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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나는 기적을 믿습니다
설교본문 행 12:1-1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1-01-31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10131m.mp3

20210131m

행 12:1-12

나는 기적을 믿습니다!

 

(행 12:1-12, 개정)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기독교 신앙에는 기적이 있습니다. 기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고, 일상적이지 않고 비상하고, 자연의 법칙을 뛰어넘는 초월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요술이나 마술은 기적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물론 귀신도 마귀도 나름 초자연적 일들을 연출합니다. 작두도 타고, 죽은 사람의 혼도 불러내고, 때로는 병자들을 낫게도 합니다. 하지만 귀신의 그런 재주는 기만이요 거짓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해치기 위해 초자연적인 쇼를 벌이는 겁니다. 마귀도 영적 존재이기에 우리가 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을 행할 수 있고, 우리는 알거나 보지 못하지만 마귀는 미리 알고 미리 내다볼 수도 있기에 예언도 하고 점도 칩니다. 그것이 적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을 패망에 이르게 하고, 자기 수하에 묶어두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목적이 정당하면 과정이나 수단이 다소 적법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목적이 선하면 수단과 과정도 정당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촛불을 훔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목적과 수단이 은혜로워야 그것이 기적입니다. 시편 40편 5절은 하나님께는 기적도 많고, 우리를 향하신 생각도 많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이 궁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많으시기에 깊이 숙고하신 후에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될 때만 기적을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기적을 남발하시지 않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생각이 깊으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이미 초월적이고 초자연적 기적이기에, 그분의 역사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오래 생각하신 후에 신중하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기적이라고 다 우리에게 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이 많으시지만 그 기적을 절대 함부로 행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베푸신 초자연적 사건이 참된 기적입니다.

 

본문의 기적 사건을 보겠습니다. 헤롯 왕이 유대인들의 지지와 환심을 사기 위해 당시 유대교가 박해하던 기독교 지도자 중에서 야고보 사도를 전격 체포하여 처형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도 요한의 형제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가까이 두신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가운데 한 명입니다. 주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던 사도였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와 함께 초대 교회를 이끌었던 권위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그를 체포해 칼로 죽였습니다. 참수했다는 겁니다. 야고보가 12사도 가운데 가장 먼저 첫 순교자가 됩니다. 초대 교회의 1호 순교자는 스데반 집사였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 중에 야고보가 제일 먼저 순교했다는 겁니다.

 

헤롯이 야고보 사도를 참수하자 유대인들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베드로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베드로를 구해내십니다. 7절입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이 얼마나 신비한 사건입니까. 이것은 환상이나 꿈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적이 언제 발생했습니까? 6절 상반절입니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처형 전날 밤입니다. 날이 새면 야고보 사도처럼 목 베임을 당할 차례인데, 그 마지막 밤에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언제나 마지막 날 밤에 일어납니다. 기억하십시오. 죽느냐 사느냐는 절박한 최후 순간에 일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야 기적의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기적으로 말미암은 반전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다가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비상 개입을 하십니다. 홍해의 기적도 보십시오. 그런 위기가 없었습니다. 뒤에서는 성난 바로의 전차군단이 맹렬히 추격해 오며 간격을 좁힙니다. 좌우 양쪽에는 온통 가파른 바위산입니다. 앞에는 검푸른 홍해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얼마나 완벽합니까? 완전히 독 안에 든 쥐고,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그 벼랑끝과 같은 최후 순간에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여리고 성의 함락도 보십시오. 그 성은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였습니다. 철옹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서는 그 성을 반드시 함락해야 가나안 정복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군대도 변변치 않은 오합지졸이었는데, 어떻게 여리고 성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명에 따라 매일 한 바퀴씩 성을 돌고, 마지막 날에는 여섯 바퀴를 돌았는데도 성은 멀쩡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바퀴를 돌자 순식간에 그 성이 무너졌습니다. 기적은 언제나 최후 순간에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도 보십시오. 아비가 아들의 목을 따려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제지하십니다. 아직 시간적 여유나 선택이 남아 있을 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최후 순간에 기적은 극적으로 일어납니다. 다른 대안이 없을 때 일어납니다.

 

우리는 왜 기적을 체험하지 못할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성경에 그토록 많이 나오는 기적이 왜 우리에게는 없을까요? 우리가 언제나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끝까지 가지 못하고 우리는 너무 쉽게 현실에 항복합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억합시다. 기적은 최후 순간에 발생합니다.

