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57
Extra Form
설교제목 에녹 이야기
설교본문 히 11:5-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1-09-19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10919m.mp3

0919.jpeg

 

 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주일 아침 비대면 가정예배로 다시금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예배의 영,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 함께 하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산제사를 드리는 시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금주는 추석 연휴 주간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여전하오니 이동을 자제하며 안전한 가정에서 쉬게 하시고, 모두가 탈 없이 건강한 연휴를 보낼 수 있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주님, 

이 혼란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올 역시 저희들 우리 민족의 감사절인 추석 명절을 맞았사오니  더욱 감사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 가사 위로하시며 안수해주시고, 이런저런 이유로 가정예배 조차 힘든 성도들의 사정을 헤아리사 더욱 큰 믿음과 여러 조건들을 충족케하시므로 반드시 주일을 지키고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저희들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깨닫게 하시고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며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10919m

히 11:5-6

에녹 이야기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히브리서 11장을 우리가 뭐라고 합니까? 믿음장이라고 하잖아요. 성경에 나오는 기라성 같은 믿음의 선각들이 다 여기에 등재돼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먼저, 1절에는 믿음장답게 믿음에 대한 정의가 나오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리고 3절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4절 “믿음으로 아벨은”, 5절 “믿음으로 에녹은”,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7절 “믿음으로 노아는”,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9절 “믿음으로 그가 이방 땅에 있는 것 같이”, 11절 “믿음으로 사라는”, 12-13절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17절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20절 “믿음으로 이삭은”, 22절 “믿음으로 요셉은”, 23절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24절 “믿음으로 모세는”, 27절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28절 “믿음으로 유월절과”, 29절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30절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31절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33절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그리고 마지막 39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전당 혹은 명예의 전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전당에 제1호로 등재된 사람은 가인에게 살해를 당한 아벨이고, 제2호 인물이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에녹입니다. 여러분, 에녹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참 대단한 인물이죠. 본문 5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5절 이 한 절에 옮겨졌다는 말이 무려 세 번이나 나오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에녹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 구약 창세기 5장 24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애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 거기 나오는 데려가셨다는 말씀이 히브리어 ‘라카흐’인데, 그 단어가 바로 옮겨가다는 뜻입니다. 데려가다, 옮겨가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에녹을 옮기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에녹을 산채로 ‘라카흐’ 하셨다, 이 세상에서 하늘로 곧장 데려가셨다는 뜻입니다. 


참 놀랍고. 신비한 기적인데, 성경에는 이렇게 죽음을 거치지 않고 막바로 하늘로 간 또 한 사람이 있죠. 누굽니까?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 아닙니까. 엘리야의 선지자도 하나님이 죽음을 생략하시고 에녹처럼 그렇게 곧장 하늘로 ‘라카흐’ 하셨습니다. 이처럼 애녹은 특별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그래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직접 천국으로 옮겨진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이었는데요. 그렇다면 그 비결이 대체 뭐였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 부분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5절 하반절입니다.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그를 산 채로 천국으로 옮기셨다는 거예요. 연세 드신 어른들의 가장 큰 소망은 오직 하나죠. 평안히 천국 가는 것. 그런데 그 소원을 이루시려면 살아 생전 반드시 이 에녹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에녹이나 엘리아처럼 산 채로 옮겨지시지는 못하더라도, 험하고 고통스러운 최후가 아니라 보다 품위 있고 평안하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덜 끼치는 well dying, 보다 아름다운 최후,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에녹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을까요? 본문 6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믿음이요? 본문은 두 가지 일을 말씀합니다. 그가 계신 것과 또 그가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 먼저 그가 계신 것을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를 믿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실재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에녹이 평소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어떻게 믿었는지 창세기 5장 22절 이하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합니다. 몇 년을요? 무려 300년을. 얼마나 대단합니까?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할 수 있을까요? 불가사이 하지 않습니까? 


