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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
설교본문 롬 8:26-39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9-13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913m.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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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오늘도 주일 아침 가정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배의 영이신 성령으로 함께 하사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산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비록 가족끼리 드리는 조촐한 예배지만 이 자리에도 주님 함께 계심을 믿사오니 저희 모든 가정들이 이 시간도 주 안에서 더없이 아름답고 복 되게 하시옵소서.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고 소란하고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그저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코로나19>의 위협이며, 정치 사회적인 대립과 갈등이며, 최악의 경제 위기 등에 직면해 국민 모두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하루 속히 <코로나>를 퇴치하고 이 나라와 사회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바닥까지 추락한 경기를 되살릴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한국 교회를 긍휼히 여기사 조속히 교회로 복귀하여 굳게 닫힌 문을 열고 교회 현장예배로 주일을 지키며 교제하며 더불어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나 방역에 대한 긴장은 늦추지 않게 하사 더 이상 교회에서 확진자들이 쏟아지는 일이 없게 하시고, 언제나 솔선하여 방역수칙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일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가 주시고, 가정예배 조차 드릴 수 없는 사정에 있는 성도들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말씀을 상고할 때 큰 깨달음과 감동을 주시고, 주님의 뜨거운 육성을 듣게 해주시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보고를 여사 만복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00913m

롬 8:26-39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소위 모태신앙, 모태신자이십니까? 아니면 어릴 때나 성인이 되어 스스로 신앙을 결단하셨습니까? 저는 아닙니다만, 제 친구 중에도 모태신자가 있습니다. 친구는 외할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셔서 그의 어머니도 모태신자셨고, 당연히 친구도 모태신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것을 부인합니다. 자기가 언제 엄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을 믿었느냐며 항변합니다. 자기는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수련회 때 처음 주님을 영접하고 믿기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때 비로소 자기는 신자가 된 것이지 엄마 뱃속에서 신자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의 말이 맞습니까? 믿는 엄마들은 임신하면 당연히 신앙적으로 태교를 합니다. 배를 쓰다듬으며 아기를 위해 기도하고, 태아가 듣도록 찬송도 틀어주고, 성경 말씀도 읽어주고, 성경동화도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비록 자기가 스스로 택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태교를 통해 뱃속에서부터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 신앙교육을 받다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억을 못할 뿐이지 모태신자들은 잠재의식 속에 태교를 통해 얻은 신앙 정보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성장하면서 혹은 살아가면서 신앙을 떠나거나 교회를 등질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친구에게도 말했습니다만, 자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기의 의지와 결단으로 예수를 믿기 시작했기 때문에 모태신자가 아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신자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도 한 사람의 신자, 한 사람의 하나님 자녀됨의 신비와 비밀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 드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입니다.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아닌가는 나의 자유의지에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기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가리킵니다. 나를 부를 것인가 말 것인가, 에서를 택할 것인가 야곱을 택할 것인가, 다윗을 택할 것인가 사울을 버릴 것인가, 한 줌의 흙으로 고려청자를 만들 것인가 뚝배기를 만들 것인가는 모두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하나님 자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제가 이전에 장로교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알미니안주의라고 하는 감리교나 오순절 교단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습니까? 고등학교 1학년 여름수련회 때입니까? 아니면 엄마 뱃속에서였습니까? 아닙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성경은 우리가 이미 아득한 창세 때, 아니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사 당신의 자녀로 정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이하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사실 우리는 모태신자, 모태신앙이 아니라 창세신자, 창세신앙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대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엇입니까? 고등학교 1학년 여름수련회 때 주님을 영접하고 회개하고 결단하고 그때부터 내가 주체적으로 내 의지로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사건은 그동안 전혀 몰랐는데 그 수련회 때 비로소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에 이미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내가 최초로 깨닫게 된 사건입니다. 그때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게 아니라 창세 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한 사건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사실을 외쳐도 황당한 소리라며 안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열의 아홉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 복음을 접수하고 믿으며 주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내가 바로 창세 전에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창세 전에 예정된 바로 그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가 과연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일까요? 지금 나의 자유의지를 발동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자, 나의 자유의지를 발동해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곧>이라는 부사는 이것과 저것이 같다는 뜻입니다. 이미 창세 전에 발동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내가 고1 때 주체적으로 발동한 자유의지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이 나를 택해주셨기에 내가 고1 때 믿게 된 것이고, 지금의 나의 하나님 사랑과 믿음도 내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과 예정을 입은 자라는 사실을 귀납적으로 확인해주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왜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여전히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지 않을까요?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믿고 싶어도 절대 못 믿습니다. 어떤 동기로 한동안 믿는 척하며 교회 출석을 할 수는 있어도 그런 사람은 시간문제입니다. 결국은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리고 주님을 등집니다. 가룟유다, 구약의 사울, 주님의 가라지 비유가 다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지구촌을 강타한 이 최악의 코로나 정국 가운데도 필사적으로 주일을 지키며 각자의 가정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면서까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았다는 사실의 물증입니다. 


