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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부활의 보증
설교본문 눅 24:1-1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1-04-04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10404m.mp3

20210404m

눅 24:1-12

부활의 보증


(눅 24:1-12, 개정)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부활절을 맞으신 여러분의 가정 위에 주님의 부활의 새 생명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주님이 부활하신 때는 안식 후 첫날 새벽입니다. 안식 후 첫날이면 일요일입니다. 주님이 안식 후 첫날, 바로 오늘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일요일이 더 이상 일요일이 아니라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라고 하여 주님의 날, 주일입니다. 유대교나 안식교,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라는 간판을 건 곳에서는 여전히 안식일을 성일로 지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관련한 성일입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이레 날에 쉬셨기에 그날을 기념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무엇입니까? 주일은 창조가 아니라 주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신 구원과 관련한 성일입니다. 주님이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창조와 관련된 토요일이 아니라 주일을 성일로 지킵니다. 구약 시대 때는 창조와 관련된 안식일을 성일로 지켰으나,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기점으로 하는 복음의 시대에는 주일을 거룩한 날로 지키는 게 옳다는 겁니다. 이미 사도시대 때부터 기독교의 성일은 안식일에서 주일로 이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안식일을 고집하는 시대착오적이고 복음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율법적이고 비복음적입니다. 율법시대가 아닌 복음의 시대,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이 아닌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십계명에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왜 주일을 지키는 게 옳은지를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지 며칠 만에 일어난 사건입니까? 성 금요일 오후 3시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도신경의 원본인 포르마 레쳅타가 고백하듯이 그리고 베드로전서 3장 17절 이하에서 보듯이 주님의 영혼은 그 사흘 동안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우리 대신 지옥에 내려가 지옥의 형벌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의문이 생깁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죗값을 지불하기 위해 우리 대신 지옥을 가신 것이라면 주님은 왜 영원히 지옥살이를 하지 않고 사흘 동안만 거기에 계셨느냐는 겁니다. 본문 7절도 보면, 제삼일에 부활하셨다고 하는데,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특혜를 받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특혜란 없습니다. 그러면 왜 굳이 사흘일까요? 이틀이나 나흘은 안 됩니까?


이틀은 부족하고 나흘은 불필요합니다. 주님은 사흘간의 지옥살이만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지불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였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영원히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에 비해 우리의 몸값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닙니다. 주님은 단 사흘만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을 갚고도 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입니다. 하나님께 주님이란 존재는 이 세상, 이 우주, 전 인류의 생명을 다 준다 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주님은 그만큼 값진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피는 보혈입니다. 괜히 사흘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흘간의 지옥행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비록 그 사흘간이지만 주님은 지옥행이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그토록 고뇌하며 쓴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피땀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사흘간의 지옥 체험이지만 지옥은 그토록 끔찍한 곳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법을 보면,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양이나 염소 등 제물을 잡아서 피를 바치며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또 죄를 지으면 또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양의 피는 짐승의 피일뿐이지 보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딱 한 번의 죄만 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때는 죄를 지을 때마다 매번 희생양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피는 일회용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 이하입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10장 10절 이하도 보십시오.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사흘간의 지옥행을 통해 우리 죄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셨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바로 이 사실에 대한 영원한 보증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유사 이래 부활의 첫 열매십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 주님 이전에도 있습니다. 어째서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일까요?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사건이 아닙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무려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경우도 부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소생이라고 합니다. 


부활체는 영원히 삽니다. 소생했다가 죽은 경우를 두고 부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모품에 불과한 본래의 육신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체로 변화되어 되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경우만 부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주님의 영혼만 천국에 가시지 않고, 주님은 40일간 부활체로 이 땅에 계시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부활체는 시공간을 넘나듭니다. 부활의 핵심은 죽었다가 산다는 게 아니라 신령한 몸, 곧 부활체로 변화된다는 데 있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 주님의 재림 때 이 세상 종말을 알리면 천사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죽은 자는 부활체의 몸으로 살아나고, 살아 있는 자는 산 채로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따라서 부활은 죽은 자들만이 아니라 산 자들에게도 해당하는 사건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2절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주님이 바로 그런 부활체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유사 이래 첫 케이스를 기록하셨기에 부활의 진정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주님이 우리 앞에 부활의 길을 활짝 터주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시대를 개막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의 뒤를 이어 부활의 다음 열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과수원 농부가 첫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그 열매가 맺히면 매년 열매를 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그것이 우리 부활의 영원한 보증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면 우리도 줄줄이 부활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소중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가슴에 부활의 산 소망을 가득히 담아 살아갑시다. 우리는 부활의 산 소망을 담고 살기에 우리에게는 영원한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죄를 완벽히 대속하셨다는 확실한 물증일 뿐만 아니라 주님처럼 우리도 장차 반드시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의 보증입니다. 이 사실에 늘 감사하며 부활신앙으로 승리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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