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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하나님보다 더 무서워하지 말라!
설교본문 마 10:16-3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9-06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906m.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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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오늘까지 벌써 3주째 이렇게 주일예배를 가정에서 드립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사오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옵소서. 또한 하루 속히 교회로 복귀할 수 있게 하시고, 이를 위해 저희들 더욱 열심히 기도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들 올해 참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사태로 많은 것을 잃었고, 지금도 여전히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  긴 장마가 남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연이은 태풍 피해로 시름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이재민들을 위로하시고 하루 속히 모든 피해를 복구하여 정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사회 역시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습니다. 전공의들의 파업이며, 비대면 예배를 놓고 벌이는 일부 교회들의 방역 당국과의 갈등이며,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 실시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폐업 위기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사 지켜주시옵소서. 

속히 <코로나>를 퇴치하고 나라 전반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뜻하지 않게 <코로나19>와 싸우는 과정에서 더 악화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잠재워 주시고, 전국의 모든 교회들이 더욱 솔선하여 방역에 보다 책임적으로 임하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가정예배를 통해 주님의 육성을 듣게 하시고, 기도하는 바를 응답해 주시고, 예배자 모두 성령의 깊은 위로와 격려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주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아름다운 복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00906m

마 10:16-33

하나님보다 더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주일 아침입니다. 여러분 모두 잘 지내십니까? 뵌 지 오래 되었습니다만, 또 다시 교회 복귀 일정이 연기되었습니다. 정부가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를 오늘까지가 아니라 13일까지, 전국적인 2단계 거리두기는 20일까지로 연장했습니다. 그러므로 20일까지 주일 가정예배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달 마지막 주일인 27일에나 교회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정도 더 지켜봐야 합니다. 부디 20일에서 더는 연장되는 일 없이 꼭 교회로 돌아와서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소개해드린 본문은 주님이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며 하신 당부입니다. 한마디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본문에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아마 이 말은 당시 제자들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씀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두려움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누구나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악한 세력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모순들이 다 제거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주님 시대도 마찬가집니다. 16절 상반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이것이 당시 주님이 보신 세상 모습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절대 세상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주님은 무섭도록 냉정하게 보셨습니다. 이 세상은 온통 이리들로 가득 찬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린 양들을 그런 위험천만한 세상으로 내보내시는 주님의 심경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천국에 가기까지는 이런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양들을 노리는 이리들뿐만 아니라 코로나까지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늘도 무한한 연민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며, 특별히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몇 가지 덕목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16절 하반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뱀 같이 지혜로우라는 말씀은 지독한 역설입니다. 우리는 뱀을 무서워합니다. 뱀이야말로 사탄의 상징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뱀 같이 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뱀은 치명적인 지혜를 가진 동물입니다. 뱀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가장 지혜롭다는 인간을 유혹해 죄에 빠뜨렸습니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그래서 주님이 지금 여기서 역설적으로 뱀을 언급하시며 지혜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불확실하고 득실대는 이리들 때문에, 창궐하는 코로나 때문에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요즘 같은 시대에는 뱀 같은 지혜가 필수적입니다. 한 번만 잘못 판단하고 선택해도 큰 코 다치기 십상이기에 지금은 그 무엇보다 뱀 같은 지혜가 가장 절실한 때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지혜롭게 판단하고 선택하고 처신해야지 아무 생각 없이 미련하게 살아가다가는 이리나 코로나의 타겟이 되고 그들의 밥이 되기 십상입니다. 


주님은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도 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이 시대 성도들의 필수덕목입니다. 이 말씀은 혼미하고 위험천만하고 코로나가 창궐하는 비상한 때라고 함부로 세상과 타협하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하나둘 포기하며 살지 말고 도리어 비둘기처럼 믿음의 순결을 지키고 영혼의 정절을 고집하며 보다 구별된 삶을 살라는 당부입니다. 


저는 실제 비둘기가 얼마나 순결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에서는 뱀이 지혜를 상징하듯 비둘기는 순결, 성결을 상징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코로나를 핑계로 세속화되거나 함부로 자신의 영혼을 팔지 맙시다. 오히려 비둘기처럼 영혼의 순결을 지키고, 믿음의 정체성을 단단히 붙잡읍시다. 그것이 이 아침 주님의 간곡한 당부입니다. 


