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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그해 늦가을
설교본문 딤후 4:9-1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11-22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1122m.mp3

20201122m

딤후 4:9-16

그해 늦가을


(딤후 4:9-16, 개정)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디모데후서는 주후 67년 늦가을에 쓴 바울의 생애 마지막 편지입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그해 늦가을>입니다. 그해는 주후 67년을 가리키고, 늦가을은 요즘 이맘때를 가리킵니다. 바울이 어디서 이 편지를 썼습니까? 그는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썼습니다. 내용은 본문 9절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21절도 마찬가집니다.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이것이 본문의 주제입니다.


바울은 이미 자기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6절 이하를 보십시오. “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6절의 <전제>는 양의 피를 제단에 부어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결국 디모데를 만나지 못하고 네로 황제에 의해 참수를 당하고 맙니다. 그는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기에, 주후 67년 늦가을에 죽기 전에 디모데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겨울 전에 어서 오라며 마지막 편지를 쓴 그는 자신이 도리어 겨울 전에 세상을 뜨고 맙니다. 


여러분은 바울이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는 흔히 바울을 신앙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죄송하지만 당시 인간적 기준으로 보면, 그는 명백히 실패한 사람입니다. 주님도 그렇지만 바울도 참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그의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의 말년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동역자들이 다 그를 떠났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5절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아시아란 에게해 서남부입니다. 즉 지금의 터키 지방을 말합니다. 당시 소아시아에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많았습니다. 일곱 교회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고 그 수감 생활이 길어지자 결국 동역자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린 것입니다. 바울이 전도해서 세운 교회인데도, 바울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음에도 그 사람들이 다 바울을 떠났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다 나를 버렸다는 바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니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던 나이 많은 사도의 비애감과 쓸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지금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오라고 편지를 썼겠습니까? 


여러분, 바울이 왜 유명합니까? 그가 성공한 사람이어서라기보다는 많은 편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2/3가 다 바울의 편지입니다. 왜 바울이 그렇게 많은 편지를 썼을까요? 그가 쓴 편지들은 문학작품이나 신학논문이 아닙니다. 자기가 세운 교회에서 발생한 온갖 문제들을 수습하고 해결하기 위해 그때그때 썼던 절박한 목회서신입니다. 목회자는 한 사람인데 교회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고, 교회마다 문제가 터지니까 순발력 있게 현장으로 뛰어가기 어려우니까 그는 계속 편지를 썼습니다. 그가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편지를 썼지만, 교회들 가운데 제대로 된 교회가 어디 있었습니까? 나중에 그는 감옥에서 눈이 어두워 자필로 쓸 수 없어 구술해서 편지를 씁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인간적으로 보면 실패한 목회자가 분명합니다. 그가 생애 마지막에 쓴 유언과도 같은 디모데후서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얼마나 그의 처지가 딱한지 모릅니다. 


본문 10절 이하입니다.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모두가 그를 떠났습니다. 특히 데마는 어떤 사람입니까? 빌레몬서 24절을 보면, 바울의 인사말 가운데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골로새서 4장 14절에도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때까지만 해도 데마는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데마는 항상 누가와 나란히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데마는 바울의 최측근 사역자였다는 겁니다. 초대교회 어느 문서에는 바울의 오른 편에는 누가가, 왼편에는 데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실했던 동역자 데마가 어느 날 갑자기 바울을 떠난 겁니다. 이 얼마나 슬픈 얘깁니까. 그러니 바울에게 이 사건이 얼마나 아픈 일이었겠습니까? 데마는 바울이 가장 외롭고 힘들 때 떠났습니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데마가 바울을 등진 이유입니다. 세상을 사랑해서 데마가 떠났다고 합니다(10절).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주님을 등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등지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에 대한 애착 때문입니다. 롯의 아내를 보십시오. 천사가 뒤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음에도 구원의 성, 곧 소알을 향해 뛰다 말고 불타는 세상 나라 소돔에 대한 미련 때문에 뒤돌아봤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유황불을 뒤집어쓰고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오늘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회와 신앙을 등지고 세상을 택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해도 주님을 안타깝게 하고 슬프게 만들었을까요?


모두가 떠나고 바울 곁에 누가 남아 있습니까? 누가만 남아 있습니다. 누가는 12사도 가운데 하나도 아니고, 아주 이른 시기부터 바울과 동행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썼습니다. 그는 의사였습니다. 그러니까 누가는 당시 누구보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던 전문직 엘리트였습니다. 그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고급 헬라어로 써져 있습니다. 그만큼 그가 전문 지식인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동역자들이 하나둘 바울 곁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왼팔 노릇을 하던 데마마저도 바울을 버렸지만, 그는 끝까지 늙은 사도의 최후를 지켰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그를 사랑하는 의원 누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순교한 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기가 힘들고 여러모로 사정이 좋지 않아고, 세상이 우리를 미혹한다고 달아나지 맙시다. 그 모든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믿음의 길에는 언제나 데마의 길과 누가의 길, 주님을 사랑하는 길과 세상의 길,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옳은 길을 걷고 있는지 확인합시다. 혹 주님을 등지고 데살로니가로 가고 있는 분이 있다면, 지금 누가가 홀로 당하고 있는 저 바울의 곁으로, 주님 곁으로 돌아갑시다. 습기 찬 지하 감방에서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오라고 간곡히 호소하는 바울을 외면하지 맙시다. 이 늦가을에 우리 모두 고난의 자리, 누가의 자리, 주님의 곁으로 빨리 복귀합시다. 


그런데 본문 11절 이하를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마가를 데리고 오라는 것은 동역자를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가까웠던 이웃을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마가를 부른 것은 화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죽 종이에 쓴 것은 성경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이 가을에 주님 곁으로 복귀하려면 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이웃과의 화해, 성경을 새롭게 펼쳐 읽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바울의 간곡한 당부가 우리에게도 전달되어 우리 모두가 겨울 전에 주님을 찾고 주님 곁으로 돌아가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