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설교제목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설교본문 사 40:1-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1-01-24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10124m.mp3

20210124m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1-2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지금 이스라엘의 처지는 너무도 비참합니다. 최악입니다. 

만리타국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노예 살이를 한 지가 한 해 두 해, 10년 20년도 아니고 벌써 반 세기가 훌쩍 넘어 70년이 다돼 갑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오래지 않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겠지 하며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지쳐서 모든 희망을 접고, 그저 자조와 탄식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도 분단이 70년을 넘으면서 이산가족 1세대는 이제 거의 다 세상을 떠났잖아요? 당시 이스라엘도 바벨론 포로 1세대는 거의 다 죽고 그 포로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2, 3세대가 대를 이어 노예살이를 하며 절망 속에서 체념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40장 27절입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이것은 당시 그들이 <내 사정을 하나님이 어찌 알며, 내 억울함과 원통함을 하나님이 어떻게 해결해 주랴!>하는 탄식과 깊은 체념 속에서 살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 가장 낙담하고 절망합니까? <이제 하나님마저도 나를 버리셨구나, 포기하셨구나>하고 느낄 때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그때가 가장 심각한 순간이고, 가장 큰 위기인데, 이스라엘이 바로 지금 그런 최악의 절망과 회의에 빠져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희망의 메시지가 바로 오늘 이 이사야 40장 말씀입니다. <너는 가서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위로하라구요? 

2절 상반절을 보면 <마음에 가 닿도록!> 

그냥 형식적으로, 건성으로 하지 말고 정말 가슴에 닿도록 진정성 있게, 설득력 있게 위로하고 격려해서 그들로 하여금 용기를 갖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 그럼 어떤 말로, 어떤 메시지로 그들의 가슴에 가 닿을 수 있는 위로를 하라고 하셨는지 한 번 짚어 보겠습니다. 

 

I. 우선 <노역의 때, 복역의 때가 끝났다>고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2절 하반절입니다.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노역>이란 노예로서의 혹독한 강제노동, 부역을 뜻하는데 전에 개역성경에서는 이걸 <복역>이라고 했습니다. 

<복역의 때가 끝났다!> 그랬습니다. 포로살이, 노예살이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어떤 무기수가 특별사면으로 곧 석방될 거라는 통보를 받는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요? 아마 세상에서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을 겁니다. 지금 하나님이 <내 백성을 위로하라>며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도 바로 그런 겁니다. <네 포로로서의 노역이 끝났다, 노예로서의 오랜 복역이 이제 끝났다!>는 겁니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만신창이가 된 당시 이스라엘에게는 이 말씀보다 더 위로가 되고 더 큰 희망이 되는 메시지는 아마 다시 없었을 겁니다. 꼼짝없이 그 포로지에서, 그 유배지에서 죽을 줄 알았는데 이제 곧 그 모진 노역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여러분, 주님이 이 2021년 새해 벽두인 오늘, <내 백성을 위로하라>며 주신 말씀도 바로 이겁니다. 이제 <복역이 끝났다>는 겁니다. 고된 <노역이 끝나고, 부역이 끝났다!>는 겁니다. 

 

저는 이게 우선 <코로나19>로부터의 해방을 뜻하고, 또 코로나로 인해 불어닥친 경제 대환난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사면이라고 믿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그동안 얼마나 절망하시며 좌절하셨습니까?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내 사정만큼은 하나님께 숨겨졌고, 내 기도, 내 원통함만큼은 하나님이 안 들어주신다며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원망하며 좌절하셨습니까? 얼마나 자주 포기하고 체념하셨습니까? 

 

우리는 다 개인적으로도 그 뭔가에 꽁꽁 묶여 있어서 오랫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는 과제들이 있습니다. 건강 때문에 힘들어 하며 참 자유함을 못 누리시는 분들도 있잖습니까? 우리 교회의 숙원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늘 우리를 위로하사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 오랜 복역의 때, 이제 지칠 대로 지친 그 노역의 때가 끝나고, 지긋지긋한 포로생활이 다 끝나고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군인들은 제대 말년이 되면 하루하루가 초조하지요. 그러다가 특명이 내려오면 좋아 죽습니다. 이제 복무가, 복역이 다 끝났다는 공식선언이니까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이제 해방이고, 자유고,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잖습니까?

 

여러분, 오늘 이 말씀, 이 선언을 다 내게 주신 말씀으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와 희망선언으로 <아멘!> 하며 접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뭔가 꽁꽁 묶인 것을 풀어야 하고, 꽉 막힌 것을 툭 터야 하고, 지금 나를 옥죄고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 반드시 자유하고 해방해야 할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오늘 이 말씀을 다 내게 주신 말씀으로 확신하시며 기대를 가지시고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오늘 우리를 위로하신 대로, 오늘 주신 이 메시지대로 모든 노역과 복역이 끝나고, 자유와 해방과 회복과 치유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리라 믿습니다.  

 

II. 다음은 또 <내 백성을 어떻게 위로하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하고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40:6 이하입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것, 모든 육체는 다 풀입니다. 

