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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비스가산 꼭대기에 서서
설교본문 신 34:1-7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1-09-05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10905a.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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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오늘이 벌써 9월 첫 주일이자 비대면 가정예배 8주차입니다.

부디 저희에게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과 인내심을 주사 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잘 견디고 이겨 흔들림이 없게 해주시고, 오늘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옵소서.


환자들을 찾아 가사 안수해주시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정예배 조차 드리지 못하는 성도들을 기억하사 위로하시며 믿음을 더 해 주시옵소서.


또한 거리두기 조치로 생업에 큰 타격을 입은 가정들, 직장을 잃거나 사업에 치명적인 손상을 당한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사 용기를 주시고 재기하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사회가 하나 되어 반드시 이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시고, 이를 더욱 발전하고 도약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가정예배를 통해 모두가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기도하는 것들을 응답받게 하시고, 예배에 임한 가족 모두 성령의 깊은 위로와 격려를 체험하게 해주시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주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늘 하늘의 아름다운 축복을 허락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10905m

신 34:1-7

비스가산 꼭대기에 서서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교회가 상을 당할 때 부르는 가장 고전적이고 대표적인 찬송은 606장입니다. 불과 며칠 후면 아직 살아 있는 우리도 요단강을 건너가 먼저 가나안, 천국을 간 고인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위로와 소망의 찬송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전통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천국으로, 가안에 가기 위해 반드시 건어야 하는 요단강을 죽음에 비유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모세는 요단강을 건넜습니까? 아니면 못 건넜습니까? 못 건넜습니다. 그러면 요단강을 못 건너고 요단강 이편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죽었으니까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얘깁니까 못 들어갔다는 얘깁니까? 못 들어갔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이것이 말이 됩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모세로 말하면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 지난 40년간 광야를 유랑하며 천신만고 끝에 이 가나안 문턱까지 이끌어온 사람 아닙니까? 60만 이상 2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광야에서 죽는다 해도 최후의 한 사람 모세만큼은 끝까지 살아남아 가장 확실하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야 옳고, 그래야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가나안 문턱인 요단강까지 와서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은 다 들어가도 너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세상에 이 무슨 날벼락이고 청천벽력입니까?


신명기 3장 25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너는 안 된다. 너는 요단을 못 건넌다고 하시는데도, 모세가 자꾸만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을 보게 하옵소서 하며 계속 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만하라고 하십니다. 그만해도 족하니 다시는 내게 이 일로 조르지 말라고 하시면서, 3장 27절에 가서는 다시 한 번 너는 절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고 마지막 쐬기까지 박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 하나님이 끝내 모세에게는 가나안 입국 비자를 허락하시지 않았습니까? 


민수기 20장 2절 이하에 나오는 므리바 사건 때문입니다. 므리바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헤매다 가데스 라는 곳에 겨우 진을 쳤는데, 물이 없습니다. 목은 타 죽겠는데 아무리 찾아도 샘이 없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폭동을 일으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 이 광야에서 목말라 죽게 하느냐 하면서 심지어 모세를 치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몸을 벌벌 떨고 있는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백성들을 다 한 자리에 모으고, 너는 지팡이를 들고 그들 앞에 서서 이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분부하신대로 백성들을 다 모은 다음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분을 폭발합니다. 이 패역한 무리들아, 그래 내가 너희를 위해 이 반석에서 물을 내주마 하면서 들고 있던 자신의 지팡이로 두 차례나 거푸 반석을 후려쳤습니다. 그랬더니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와 백성들과 짐승들이 다 해갈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 그 일로 천추의 한이 될 엄중한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는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고 도리어 내 영광을 욕되게 했으므로 너는 결코 이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분명 반석을 향해 명하여 생수를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불같은 혈기를 참지 못해 백성을 욕하며 지팡이로 두 차례나 반석을 후려침으로써 생수는 터지게 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는 안 된다. 너는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고 선고하신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그 정도의 잘못으로 가나안 입국을 막으실 수 있습니까? 