그러면 본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어떤 현실적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본문 28절 하반절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입니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성공한 것 뿐만 아니라 내가 실패하고 실수한 것, 약한 것, 부끄러움, 감추고 싶은 치부, 못난 것, 크고 작은 죄, 허물까지도 결국은 다 내게 은혜와 축복, 유익이 되고 덕이 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요셉을 보십시오. 아버지 야곱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그가 졸지에 형들에게 버림을 받아 처음에는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다시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립니다. 형들이 그를 죽이려다가 판 것입니다. 만리타국인 애굽으로 팔려간 그는 애굽 왕의 시위대장(경호대장)인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데, 거기서 또다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힙니다. 시편 105편을 보면 요셉이 당시의 고통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발이 차꼬에 상하며 내 영혼이 쇠사슬에 매였었노라” 얼마나 힘들고 억울하고 원통했으면 그때 자신의 영혼이 쇠사슬에 꽁꽁 묶여있었다고 고백했겠습니까? 그런데 결국은 그 삶의 맨 밑바닥에서 놀랍고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전혀 희망도 가능성도 안 보였는데 졸지에 그의 절망적 상황이 180도로 역전됩니다. 감옥에서 잠시 함께 지낸 왕실 고위관료의 추천으로 어느 날 왕 앞에 불려나가 애굽 천지에서 그 누구도 풀지 못한 왕의 난해한 꿈을 완벽하게 해석하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던 이방인 노예 죄수가 하루아침에 대제국, 당시로서는 유일한 초강대국 애굽의 제2인자 국무총리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동안의 그의 모든 뼈아픈 불행이 이제는 더 이상 불행이 아니라 다 합력하여 소중한 선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그가 형들에게 배신당하지 않고, 노예로 팔려가지 않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당하지 않고, 모함당하지 않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그가 과연 상상할 수조차 없는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과정 하나하나를 보면 정말 견딜 수 없는 아픔이요 끔찍한 불행이지만,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합하여 위대한 선이 되게 하사, 그 중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완벽한 필연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여러분, 살아 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죽은 나무에게는 그 무엇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더 빨리 쓰러지고, 햇볕이 나면 더 빨리 마르고, 거름을 주면 더 빨리 분해되고, 비가 오면 더 빨리 썩을 뿐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나무에게는 무엇이나 도움이 됩니다. 바람이 불면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비가 오면 더 쑥쑥 자라고, 햇볕이 나면 더 푸르고 더 풍성하게 열매를 잘 맺습니다. 온갖 썩은 것을 다 모아 거름을 주어도 그것을 자양분으로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자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어째서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일까요? 어째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이 점을 확인해보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먼저 본문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밤낮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27절 하반절도 보십시오.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렇게 성령이 제대로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축복을 누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32절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심지어 당신의 아들까지도 우리를 위해 내주신 성부 하나님이 새삼스럽게 우리에게 무엇을 아낄 것이며, 그 무엇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34절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 말씀은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면서 우리가 실수하고 죄 지을 때마다, 우리가 약해서 엎어지고 자빠지며 시험에 들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서서 우리를 변명하시고, 우리를 두둔하시고, 우리를 변호하시고, 그 누구도 감히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위해 늘 탄원하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인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시고, 필요한 모든 은사를 허락하시고, 누구도 정죄하지 못하도록 하나님 앞에서 밤낮 우리를 변호하고 계신데 어찌 우리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35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절 이하입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부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보장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축복이 최악의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심령마다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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