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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광야 여정
설교본문 고전 10:1-5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8-16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816m.mp3



20200816m

고전 10:1-5

광야 여정


(고전 10:1-5, 개정)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들의 광야 행진이 과연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중요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대는 바뀌었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관리하고 이끄시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돌보고 그들의 삶을 간섭하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백안시 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 이어지는 6절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의 삶의 여정이 우리 삶의 모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과거에 당신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가까운 지중해 해안길을 두고 먼 광야길을 돌아가게 하십니다. 출애굽기 13장 17절 이하입니다.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애굽에서 가나안까지는 먼 거리가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북쪽 지방인 고센 땅에서 살았고, 출애굽 때 고센 땅 라암셋에서 출발했습니다. 애굽 최북단에는 지중해가 있고, 그 인접 지역이 고센 땅입니다. 고센 땅 북동쪽에 가나안이 있기에, 지중해 해안선의 대상로를 이용하면약 230-250km만 가면 가나안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가까운 그 길로 인도하지 않고, 굳이 먼 홍해길, 광야길, 길도 없는 시내 사막으로 이스라엘을 우회시키셨습니다. 홍해와 시내 광야는 남동쪽이니까 가나안과는 반대 방향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지중해 길로 가면 반드시 블레셋을 통과해야 하는데, 자칫 그들과 전쟁이 벌어지면 당시 이스라엘은 전혀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이스라엘이 겁을 먹고 다시 애굽 땅으로 돌아갈까봐, 먼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가깝고 쉬운 길이 아니라 멀고도 험한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럴 때 야속해하거나 억울해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맙시다. 다 우리를 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운 길로 가다가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한 적을 만날까봐, 블레셋이 무서워 애굽으로 도망칠까봐 우리의 길을 우회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여정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 때는 먼 길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자주 시험에 들거나 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시험을 피하게 하신다면, 우리는 시험에 들 수 없는데, 왜 우리는 시험에서 패할까요? 우리가 지레 백기를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것이 어떤 시험이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험은 우리가 이깁니다.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시험이면, 과거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이 사전에 먼 길로 우회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빤히 보이는 가까운 길, 잘 닦인 지중해 길을 두고 굳이 광야 길로 우회시킬 때는 우리 앞에 복병 블레셋이 있음을 깨닫고 불평보다는 감사하며 순종합시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서 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 이하입니다.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시내 광야는 낮에는 최고 49도까지 오르고, 밤에는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지거나 어떤 때는 영하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일교차가 30-40도까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 에어컨으로, 밤에는 불기둥 히터로 그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도 40년을 유랑하며 일사병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고, 추위 때문에 목숨을 읽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낮이나 밤이나 길을 잃지 않고 행진할 수 있게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에는 길이 없습니다. 거기에서는 방향감각도 상실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침반이나 별자리를 보고 가나안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고 행진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우리를 지키시며 이끄십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기본원리는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영적 장치들로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행진합시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은 언제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며 앞서 가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바짝 좇으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가나안까지 성공적으로 행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과 코로나19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와 보호를 받으면,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늘 담대하고 용감하게 부지런히 주님 뒤를 좇읍시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신령한 음식을 먹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여기서 말씀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먹은 신령한 음식은 <만나>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 반 만에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성인 남자만 60만 명이었고, 여성과 어린아이까지 합치면 약 200만 명이나 됩니다. 더구나 짐승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꼼짝없이 광야에서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결국 엘림에서 폭동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대들며 아우성 쳤습니다. 출애굽기 16장 4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이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이 만나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출애굽 한 달 반부터 가나안에 들어가 농사지으며 식량을 자급자족하기까지 만 40년간 신령한 만나를 먹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날마다 행군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식도 신령한 음식인 만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만나는 무엇일까요? 신명기 8장 3절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령한 음식입니다. 광야 여정의 주식은 밥이나 떡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간식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메인 메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음에도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시지 않아 그들 가운데 다수가 멸망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처음에 그들은 만나를 먹고 꿀과자 같다며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만나만 먹는다고 불평했습니다. 민수기 11장 4절 이하입니다.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요받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신령한 음식이고 주 양식이라 해도 말씀에 질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광야에서 살아남으려면 오직 만나뿐입니다. 떡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우리의 주된 양식입니다. 절대 말씀에 소홀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이 박한 음식을 싫다고 하지 맙시다. 그러다가 신령한 음식을 먹은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뼈를 묻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가나안에 무사히 들어가기까지는 하나님의 말씀, 곧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 왜 교회는 밤낮 말씀뿐이냐며 원망하지 맙시다. 오히려 감사합시다. 더욱 말씀에 충실한 성도가 됩시다. 그래서 끝까지 건강하게 불뱀에 물려 낙오하지 않고, 광야에서 객사하지 않고 가나안까지 안전하게 입성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