17절 상반절에서 주님은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을 믿고, 가까이하고, 무한 신뢰하고 절대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사람을 믿지 말고, 경계하고, 가능하면 멀리하고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절대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이상주의를 말씀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무서우리만큼 냉정한 현실주의를 말씀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이리의 정체가 바로 여기에서 밝혀집니다. 이리가 이리가 아니라 사람이 이리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사람 같은 사람보다 이리 같은 사람, 양 같이 보이지만 실은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절대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믿지 말고, 정말 사람인지 인두껍을 쓴 이리인지, 양의 탈을 쓴 이리인지 뱀 같은 지혜로 확인해서 조심히 상대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이리입니다. 지금은 양보다 양의 탈을 쓴 이리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사람을 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이렇게 됩니다. 16절 하반절입니다.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결국 그 이리들이 너희를 공회, 즉 유대인들의 최고 정책기관인 산헤드린, 요즘 말로하면 국회이고, 회당은 기관을 말하는데, 어쨌든 거기에 넘겨 채찍질한다, 곧 고문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 총독과 임금에게 끌고 간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법정이나 권력 앞에 세울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21절도 보십시오.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가족들끼리 서로 갈라져 다투고 싸우고 등지고 의절하여 원수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리들이 그렇게 인간관계, 가족관계에 분탕질하니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사람들을 조심하고 코로나를 조심하되 결코 그들을 두려워말라는 것입니다. 경계하되 두려워하지는 말라. 설교 서두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만, 과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주님은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우리가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26절입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믿는 자들이 당하는 대부분의 고난이 정당한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거짓과 모함을 뒤집어 쓴 억울한 박해임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실은 그래서 우리가 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인데, 주님은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고, 악한 세력들의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므로 역사를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세상의 모든 모순과 거짓과 불의가 영원히 지속하기라도 할 듯이 절망하거나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29절 이하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한두 푼에 팔리는 미물의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땅에 떨어지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신 바 된 너희겠느냐. 많은 참새보다 훨씬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오죽 더 잘 지키고 보호하시겠느냐. 그러니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지당하고 복 되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자명한 말씀입니까? 


제가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에게 참새란 그저 그런 피조물일 뿐입니다. 참새에게도 하나님은 조물주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그냥 피조물이 아니라 자식들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그냥 창조주나 조물주가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그저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부모 자식 관계입니다. 부자지간, 부녀지간입니다. 그러니 참새보다 이 세상 그 어떤 피조물보다 하나님이 얼마나 더 철저하고 완벽하게 돌보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말씀한 곳도 있습니다. 날아가는 새를 보라, 저들의 백합을 보라. 씨도 안 뿌리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굶지 않고 헐벗지 않고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답게 잘 살아가고 있느냐. 다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시고 계신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들인 너희겠느냐. 제발 염려, 걱정, 두려워하지 말아라. 어떻습니까? 그래도 여전히 세상이 무섭고 이리들과 코로나가 두려우십니까?


이제 결론입니다. 이 말씀이 주님의 마지막 히든 카드입니다. 28절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그동안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다가 여기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이, 잔인한 이리들, 창궐하는 코로나가 무섭습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름이지만 마스크를 하고, 손 소독을 하고, 사람들을 피해 다니고, 식당과 카페를 자제하고, 가능하면 안 움직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세상, 코로나보다 훨씬 더 무서운 분이 계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리가 아무리 사납고 잔인하다 해도, 코로나가 아무리 무섭고 치명적이라 해도 우리의 육신 밖에 더 해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 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지옥에 던져 영원히 멸하실 수 있는 절대적이고도 궁극적인 두려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산다고 하면서 여전히 세상과 코로나를 두려워하여 오금을 못 편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제대로 두려워하며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본문 28절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내 몸과 영혼을 함께 지옥에 던져 나를 영원히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제대로 두려워하면 이 세상이 주는 두려움, 이리, 코로나, 폐업이나 실직이 주는 상대적인 두려움 따위는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두려움, 궁극적 두려움이 세상이 주는 상대적이고 지엽적인 두려움을 능히 이기게 하고도 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경계하고 조심하는 수준을 넘어 죽을 듯이 떨며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도 내가 하나님을 나의 궁극적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는 불신앙의 소치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이 우주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절대적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육신과 영혼을 영원한 죽음에 처하실 수 있기에 하나님이 우리의 궁극적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이 사실을 확신하면 그 순간 우리 앞에서 세상과 코로나가 주는 모든 두려움이 허깨비처럼 다 사라집니다. 


스코틀랜드의 개혁가 존 녹스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가 누워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파멸하기 위해 마귀가 준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 절대적인 두려움으로 세상이 주는 모든 상대적인 두려움을 이기고 누구보다 용감하고 담대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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