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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구레네 사람 시몬
설교본문 막 15:16-2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1-03-14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10314.mp3

20210314m

막 15:16-23

구레네 사람 시몬


(막 15:16-23, 개정)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본문 16절 이하입니다.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주님이 빌라도에게 사형선고인 십자가형을 받은 직후의 장면입니다. 주님은 고난주간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곧장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기도하시다가 체포됩니다. 밤새도록 주님은 대제사장, 헤롯왕, 빌라도에게 끌려다니며 조롱과 모욕, 고문을 당하시다 금요일 새벽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을 때 주님의 심신은 이미 초죽음 상태였습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사형수는 자기의 형틀을 형장까지 직접 지고 가야했습니다. 


우리는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약 1.5km 거리를 비아 돌로로사라고 부릅니다. 주님은 35kg이 넘는 십자가를 지시고 비아 돌로로사를 가다가 여러 번 쓰러집니다. 전체 14구간 중 5번째 구간에서 쓰러지셨을 때 주님이 더는 못 일어나셨습니다. 그래서 형집행관 백부장이 사태를 파악하고 주변에서 건장한 흑인 한 사람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21절입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의 지금의 리비아입니다. 리비아라고 하면 우리는 40년간 통치했던 독재자 가다피가 생각납니다. 한때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거기에 가서 토목공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 북아프리카 사람이 당시에 왜 예루살렘에 있었을까요? 


그의 이름은 전형적인 유대식 이름의 시몬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일찍부터 아프리카쪽에 나가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이방인 유대교 신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당시에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성지순례하러 온 겁니다. 때마침 주님의 십자가 행렬을 구경하다가 졸지에 강제로 십자가를 지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그도 황당하고 기분도 고약했을 겁니다. 졸지에 사형수의 형틀을 지게 됐으니 얼마나 기분이 상했겠습니까. 당시 그가 진 십자가는 21절의 표현대로 억지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십자가는 누구나 그렇게 억지로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즐거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콧노래 부르며 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십자가이기에 누구에게나 가혹하고 수치스럽습니다. 주님도 십자가를 기꺼이 지시지 않았습니다. 주님도 어떻게든 그것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본문 앞인 14장 33절 이하입니다.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주님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36절도 보십시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주님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억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렇게 억지로라도 지면 반드시 은혜롭습니다. 


조선 왕조 17대 왕 효종의 이야기입니다. 한 번은 그가 궐 밖 민정시찰을 나섰습니다. 어떤 사람이 팔순 노모를 업고 길가에 서 있었습니다. 왕이 그 사람에게 묻습니다. 어디를 가는 중이냐? 어디를 가는 길이 아니라 모친의 평생 소원이 임금님의 용안을 뵙는 것인데, 오늘 30리 길을 걸어 어머님께 임금님의 용안을 뵙게 하니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임금이 그에게 큰 상을 내립니다. 어떤 사람이 그 소문을 듣고 똑같이 따라 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이 다들 그 아들을 비난하며 천하의 불효자가 상을 받으려고 저런다며 오히려 큰 벌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효종이 당장 곤장을 치라거나 하옥하라고 하지 않고 뜻밖에도 효란 남의 흉내를 내는 것조차 아름다우니 똑같은 상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효종실록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여러분, 효뿐만 아니라 십자가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흉내만 내어도 억지로 지는 것도 값집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최대 위기는 누구나 십자가를 보면 달아나기 바쁘지 억지로라도 지겠다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없다는 겁니다. 주님은 인자가 올 때 믿는 사람을 보겠느냐,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성도를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언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교회 선택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십자가 없는 교회입니다. 아무 부담이나 희생도 없이 편하고 우아하게 예수 믿을 교회를 찾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주님 가신 길, 고난의 길, 골고다의 좁은 길 비아 돌로로사를 걷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하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걸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져야 하고, 사서라도 좁은 비아 돌로로사를 통해 골고다까지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은혜를 입습니다. 오늘은 남선교회 주일입니다. 남선교회 회원들이 구레네 시몬의 억지 십자가를 배우길 바랍니다. 구레네 시몬의 사건을 오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21절을 다시 보시면, 구레네 시몬을 소개하며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그를 지칭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 누구의 아들 누구라고 합니다.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 식입니다. 그런데 구레네 시몬은 두 아들의 이름을 대며 그들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이것은 류현진 선수의 아버지 류재천 씨,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씨라는 뜻입니다. 아들이 유명하니까 그 이름을 대는 겁니다. 


본문도 마찬가집니다. 구레네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건 이후 30년이 지나 주후 65년경에 마가복음이 기록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구레네 시몬의 두 아들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시몬의 아들들이 당시 사회의 스타급 인물이 되었다는 겁니다. 로마서 16장 13절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하며 특별히 당부하는 대목인데,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바울이 내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사도행전에 안디옥 교회 제직명단이 나옵니다. 니게르 시므온은 니게르는 흑인, 시므온은 시몬의 헬라식 이름으로서 구레네 시몬을 가리킵니다. 


한 이방인 신자가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지키러 왔다가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이후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후 그는 로마 교회와 안디옥 교회에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었고, 심지어 그의 아내까지도 신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되어 마가복음 저자가 이 복음서를 쓰면서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고 소개합니다. 이것은 그가 억지로나마 잠시 비아 돌로로사를 주님과 함께 갔을 때 그에게 베푸신 주님의 보상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십자가를 한 귀퉁이라도 잡고 주님과 함께 묵묵히 조금이라도 걸으면 반드시 주님의 보상을 받습니다. 그것이 비록 억지라고 해도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조금이라도 채우면 주님이 절대 나몰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향해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니 나는 주님의 영광만 누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십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십자가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모 권사가, 모 집사가, 놀랍게도 목사가 십자가일 수 있고, 교회 자체가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회피하지 마시고 꼭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십시다.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혈혈단신으로 주님을 따르는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간수합시다. 우리가 다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를 흉내 내는 것입니다. 절대 내 몫의 십자가를 대신 져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평생 억지로라도 내가 지고 가야 할 몫의 십자가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운명입니다. 일찍이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골고다를 오른 구레네 시몬처럼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며, 특히 자녀들이 아비보다 더 큰 복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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