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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위대한 찬양
설교본문 시 136:10-2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11-15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1115m.mp3

20201115m

시 136:10-26

위대한 찬양


(시 136:10-26, 개정)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6]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8]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9]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0]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1]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2]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을 히브리어로 <세페르 테힐림>이라고 합니다. 찬양들이란 뜻입니다. 시편 136편은 찬양 중에서도 특별한 찬양입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시편 136편을 그레이트 할렐이라고 불렀습니다. 위대한 찬양, 대찬양이란 뜻입니다. 왜 시편 136편이 대찬양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요 절기, 곧 3대 절기 때마다 온 백성이 함께 부른 감사의 합창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3대 절기인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때 그들은 항상 이 136편을 찬양했습니다. 맥추절은 보리수확을 감사하는 절기, 유월절은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을 감사하는 절기이고, 초막절은 가을걷이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봄, 유월절은 여름, 초막절은 가을에 지킵니다. 이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편 136편을 찬양했습니다. 


보통 제사 때는 레위인 성가대가 찬양했는데. 이 절기 때만큼은 온 백성이 이 찬양을 제창했습니다. 시편 136편은 1절부터 26절까지 매절마다 감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앞 소절은 제사장이 선창하고, 후렴구는 온 백성이 함께 제창했습니다. 1절 이하를 보십시오. 매 절마다 감사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한 절도 빠짐없이 감사하라가 반복되는 이유는 날마다, 순간마다, 호흡마다 감사하며 살라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이 대목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우선 출애굽입니다. 10-15절까지 다 출애굽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평생 감사하며 찬양해야 할 감사품목 제1호가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인들은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거기서 탈출했는데, 그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가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신 재앙을 내리십니다. 비로소 바로가 항복합니다. 자기 아들도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애굽의 탈출이 극적으로 성사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모세를 보내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주님을 보내사 세상으로부터 출애굽하게 하셨습니다. 이보다 값진 복은 없습니다. 우리가 평생 잊어서는 안 될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 죄, 애굽에서 우리를 구출하시기 위해 주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애굽의 마지막 재앙도 어린 양의 피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발랐는데, 그 피를 바른 이스라엘의 집은 유월하고, 피가 칠해지지 않은 애굽 사람들의 집에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가 장자들을 쳤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탈출해 하나님의 자유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어디서나 주님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 부릅니다. 마태복음 26장 2절입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4장 1절입니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요한복음 13장 1절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린도전서 5장 7절입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지금 여러분의 집문에 붙어 있는 교패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문설주와 인방에 붙어 있는 주님의 피가 중요합니다. 이것을 잊지 맙시다. 우리 눈에는 그것이 안 보이지만, 죽음의 신의 눈에는 다 보입니다. 사탄이나 마귀의 눈에는 마치 형광물질처럼 그것이 보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칠해져 있는 집에는 그들이 감히 못 들어갑니다. 죽음의 신이 우리의 집 문을 넘어간다는 유월절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합시다. 그 어떤 복보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신 것보다 감사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올해 추수감사절에도 이것을 반추하며 감사합시다.


다음은 기업을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17-20절까지를 보십시오. 여기에 나열된 왕들은 가나안 원주민의 왕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평정하사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접수하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말씀입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기업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합니다. 여기 나오는 기업은 유업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유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에게 보장된 하나님의 유업은 무엇일가요? 천국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상, 최대의 유업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대망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 주신 기업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은 친히 유월절 어인 양이 되사 우리를 출애굽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유월을 얻을 후사, 곧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은혜입니까! 


그런데도 천국의 유업에 대해 무덤덤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천국 가자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 천국이 빠지면 시체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유업 때문에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으며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걸고 도박하지 맙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천국을 팔아치우지 맙시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가장 무모한 일입니다. 천국에 대한 아무런 희망 없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궁극적 희망이 없는데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감사생활은 결코 억지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천국에 대한 산 소망이 있어야 진심 어린 감사가 가능합니다. 가나안에 대한 확신과 감격이 있어야 비로소 자발적인 감사생활이 성립됩니다. 


요즘은 부모도 재산이 있어야 자식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야 부모가 자식들에게 버림받지 않고 산다고도 합니다. 자식들이 가난한 부모는 잘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재산 가진 부모의 자녀들이 효성이 깊어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식들이 가난한 부모에게는 상속받을 유업이 없기 때문에 공을 들일 필요를 못 느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부모의 재산 정도가 아니라 천국이 유업으로 약속되고 보장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위대한 유산이 또 있을까요? 어찌 천국의 유업을 부모의 기업이나 재산, 땅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우리의 영원한 행복인 천국의 유업을 늘 감사하고 기뻐하고 대망하며 삽시다. 


다음은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25절입니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출애굽은 과거에 대한 감사, 기업은 미래에 대한 감사라면, 일용할 양식은 현재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부터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40년간 광야를 유랑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오직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살았습니다. 누구도 농사짓지 않았고, 사냥하지 않았고, 홍해에서 낚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은 한 달 만에 동이 났습니다. 그들의 양식은 하나님이 챙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적 가나안의 유업뿐만 아니라 현세적 은혜, 지금 당장 필요한 복도 보장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장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굶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날아가는 새와 들의 백합화도 보살피시는데 당신 자녀들을 모른 체 하지 않으십니다. 


올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 마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코로나19 아래에서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파산하지도 실직하지도 않고 아슬아슬하지만 여기까지 잘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고 보살피신 덕분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합시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다시 한 번 우리가 날마다 순간마다 쉬지 않고 찬양해야 할 감사의 항목을 마음에 새깁시다. 출애굽, 천국, 일용할 양식을 감사합시다. 이 세 가지 감사항목을 절대 잊지 맙시다. 우리의 골수에 각인합시다. 위대한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우리의 생애가 늘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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