절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영광, 영화라는 것도 실은 다 그 풀의 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마르고 시듭니다. 그 어떤 것도 결코 오래 가지 못하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돌아서면 다 마르고 시들고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마르지 않고, 시들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 게 딱 하나가 있다고 합니다. 영원한 게 딱 하나가 있다고 합니다. 그게 뭐라구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여러분, 누구도, 아무것도 믿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는 그게 아무리 아름답고, 그럴 듯해 보여도 순식간에 시들고 떨어지는 풀이고, 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만은 결코 시들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 영원한 진리요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기 때문에  시들지 않고, 생명이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풀과 같고 꽃과 같은 이 세상이나 육체가 아니라 영원히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의지해 살면 우리도 절대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다 풀이고 꽃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왜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고 영원할까요? 말씀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이나 육체들처럼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도 절대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살아 있는 겁니다. 

 

여러분, 신약 성경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구약 성경은 지금으로부터 3천 5백 년 전에 기록된 화석화된 고전이라고 치부하지 마십시오. 그건 큰 오산입니다.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그 무엇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하고 우리 안에 말씀이 풍성해야 우리의 생명이 고갈되지 않고, 우리의 삶이 보다 풍성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은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올해는 더욱 말씀을 붙잡고 사십시오. 다른 것 붙잡아 봐야, 다른 것 따라가 봐야 다 풀이고, 기껏 꽃입니다. 그러나 풀은 마르고 꽃은 곧 시듦니다. 꽃보다 말씀입니다.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말씀만이 우리를 늘 청정하게 하고, 형통하게 합니다. 말씀만이 살아 있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빈곤하면 우리 삶이 빈곤해지고, 말씀이 풍성하면 우리 삶이 풍성해집니다. 말씀이 곧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곧 우리 영의 참된 양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늘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말씀을 통해 큰 힘을 얻으시고, 말씀으로 힐링하시고, 말씀을 통해 삶의 진정한 활력을 제공받으시기 바랍니다. 

 

III. 이제 이사야를 통해 주신 마지막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게 뭐라구요? <새 힘을 주시겠다>입니다. 

 

28절 이하입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 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간 바벨론에서 복무하고 노역하느라  지치고 탈진하고 다 방전이 됐다 해도, 모든 기운을 다 소진했다 해도 이 세상을 땅 끝까지 다 창조하시고도 전혀 피곤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이 그 무한하신 에너지를 충전해 주시면 누구나 반드시 되살아나게 돼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엿새 동안 이 세상을 지으시고, 이레째는 쉬셨다고 했지요?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지키는 주일의 전신인 안식일의 기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이레째 쉬셨을까요?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느라 힘들고 피곤하셔서 쉬셨습니까? 아닙니다. 더 이상 창조하실 게 없으셔서 쉬신 겁니다. 엿새 동안 이 세상을 완전하게, 완벽하게 다 창조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창조하실 게 없어서 쉬신 거지 피곤하셔서 쉬신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피곤을 모르는 힘, 그 자체시고 무궁하고 영원한 힘의 원천이십니다. 지금도 이 우주는 살아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역사는 계속되고 있잖습니까? 하나님의 힘으로 계속 가동되고, 역동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이 우주를 운용하고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기를 받는데 다시 소생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야말로 달음질해도 피곤치 않고, 걸어가도 곤비치 않고, 어린 소년이 피곤해 하고, 젊은 장정이 지쳐 쓰러질지라도 하나님의 새 힘을 받은 자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힘의 원천이시고, 이 우주를 운행하시는 무한한 에너지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으면 누구나 다 새로워 집니다. 다윗은 늘 그렇게 고백하고 찬양했습니다. 시편 18편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십니다.> 

 

지금 우리는 다 너무 지쳐있습니다. 

다 기운이 너무 고갈됐습니다. 새해 첫 달인데도 지난 해 피곤이 그대로 이월돼 다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쓰러질 듯 위태위태합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주님이 오늘 <내가 새 힘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꼭 약속하신 하나님의 이 기운을 새롭게 충전하십시오. 

 

아무리 좋고 비싼 전기차라도 다 방전이 되면 더 이상 굴러가지 않습니다. 새 힘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충전해야 합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기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절대 쓰러지지 않고 독수리가 날개치며 하늘로 치솟듯이 그렇게 새롭게 도약하고 비상하며 새 출발할 수 있습니다. 

 

 어떤 능력 있는 사람이 내게 힘을 실어주거나 뒷배를 봐줘도 하루아침에 일어서고 출세도 하고 승승장구하잖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새 힘을 공급해주시는데 내가 비약하고 도약하지 못하겠습니까? 

 

사실 남자들에게는 다 힘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쌔기를 바라고, 또 아무리 걸어도, 아무리 뛰어도 피곤하거나 지칠 줄 모르는 그런 힘에 대한 욕구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왕년에 역기 한 번 만들어 본 사람도 없고, 아령 한 번 안 해본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다 작심삼일로 끝나지요. 

 

부디 오늘 우리를 위로하시며 힘의 충전을 약속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꼭 새 힘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새 기운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래서 2021년 이 새해에는 정말 걸어가셔도 피곤하지 않고, 달음박질해도 지치지 않고, 이 혼란한 코로나 정국을 오히려 역이용하여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비상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