동행이 뭡니까? 함께 나란히 서서 혹은 함께 손을 잡고 서로 대화하며 교감하며 길을 걷는 걸 말합니다. 길을 가는 걸 말합니다. 동행,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되 정말 그분이 지금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길을 가고 계신다고 확신하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에녹은 늘 그렇게 생생하게 그렇게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심을 실감하며 체감하며 살았다는 겁니다. 300년을. 우리는 일 년도 몇 개월도 하나님과 동행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어 떤 때는 하나님이 계신 것 같고,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것 같이 느껴져도 또 어떤 때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전혀 나와 동행하고 계신 것 같지 않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자주 그런 회의와 불신 속에서 엎어지고 자빠지며 이 추석까지 왔습니다. 솔직히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한 적이 없는 우리들 아닙니까. 그게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에녹을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합니까. 얼마나 위대합니까. 300년을 하루같이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분과 나란히 동행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그를 기뻐하셨겠으며 또 그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셨으면 죽음마저도 생략하시고 하늘로 곧장 데려가셨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되 막연하게가 아니라 추상적 실체, 관념적 실체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지금 내 곁에서 나와 함께 동행하고 계신 분으로 확신하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22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날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이게 무슨 말씀이죠? 구약 시대, 에녹 시대 때는 사람들이 수백 년을 살았습니다. 그때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700년, 800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녹도 300년간이나 하나님과 동행했던 겁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인간의 수명이 그렇게 길지 않잖아요. 옛날처럼 그렇게 길었다가는 구원 얻을 육체가 아마 하나도 없을 겁니다. 불과 1년도 아닌 몇 개월도 하나님과 동행하기가 어려운 판에 수명이 그렇게 길면 끝까지 남아서 천국 갈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옛날보다 세상이 훨씬 더 악해졌는데요. 그래서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위해 인간의 수명을 크게 감하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지금은 몇 백 년이 아니라 몇 십 년만 하나님과 잘 동행해도 모두 천국 갑니다. 그럼에도 그것조차 힘들어하며 늘 불신과 회의에 빠져 방황하는 게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고 또 이 시대의 믿는 자들의 안타까운 삶의 현주소라는 겁니다. 부디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시고 에녹처럼 하나님과 보다 성실하게 꿋꿋하게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진정한 믿음입니다. 또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사 복되고 평안한 최후를 맞게 하십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란 그가 상 주시는 이임을 확신하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또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말씀하는 상이란 마지막 때, 최후 심판 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믿음 또한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신념입니다. 당시 에녹은 바로 이 최후 심판에 대한 믿음이 투철했다는 것이고, 그게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거예요. 에녹이 하나님의 심판을 얼마나 철저하게 믿고 당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얼마나 열심히 증거했는지는 신약의 유다서가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유다서 14절 이하입니다. “아담의 칠대손인 에녹이 사람들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경건치 않은 죄인들을 주께서 정죄하여 후에 반드시 심판하시리라” 에녹이 그 시대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열심히 경고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에녹은 장차 하나님이 심판을 통해 의인들에게는 상을 주시고 죄인들에게는 벌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었고, 또 그 사실을 세상에 널리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에녹의 아들입니다. 에녹의 아들, 누굽니까? 창세기 5장 21절입니다. “에녹이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인 므두셀라가 바로 에녹의 아들인데 몇 세까지 살았다구요? 969세. 그래서 인류 가운데 최장수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인물이 됐는데요. 여러분,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이 뭡니까? 그가 죽으면 심판이 닥친다. 심판이 온다. 그게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 이름은 하나님이 작명해서 아비인 에녹에게 주신 계시적인 이름이었습니다. 


그럼 정말 하나님이 주신 므두셀라라는 이름처럼 그의 죽음과 함께 세상에 심판이 임했습니까? 에녹이 세상을 향해 외쳤던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정말 이루어졌습니까? 여러분, 므두셀라의 아들이 누굽니까? 창세기 5장 25절 이하를 보면,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또 그 라멕이 182세에 노아를 낳았다고 합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므두셀라가 라멕을 낳고 라멕이 노아를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므두셀라의 손자인데, 노아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인 무드셀라의 연세는 369세였습니다. 그렇다면 노아의 홍수는 언제 발생했습니까? 창세기 7장 11절에 의하면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였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홍수가 발발했을 때 므두셀라의 나이는 몇 세였습니까? 므두셀라가 369세 되던 해에 노아가 태어났고,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에 심판의 홍수가 발생했으니까, 노아의 홍수가 터진 해에 므두셀라의 나이는 몇 세였죠? 구969세. 


창세기 5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므두셀라는 구백육십구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무슨 뜻이죠? 그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므두셀라가 969세로 이 세상을 떠나자 그 이듬해도 아니고 바로 그 해, 그러니까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에 이 땅에 가공할 심판의 대홍수가 임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노아의 방주 속에는 애녹의 아들이요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 해 홍수에 앞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경악할 사실입니까? 얼마나 무섭도록 자신의 약속과 계시에 철저한 하나님이십니까? 또 얼마나 그 하나님의 심판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던 에녹이었습니까? 그래 969년 후에나 올 심판을 얼마나 지독하게 믿었으면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죽음을 거치지 않고 직접 그를 하늘로 데려가셨겠습니까. 


여러분, 일찍이 에녹이 굳게 믿었던 하나님의 심판이 그로부터 1,000년 뒤, 정확히는 969년 뒤 므두셀라가 죽자 실제 대홍수로 임했던 것처럼 앞으로 있을 최후 심판도 반드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임합니다. 오늘 우리도 바로 그 사실을 믿고 에녹처럼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증거하고 경고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사람은 약속에 불성실하지만 하나님은 1,000년이 흐르고 2,000년이 지나도 당신이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칼처럼 지키십니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하나,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이 세상과 역사에 대한 최후 심판뿐입니다. 부디 세상과 짝하지 마시고 에녹처럼 주님과 오래오래 동행하십시오. 당장은 올 연말까지라도 잘난 체하며 혼자 가거나 세상과 동행하지 마시고, 오직 주님과 함께 가십시오. 그리고 최후 심판과 상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며 주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삶과 또 마지막 천국행이 위대한 믿음의 선진인 에녹처럼 아름답고 복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