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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배에 있지 아니하면
설교본문 행 27:9-3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9-20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920m.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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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벌써 9월 하순입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정국이 아직도 저희를 이렇게 힘들게 하며, 주일인 오늘도 역시 각자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연스럽고도 마음 불편한 상황을 하루 속히 끝내고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또 자녀들은 모두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공부하고 각자의 할 일들을 감당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저희의 일상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신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 부디 <코로나19>로 병든 이 지구촌을 고치시고, 저희 나라와 사회와 한국 교회와 저희 푸른교회를 온전케 하사 모두가 정상을 되찾아 자기의 본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의 모든 가정들을 친히 찾아가 주시고, 환자들을 안수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드리는 가정예배 조차도 쉽지 않은 성도들을 기억하사 위로해 주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사 말씀을 상고할 때 큰 깨달음과 감동을 허락하시며 결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신령한 복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00920m

행 27:9-32

배에 있지 아니하면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잘 아시는대로 바울은 디아스포라입니다. 그는 정통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 본토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헬라 문화권인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남동쪽인 길리기아 지방 다소라는 곳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의 언어인 히브리어뿐만 아니라 헬라어도 모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기에게 익숙한 문화권인 소아시아 지방을 무려 세 차례나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예루살렘에서 전격 체포되었으나, 거기 총독에게 재판을 받지 않고 로마로 가서 황제에게 직접 재판을 받겠다며 항소권을 행사합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기에 그런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본문은 그렇게 해서 지금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굳이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했을까요? 그는 어떤 식으로든 로마의 심장부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주후 59년 초겨울이었습니다. 당시 바울이 탄 배는 이집트 국적의 알렉산드리아호였습니다. 그 배는 타이타닉 같은 크루즈 선이 아니고, 이집트에서 생산된 밀이나 보리 같은 곡물을 로마까지 수송하던 상선이었습니다. 그런데 호송관인 백부장이 그 배편을 이용해 바울을 로마까지 데려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 37절에 보면 당시 그 배에는 모두 2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선주와 선장, 선원, 군인, 상인들이 그들입니다. 물론 그들은 모두 자유인이었고, 오직 바울만 쇠사슬에 묶인 죄수였습니다. 그러니 그 배의 다른 사람들이 바울을 어떻게 보았겠습니까? 이제 로마로 끌려가면 굶주린 사자들의 밥이 되거나, 아니면 글래디에이터(검투사)가 되어 귀족들을 즐겁게 하다가 비참하게 죽겠구나 하며 측은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알렉산드리아호가 지중해 연안의 그레데, 지금의 크레타 섬에 있는 미항 칼루스리메나스에 정박했을 때, 바울은 뜬금없이 호송관인 백부장과 선주와 선장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그러면서 그는 항해를 계속하지 말고 여기서 겨울을 나자고 합니다. 바닷길에 전문가인 선장, 선주, 선원들이 있는데 뱃사람도 아니고 사실은 그 배에서 가장 천한 죄수 주제에 여기서 겨울을 나자, 그냥 가다가는 배에 실은 곡물과 배뿐 아니라 자칫하면 이 배에 탄 사람들마저도 위태로울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겠습니까? 당장 그들은 이놈이 달아나려고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묵살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여러분, 그렇다면 당시 바울은 왜 그런 제안을 했을까요? 그가 괜히 그랬겠습니까? 바닷길 전문가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것도 쇠고랑을 찬 죄수가 할 일이 없어서 잘난 체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나름의 영적 통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물과 배 뿐 아니라 자칫 사람들의 생명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다며 구체적으로 경고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주님의 계시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23절 이하에서도 그가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이때도 분명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은 확신에 차서, 구체적으로 경고하며 “여기서 겨울을 나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배는 그 미항을 떠나 항해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그 배는 그들의 기대대로 순항을 했습니다. 13절입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13절까지였습니다. 이어지는 14절을 보십시오.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크레타 앞바다에서 유라굴로라는 초대형 태풍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유라굴로는 흔히 겨울철 지중해에서 발생하는 초특급 광풍을 말합니다. 헬라어로 유라굴로는 <미친 바람>이라는 뜻인데, 허리케인이나 싸이클론처럼 그 파괴력이 대단한 태풍이어서 악명이 높았습니다. 