 

기적은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베드로가 갇힌 감옥의 경비상황을 보십시오. 4절입니다.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베드로를 가두고 4인 1조로 해서 4개조를 동원해 그를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16명이 감옥 밖에서 지켰다는 겁니다. 6절 하반절도 보십시오.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베드로가 혼자 감방 안에 갇혔던 게 아니라 군인 두 사람이 베드로와 사슬을 묶어서 같이 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전체 18명이 당시 베드로를 밀착 감시했습니다. 베드로의 탈출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베드로는 꼼짝없이 끌려 나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서는 완벽한 상황이 마련된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남아 있는 곳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절대 희망을 접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적은 우리의 최악의 환경,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보십시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꼼짝도 할 수 없는 베드로에게 졸지에 천사가 나타나자 지키던 군사, 결박 등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습니다. 굳게 잠겼던 옥문이 저절로 열리고, 군사들은 잠들어 있고, 육중한 쇠문도 열리며 일사천리로 아무 장애 없이 순식간에 바깥 큰 길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불가항력적이었는데 천사가 나타나는 기적이 발생하자 쇠사슬도 쇠창살도 감시하던 군인들도 이 세상에 없다는 듯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던 때도 마찬가집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부패가 냄새가 날 정도로 상당히 진행되었습니다. 나사로가 환생할 가능성은 제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거기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주님의 기적은 바로 그런 상황, 그런 장소에서 발생합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어서 사체가 썩어가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 걸어 나왔습니다. 그 나사로는 유령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이 안 됩니다. 죽으면 그걸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우리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사람이 다시 무덤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고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적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에 대한 기대도 없지만, 믿음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체념과 절망뿐입니다. 그래서 기적이 없습니다. 부디 주님은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일지라도 모든 것이 가능한 상황이 되는 기적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죽었을 뿐만 아니라 썩어가던 시체도 주님이 부르시면 걸어 나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알량한 이성을 앞세워 그것을 못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기적이 많이 등장하지만 우리 삶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기적은 갑자기 일어납니다. 7절 상반절입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홀연히라는 말은 예고 없이 사전 통보 없이 조짐도 없이 갑자기 발생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특징은 홀연히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자연 현상은 전조가 있습니다. 징후나 조짐이 있습니다. 태풍, 지진, 화산폭발도 다 전조현상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폼페이도 보십시오. 거기는 주후 79년에 화산폭발로 도시 전체가 묻혔습니다. 하지만 주후 63년부터 대규모 화산폭발의 징후가 보였습니다. 10년 동안 계속해서 위험을 경고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피하지 않고 있다가 한 자리에서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그런 예고나 조짐이 없습니다. 사전에 그럴 듯한 징후나 조짐이 보이면 기대를 갖고 힘을 내고 참고 견딜 텐데 하나님의 기적은 그런 게 없고 갑자기 발생합니다. 그래서 더 경이롭고 신비합니다. 캄캄한 한밤중 깊은 감옥 철장 안에서 홀연히 일어난 사건, 이것이 바로 본문이 전하는 기적입니다. 전조나 예고가 없었기에 베드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홀연히 일어나 한순간에 극단적으로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여리고 성 함락 때도 보십시오. 마지막 날 여섯 바퀴를 돌 때까지도 성은 멀쩡했습니다. 여섯 바퀴를 돌고 10미터만 더 가면 일곱 바퀴를 다 도는데도 낌새는 없었습니다. 일곱 바퀴를 다 돌자 비로소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짐이 없다고 포기하지 맙시다. 마지막 일곱 바퀴까지 다 돌아야 합니다. 낌새가 안 보인다고 포기하면 기적을 못 만납니다. 홀연히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의 특징입니다. 어떤 조짐이나 사전 징후가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기적의 특징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기적은 끝까지 지켜보다가 갑자기 반전을 일으키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극대화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그분의 기적은 철저하게 기도의 응답입니다.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5절 마지막을 보십시오.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12절도 보십시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걱정하고 있더라, 자고 있더라가 아닙니다. 기도하고 있더라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언제나 성도들의 기도응답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그 사지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12절이 본문의 결론입니다. 성도들이 밤을 새며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도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불러내실 때도 무덤 앞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 주님은 울며 기도하셨습니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과 비를 내릴 때도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를 때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연이나 행운으로 기적을 만나는 게 아니라 언제나 기도가 기적을 부릅니다. 기도가 기적의 통로입니다. 기도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 없는 기적은 없습니다. 기도 없는 기적은 요술이나 마술입니다. 기도하면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홀연히 기적을 만납니다. 이것이 기적의 공식이고 기도의 정석이고, 기도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기도합시다. 기도해서 우리의 모든 절망과 고통, 최악의 어려움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다 해결되고 수습되는 놀라운 반전의 은총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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