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 1:21). 우리를 당신 구속사의 동반자로 참여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훗날 큰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존심을 깔아뭉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전도한다 하여 다 성공하는 경우보다 실패할 때가 더 많습니다. 요즘은 전도하기가 더 힘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누가 과연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인지를 알지 못하기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기회 있을 때마다,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 당신 백성을 당신께로 이끄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겨울에는 나무가 다 죽은 것 같습니다. 산 나무와 죽은 나무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봄소식이 전해오면 살아 있는 나무는 그 소식에 반드시 응답합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에게 아무리 봄소식을 전해도 반응은 없습니다. 이것은 나무가 죽은 탓이지 봄을 전하는 봄 처녀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봄소식을 전하면 됩니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피우지 않고는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면 반응할 것입니다. 백두산의 나무라면 한라산보다는 더디게 반응할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비록 미련한 짓일지라도 절대 전도 그 자체를 외면하거나 남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전도는 그게 아무리 미련하고 한심한 짓 같아도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이깁니다. 전도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보십시오.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한쪽은 전쟁의 달인이요 완전무장한 290의 거인입니다. 한쪽은 나이어린 목동입니다. 그 둘을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다윗에게는 몸에 맞는 갑옷도, 들고 나갈 무기도 벅찼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다윗이 천하무적 골리앗의 목을 벴습니다. 이게 전도입니다. 만일 다윗이 이것은 미련하고 무모한 싸움이라고 하여 회피했다면 골리앗을 제압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에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초대교회가 이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하며 단념했다면 천하무적의 로마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두더지처럼 땅 속에서 살았는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전도를 자랑이 아닌 빚을 갚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6절 상반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복음 전하는 일은 빚 갚는 것과 같아서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에 결코 자랑할 게 못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하면 상을 줍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도를 해도 상 받을 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빚이기 때문입니다. 빚지고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닙니다. 빚쟁이에게 시달려본 분들은 그게 어떤 고문인지 잘 아실 겁니다. 부득불 갚아야 할 것이 빚이고 안 갚으면 화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오죽하면 빚진 죄인이라고 할까요. 바울은 우리 모두가 빚진 자라고 합니다. 바울은 남에게 전도 받은 케이스가 아닙니다. 주님이 직접 그를 부르셨습니다. 복음의 빚쟁이인 우리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그는 누구보다 복음의 빚쟁이 의식에 투철했습니다. 우리야말로 정말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내가 남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된 것처럼 나도 남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빚을 갚는 것입니다. 빚을 갚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하듯 복음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의 피값을 너희 손에서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삶이라고 합니다. 18절 이하입니다.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절 이하의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것 같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 같이, 이방인에게는 이방인 같이 변신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말로 전도한 게 아닙니다. 그는 온 몸, 생활로 전도한 것입니다. 주님도 전도는 삶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권리를 다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리고 자기 몸을 치면서 전도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전도를 입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화술로 전도한다고 하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삶이고 착한 행실입니다. 왜 갈수록 전도가 안 될까요? 왜 갈수록 전도가 힘들까요? 왜 사람들은 성경은 좋아해도 기독교는 싫다고 할까요? 자기를 치며 희생하고 복종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점점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기독교인들이 더 깍쟁이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더 탐욕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네가 믿는 예수라면, 네가 다니는 교회라면 나는 싫다’는데 무슨 전도가 되겠습니까? 바울은 자기가 평생 삶으로 전도했다고 고백합니다. 25절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부디 전도왕이었던 사도 바울의 고백과 체험을 가슴에 담고 좀 더 절제하고 한 영혼을 얻기 위해 희생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바울은 전도는 일과성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전도는 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평생 시도 때도 없이 해야 합니다. 한두 건 실적을 낸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합니다. 전도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전도에는 소명자나 사명자가 따로 없습니다. 우리는 착각합니다. 전도자로 세움을 받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입니다. 모든 신자가 전도의 사명자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7절입니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이것은 우리에게 말씀하는 전도 목표치입니다. 에스겔 33장 8절입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전도는 신자에게 무조건적 책임입니다. 전도는 모든 믿는 자들의 전공필수입니다. 주님도 유언처럼 우리에게 전도를 지상과제로 주셨습니다. 바울도 전도에 목숨을 걸고 고군분투하다 순교했습니다. 


부디 전도합시다. 좀 더 책임감과 위기의식을 갖고 평생을 두고 달음질하듯 전도에 최선을 다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