어쨌든 모세는 그 일로 요단을 건너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죽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모세가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저 멀리 요단강 건너에 펼쳐진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쓸쓸히 죽어갑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때 아직 멀쩡한 모세를 죽이신 겁니다. 본문 7절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백성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모세는 아직도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을 만큼 정정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백성들이 다 요단강 앞에 대기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아깝지만 모세로 하여금 서둘러 죽음을 맞게 하십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모세의 시체마저도 하나님이 어디다 치우셨다는 겁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 “오늘까지도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더라” 신약 유다서에도 모세의 시체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에 미가엘 천사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미가엘에게 시켜서 아예 그의 시신을 어디 깊이 감추신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시체를 떠메고 가나안에 들어가 그것을 또 우상처럼 섬길까봐 사전에 하나님이 아예 막으신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가혹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 애굽에서 나올 때 챙겨온 백골 한 구가 있지요? 누구의 것입니까? 요셉입니다. 노예로 팔려갔다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던 요셉이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훗날 너희가 애굽에서 나갈 때 꼭 내 백골을 챙겨가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묻어다오. 그래서 그들이 그것을 잊지 않았다가 출애굽할 때 요셉의 백골을 가지고 나온 겁니다. 이미 수백 년 전에 죽은 요셉은 그렇게 백골로나마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모세는 하나님이 그 시신마저도 가나안 반입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백성들이 알면 혹 다음에라도 가나안으로 이장할까봐 아예 완벽하게 감추신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또 하나 여러분께 여쭙니다. 여러분, 가나안이 천국을 상징한다면, 가나안에 못 들어간 모세는 과연 천국을 갔을까요 못 갔을까요? 너무 심합니까? 아니, 요단강이 천국의 관문이고, 가나안이 곧 천국을 의미한다면, 모세는 요단강도 못 건너고 비스가산 꼭대기에 서서 멀리 가나안만 바라보다가 죽었고, 심지어는 죽어서도 그 시체조차 가나안 반입이 허용되지 않았으니까 완벽하게 천국을 못 갔다고 봐야 옳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렇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세는 정말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것처럼 천국에도 못 갔을까요? 그러면 그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천국 못 갔으니 지옥에 있을까요? 연옥에 있을까요? 아닙니다. 비록 요단강은 건너지 못했지만, 비록 가나안에는 못 들어갔지만 천국은 갔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다 나오는 주님의 변화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 소집하신 변화산 포럼에 누가 참석했지요? 구약을 대표하는 두 인물,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그 산상 워크숍에 스태프로 참여했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당시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해같이 빛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황홀해서 저희가 여기에 주님과 모세,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여러분, 당시 주님의 그 변화산 회동은 환상이 아니라 리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에 있던 모세가 그렇게 해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산에 나타났을까요? 주님이 소집하신 당시 변화산 포럼이야말로 비록 모세가 가나안은 못 들어갔지만, 천국은 갔다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요 물증입니다. 아니,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모세가 아무리 백성들 앞에서 혈기를 부리며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지팡이로 반석을 후려쳤기로, 그것 때문에 정말 하나님이 모세를 천국도 못 가게 하시고, 주었던 구원도 회수하신 것이라면, 과연 우리 가운데 천국 갈 사람,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10절 이하를 보면, “모세 이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그는 여호와를 대면하였던 자요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모든 이적과 기사와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였던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위대했던 하나님의 종이 혈기 한 번 부렸다고 천국에 못 들어가게 하셨다구요?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세는 비록 천국의 상징인 가나안에는 못 들어갔지만, 실제 천국에는 들어가고도 남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주님의 콜을 받고 엘리야와 함께 변화산 회동에 나타났던 겁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실제 천국에는 들어가게 하시면서도 굳이 모세로 하여금 가나안에는 못 들어가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표면적으로는 므리바 사건 때문인데, 사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하고 그 사건을 빙자해서 끝까지 모세의 가나안 입성을 막으신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답이 무엇입니까? 


천하없어도 율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천국 못 간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모세의 최후를 통해 우리에게 꼭 전달하고 싶었던 진정한 메시지는 오직 하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화신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우리는 모세가 기록했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라고 해서 모세5경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토라, 율법서라고 합니다. 따라서 율법이 모세고, 모세가 곧 율법입니다. 바로 그 이유, 그 사연 때문에 실은 하나님이 끝가지 모세에게 가나안 입국 비자를 내주지 않으시고, 그의 시체마저도 가나안 반입을 허락하지 않으셨던 겁니다. 율법으로는 절대 천국을 못 들어간다는 겁니다. 율법으로는 천국은커녕 시체 반입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 복음적 메시지 그 값진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달하시기 위해 율법의 상징이자 화신이었던 인간 모세를 그토록 가혹하게 희생시킨 겁니다. 여러분, 천국의 관문인 요단은 오직 믿음으로만 건널 수 있는 강이고, 천국을 뜻하는 가나안은 오직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세계입니다. 


율법으로는 거기에 못 들어간다는 얘기는 윤리나 도덕이나 철학이나 행위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율법 종교입니다. 다 도덕과 윤리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율법주의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이 세상 그 어떤 종교로도 천국은 갈 수 없다는 얘기고, 율법 그 자체였던 모세조차도 가나안에 못 들어갔다는 사실은 윤리와 도덕의 화신인 부처님도 공자님도 믿음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세의 최후를 통해 오고 오는 세대에 바로 그 사실, 그 진리를 분명히 계시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처음에 제가 후렴을 소개한 찬송가 606장 1절입니다.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믿음만 가지고 가겠네. 믿는 자 위하여 있을 곳 우리 주 예비해두셨네. 부디 믿음으로 사시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 며칠 후 며칠 후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셔서 모세도 만나시고, 부모형제도 만나시고, 친구도 다시 만나서 주님을 모시고 영원히 아름답게 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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