아무튼 사정이 점점 더 험악해졌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태풍의 위력이 더 커지며 거의 절망적인 상태로 변해갔습니다. 바울의 말이 옳았습니다. 18절 이하입니다.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이때 다시 바울이 나섭니다. 21절 하반절입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바로 이 지점부터 알렉산드리아호의 운명이 완전히 바울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보십시오. 구원의 여망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그 최후의 순간, 배 안의 모든 자유인들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떨며 절망하고 있는데, 그 배의 유일한 죄수인 바울만큼은 홀로 담대합니다. 22절 이하입니다.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여러분, 24절에서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지금 누가 누구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합니까? 그 알렉산드리아호의 모든 승객들, 모든 자유인들이 죄수 바울 덕에 최소한 목숨은 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바울은 그 배에서 가장 별 볼일 없고, 가장 초라하고, 다 끝난 인생이라고 왕따 시킨 죄수가 이제는 그 배의 유일한 희망이고 생명줄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역할이고 존재의 이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이 말씀은 준엄한 사실이고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한 민족이나 공동체의 운명은 그리스도인에게 달렸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경멸하고 비웃고 조롱합니다. 현실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요즘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무슨 발언권이 있고 무슨 주도권이 있습니까? 그야말로 알렉산드리아호에 타고 있던 바울의 신세입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그리스도인을 죄인 취급하며 소외시키고 손가락질 하고 함부로 욕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었노라”고 하십니다. 너와 함께 항해하는 276명의 운명이 네 손에 달렸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영화 벤허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벤허가 노예가 되어 로마 군함 밑창에 들어가 쇠고랑을 찬 채 죽도록 노를 젓는데 그 배가 그만 적의 공격을 받아 격침됩니다. 그와중에도 벤허는 사령관 아리우스 제독을 구해내 널판지에 태우고 바다를 표류합니다. 제독이 몇 번이나 자결하려하지만, 그때마다 벤허는 죽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습니다. 그러다 아군을 만나 구조됩니다. 배에 오른 아리우스 제독이 묻습니다. “어떻게 됐는가?” “사령관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독은 바가지에 물을 떠서 노예인 벤허에게 먼저 건넵니다. 그러면서 제독이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저는 그 명대사를 잊지 못합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너를 구하기 위해 우리 로마 군대에 승리를 허락하셨구나”라고 하면서 그는 자기의 반지를 뽑아 벤허에게 주며 그를 양아들로 삼습니다. 


여러분,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대의 운명이 달렸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대의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렸습니다. 우리가 인정하든 않든, 대한민국이 그 사실을 긍정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진리입니다. 저는 알렉산드리아호에 타고 있는 죄수처럼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한 번도 그 사실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이 민족, 우리 사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어깨에 바로 대한민국의 운명이 지워져 있습니다. 주님이 역사의 주인이신한, 그것은 반드시 그렇습니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해보십시오. 당시 정치인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정치에 그 성의 운명이 달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군인들은 자기들의 손에 그 성의 안보가 달렸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경제인들은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그 성의 부와 풍요가 달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교육가들은 자신들의 교육이 그 성의 미래를 약속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 성의 운명은 놀랍게도 의인들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정치인도 경제인도 아닌 의인들에게 그 성의 생사가 달려있었음에도 그 성에는 최소한의 선인 열 명의 의인이 없어 결국 멸망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제대로 하나님을 믿는 신자 열 명이 없어 유황불 세례를 피하지 못하고 지금의 사해가 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당시 소돔과 고모라 시민 누구도 자신들의 그 멸망의 비밀을 모른 채 죽었습니다. 의인 열 명이 없어 참혹한 멸망을 당했다는 사실을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유황불 세례를 받았습니다. 옛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아무리 정치인들이 목청을 높이고, 아무리 군대가 막강해도, 아무리 문화가 현란해도, 최소한이나마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인이 없으면 결국 그 공동체와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호도 보십시오. 그 배에 비록 쇠고랑을 찼을 망정 한 사람의 의인 바울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그를 보시고 그 배에 탄 다른 사람들까지도 구원해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벤허를 위해 로마 군대에 승리를 안겨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바울이 처방을 내립니다. 31절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누구도 배에 있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며 바울은 절대 배를 떠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32절을 보면 아예 거룻줄을 끊어 아무도 그 배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세상 풍파가 아무리 거칠고 험하다 해도 배를 떠나면 안 됩니다. 배를 버리면 안 됩니다. 배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배는 언제나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 시대 구원의 배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코로나19라는 살인적인 유라굴로에도 불구하고 절대 배에서 탈출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배에 있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태풍 속에서 받은 하나님의 엄숙한 계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살겠다고 유행처럼 배를 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 교회를 탈출하는 것이 살 길이 아닙니다. 아무리 배가 흔들리고 그래서 불안하고 파선할 것 같고, 당장이라도 침몰할 것 같고, 멀미가 나서 속이 뒤집혀도 이 배 안에 있어야 구원을 얻지 배를 버리면 다 죽습니다. 그것은 마치 노아의 가족이 방주 속에 있지 않았다면 절대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유일한 구원의 방편이었음에도 결코 그 환경이 쾌적하거나 이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그 큰 배에 하늘로 난 작은 창이 딱 하나 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갑갑했겠습니까? 더구나 그 많은 짐승이 배 안에서 1년 동안 함께 먹고 마시며 배설했으니 공기는 얼마나 탁하고 냄새는 얼마나 지독했겠습니까? 또 짐승들의 싸우는 소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노아의 여덟 식구는 끝까지 방주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더는 못살겠다며 누구도 그 방주에서 탈출을 기도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고 버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배에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몽땅 수장당했습니다. 누구도 방주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아득한 옛날 노아 시대 때, 2000년 전 바울 시대 때, 또 2020년 코로나 시대에도 누구든 배를 떠나면 죽습니다. 살려고 배를 버리지만 살기는 커녕 도리어 죽는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고, 바울이 받은 엄숙한 계시요 경고입니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라는 광풍을 만나 벌써 여러 달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표류하고 있지만, 또 많은 사람이 구원의 여망을 잃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이러다가 배가 좌초해 완전히 파선하는 게 아닌가 하여 앞다투어 배에서 탈출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는 길이 아닙니다. 끝까지 배에 있어야 삽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어제 밤에 하나님이 내게 주셨다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부디 오늘 이 말씀이 이 어두운 코로나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희망의 메시지, 구원의 복된 계시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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