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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여호와의 유혹
설교본문 호 2:14-20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1-28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128n.mp3

20180128n

호 2:14-20

여호와의 유혹


(호 2:14-20, 개정)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본문 14절 상반절입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타일렀다는 말씀입니다. 타이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파타>인데, 타이르다는 어감과는 달리 우리말 정서로는 19금에 가까운 이성을 유혹하다, 꾀다는 뜻입니다. 특히 남성이 여성을 꾀어 넘어오게 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의 관계를 연인관계, 부부관계로 비유하시며 남자가 여자를 꾀듯이 우리를 꾀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19절도 보십시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하나님은 우리를 장가들겠다며 꾀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유혹에는 그렇게도 혹 하면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설득하시고 꾀시는 데는 그렇게도 완강하고 강퍅한지 모릅니다. 마치 호세아서의 여주인공 고멜이 바로 우리의 모습니다. 고멜이 남편의 말에는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외간 남자의 꾐에는 밥 먹듯이 넘어갑니다. 호세아는 그때마다 그녀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이 바로 고멜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 우리가 그렇다는 고발입니다. 이게 바로 타락한 인간의 전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설득에는 넘어가지 않으면서 세상과는 툭 하면 눈이 맞아 가출을 일삼고 외도를 밥 먹듯 하는 인생, 이것이 바로 이 시대 우리의 적나라한 실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 유혹이 아니라 하나님 유혹에 넘어가야 하는 우리가 왜 세상 유혹에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까요? 하나님 꾐에 빠져야 행복해지는데, 세상 유혹에 넘어가면 불행해지는데 왜 하나님의 유혹을 비웃고 세상 유혹에 터무니없이 넘어갈까요? 아무리 나를 행복하게 해줄 듯이 들려도 내가 세상 유혹에 넘어가면 파멸에 이를 뿐인데, 왜 나는 세상 유혹에 빠지기만 할까요? 


우리의 정서가 그만큼 세상 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세속화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리 체질이 세상 문화에 친화적으로 변질되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서 부르는 찬송, 교회에서 맺는 인간관계 등이 불편하고 거북하고 진부해서 싫게 된 겁니다. 반면에 세상 문화는 거부감 없이 오히려 재미있고 더 정감 있고 진솔하고 뒤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자들끼리 훨씬 더 속을 터놓지 못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세상 쪽으로 경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경계심도 거리낌도 없이 무방비로 세상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신자에게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이 나를 유혹하고 꾀면 무조건 넘어갈 태세가 되어 있기에 영적으로 보면 지금이 우리의 최대 위기입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살려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혹과 설득에 당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한 하나님의 거룩한 유혹에 빠지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집니까? 

우선 위로와 포도원을 주십니다. 14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이것은 아무리 험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나로 하여금 용기를 잃지 않게 하시고, 내 삶의 방편을 하나님이 확실하게 보장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거친 들이라 해도 하나님의 위로와 포도원이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유혹에 빠지면 결국 내가 파멸하지만, 아무리 황량한 세상이라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유혹에 넘어가면 거기에 위로와 포도원이 보장됩니다. 


다음은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15절입니다.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아골 골짜기는 요단 서편 깊은 계곡입니다. 거기는 늘 쓰레기장이었고, 한 때는 몰록 신에게 자기 자식 잡아 바치던 곳입니다. 거기는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전한 후 아간을 처형했던 악명 높은 죽음의 계곡입니다. 그러므로 아골 골짜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절망의 나락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설복되면 그 지옥 같은 골짜기가 죽음의 문이 아닌 소망의 문이 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지금 아골 골짜기에서 절망하고 계신 분 있습니까? 죽음의 문 앞에서 떨고 계시는 분 있습니까? 주님이 유혹하고 꾀실 때 무조건 넘어가십시오. 주님께 설복 당하십시오. 그러면 그 절망과 죽음의 계곡이 소망의 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를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를 내 남편이라 일컫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바알의 꾐과 추파에 넘어가면 바알이 내 남편이 되지만, 여호와에게 넘어가면 여호와가 내 남편이 됩니다. 여호와의 유혹에 넘어가서 여호와를 내 남편으로 모신 자는 복 있는 여호와의 신부가 됩니다. 세상에서 그 사람보다 복 있는 신부는 없습니다. 어떻게 여호와를 판검사 남편에 비유할 수 있으며, 의사 변호사 남편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가 내 남편이 되면 여호와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지 않습니까? 남편의 모든 것을 내가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남편이 1스타면 부인은 2스타입니다. 부디 여호와의 거룩한 설득과 타이름에 설복되어서 모두 여호와의 아름다운 신부들로 거듭납시다. 세상이 아니라 여호와를 진정한 남편으로 모시고, 여호와의 영원한 신부들로 살므로 여호와의 모든 복을 평생 마음껏 누리며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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