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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용모가 변화되시다
설교본문 눅 9:28-3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1-02-14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10214m.mp3



20210214m

눅 9:28-36

용모가 변화되시다

 

(눅 9:28-36, 개정)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은 산상변모주일입니다. 주님이 산상에서 용모가 변화된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요즘은 교회들이 이 주일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큰 의미를 못 느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실 산상변모주일은 초기 기독교 시절부터 지켜온 오랜 기념일입니다. 이미 4세기부터 사도들의 제자인 교부들이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산상변모주일 예배에 관한 자료들도 많이 전해집니다. 보통 이 날은 교회당 전체를 흰 천이나 흰 꽃으로 장식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산상에서 광채를 발하신 사건을 흰 천이나 꽃으로 연출한 것입니다. 

 

28절 상반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용모가 변화된 사건이 어떤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발생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당연히 27절 말씀에 나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26절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구절도 같은 주제입니다. 주님의 재림입니다. 

 

27절 말씀은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오해도 많이 일으킨 말씀입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은 제자를 가리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이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답해서 칭찬을 듣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이 너희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제자들은 자기들이 살아 있을 때 주님의 재림을 살아서 볼 자들도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초대 교회는 곧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하며 종말론적으로 신앙했습니다. 그들은 전 재산을 팔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그걸 다 관리 못하니까 집사가 등장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가난한 자, 약자, 고아, 과부들을 돌보게 했습니다. 이것이 집사의 사명이었습니다. 또한 사도들은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주님이 선포하셨던 복음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가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 5-60년 지나서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서신이 더 빠르게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곧 오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주님의 말씀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필요를 못 느껴서 그랬던 겁니다. 이 모든 것이 27절 말씀 때문에 발생한 혼란이요 착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하는데, 주님이 다시 오실 낌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27절 말씀이 임박한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었는가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28절 상반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그러니까 성경이 27절 말씀과 28절 이하의 변화산 사건을 서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본문에 소개되는 변화산 사건이 27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 체험이고, 훗날 주님의 재림 사건의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27절 말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즉 27절 말씀은 변화산 체험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당시 주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옷에서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영광이나 구름이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이것이 다 주님의 재림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입니다. 변화산에서 주님이 바로 그런 모습으로 변모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까?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구약을 대표하는 두 인물이 주님과 만나 산상회담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죽은 자는 신비한 부활체로 주님 앞에 섭니다. 또 살아 있던 사람들은 산 채로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주님 재림 시 다시 살아나 주님을 영접할 모든 사람을 대표합니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불수레를 타고 천국으로 갔기에 주님이 오실 때 산 채로 변화할 사람을 대표합니다. 이 두 사람은 주님 재림 때 부활할 사람들의 양측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살아 있을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순간을 볼 자들도 있다는 27절 말씀이 변화산에서 주님이 변모하신 말씀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 때문입니다. 당시 변화산 체험이야말로 장차 있을 주님의 재림 사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제자들 앞에서 미리 연출해보이신 종말론적 계시사건이었습니다. 훗날 주님이 재림하실 때도 광채 나는 용모로 영광중에 오신다고 했는데 주님이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앞당겨 보여주신 것입니다. 

 

당시 그 모습과 광경이 얼마나 황홀했으면 베드로가 초막을 짓고 여기 삽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이런 이해를 전제로 본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주님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편애하신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믿음이 상대적으로 좋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신뢰하시며 가까이에 두고 교육하고 훈련시키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바로 이 세 명의 제자들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그 셋 만을 따로 데리고 기도하셨습니다. 본문도 마찬가집니다. 이 셋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주님은 이 트리오에게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계시하시며 몇 가지 중요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우선 기도입니다. 28절 이하를 다시 보십시오.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기도하면 용모도 변화되고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그 사람의 인생도 신비하게 변화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 주님은 그 셋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사실 산 아래서, 즉 분주한 일상 속에서만 살다보면 기도하기 쉽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집중할 수 없습니다. 환경 때문입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문화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도 이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신 것은 그들에게 기도를 교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기도는 때로 일상에서 벗어나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고, 골방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제자들로 하여금 체험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는 일상에서 비켜나 주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용모에서 빛이 나고 삶이 변화됩니다. 소진된 우리 영성이 회복됩니다. 그만큼 우리가 용감하고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는 축복을 받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기를 받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분주하게 살다보면 우리의 기가 바닥납니다. 그러므로 일상을 벗어나서 집중적으로 주님과 교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주 수요일이 벌써 부활절 전 40일간의 고난기간이 시작되는 사순절 첫날이자,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 위에 앉아 검불을 쓰고 베옷을 입고 회개하는 날입니다. 바야흐로 기도의 계절이 온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그야말로 변화산에 오르는 심정으로, 그런 기대와 마음가짐으로 깊이 기도합시다. 그래서 본문의 제자들처럼 놀라운 변화의 체험을 합시다. 

 

다음은 신비체험을 위해서 주님이 그들을 산상으로 부르셨습니다. 30절 이하입니다.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제자들은 산상에서 주님의 변화되신 용모와 광채뿐만 아니라 모세가 엘리야가 나타나 주님과 대화하고 회담하는 광경도 목격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실로 놀라운 영적 체험이자 일생일대의 신비체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설 같은 모세와 엘리야가 눈앞에 나타나 주님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세계는 분명 이런 초자연적 신비가 존재합니다. 우리에게도 가끔은 그런 신비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이 더 깊어지고 덜 흔들리게 됩니다. 신비체험은 우리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도 바로 그 점을 인정하셨기에 제자들을 변화산상으로 인도하여 영적 신비를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이 제자들로 하여금 그런 신비체험을 하게 했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그 신비체험 속에 머물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초막 셋을 지어 거기에서 살자는 베드로의 제안을 거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이끌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의 행동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산상에서 살려고 하지 일상으로 복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요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7장 9절에서 이 장면을 보면 주님이 이런 당부도 하십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영적이고 신앙적인 신비체험은 하되 그것을 발설하거나 자랑하거나 점쟁이 노릇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신비체험했다 싶으면 바로 장사로 들어갑니다. 여러분, 올해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산 체험을 하십시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 차원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산상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 훈련입니다. 35절입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하나님이 구름 속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는 겁니다. 마태복음 17장 5절입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은 산 아래 복잡한 일상에서는 잘 들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육성을 그 산상에서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제자들에게는 변화산이 평소에는 들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자리였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소란하고 시끄럽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 한복판에 살 때도 하나님은 계속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하기에 시끄러우면 듣지 못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끊임없이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산 위에 올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높은 산이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급해 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사야 55장 3절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우리도 제자들처럼 뜨거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우리의 믿음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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