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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디테일에 응답이 있다
설교본문 왕상 18:41-4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7-19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719m.mp3


20200719m

왕상 18:41-46

디테일에 응답이 있다


(왕상 18:41-46, 개정)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장마철인데도 중부지방에는 이렇다 할 비가 없었습니다만 오늘부터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올 여름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나시길 바랍니다. 


본문은 엘리야 시대 이야기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무려 3년 반 만에 쏟아진 가공할 물 폭탄을 뚫고 갈멜산부터 이스르엘까지 약 20km을 신들린 사람처럼 내달렸습니다. 무슨 일 때문일까요?


여러분, 마차와 사람이 시합을 하면 당연히 마차가 이깁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맨발로 질주한 엘리야가 마차를 이겼다고 합니다. 큰 비 내리는 최악의 조건에도 하프 마라톤 거리를 엘리야가 아합의 마차 앞에서 내달렸습니다.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엘리야가 뜀박질 선수도 아닌데 그 먼 거리를 장대비 속에서 미친 듯이 달렸을까요? 


그 이유는 너무 기쁘고 감격하고 감사해서 그렇게 달렸습니다. 무려 3년 반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던 땅에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하자 큰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최첨단 시대에도 3년 반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았다고 하면 그런 국가적 재앙도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오직 하늘만 바라보고 살았던 지금으로부터 2800여 년 전의 고대 이스라엘 사회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런데 기도 후에 큰 비가 쏟아지니 그 감동과 감격이 얼마나 남달랐겠습니까?


그러면 엘리야는 어떻게 해서 그런 하나님의 위대한 응답을 체험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엘리야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선지자를 대표할만한 전설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죽지 않고 산 채 천국에 간 사람입니다. 열왕기하 2장을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불수레를 타고 죽음이라는 통과의례 없이 그는 하늘로 직행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유명한 사람인데,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엘리야야 말로 위대한 기도의 전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진정한 기도의 달인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행적은 기도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엘리야의 기도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는 우선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바를 언제나 디테일하게 구했습니다. 사실 이것이 그의 기도의 가장 큰 특색입니다. 엘리야는 절대 막연하고 모호하거나 애매하게 범우주적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세세하고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비를 내려주십시오. 죽은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저 빈 통에 가루를 채워주시고, 저 빈 병에 기름을 채워주십시오. 기도는 바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언제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어정쩡하거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애매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응답도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는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갈멜산에 맞장 뜨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때 엘리야는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불이 내려와서 번제물을 태움은 물론 도랑의 물까지도 핥았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언제나 자신의 필요를 콕콕 집어 디테일하게 기도했습니다. 


기도원에 가보면 이 민족을 달라, 저 북한 동포를 달라, 중국을 달라, 세계를 달라고 기도하는 분들을 봅니다. 이것은 다 허세입니다. 그런 기도는 아무나 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소박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디테일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적나라하게 원색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돈이 얼마 필요하니 달라고 해야 하고, 병을 낫게 해달라, 집을 달라. 조건에 맞는 직장을 달라, 어느 대학에 합격시켜 달라, 저 사람이랑 꼭 결혼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을 꼭 수습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하며 문제를 제기합니다. 기도응답과 관련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원칙은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한 후에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먼저 불을 구하게 하신 후에, 비를 구하게 하신 후에, 돈을 구하게 하신 후에 불과 비와 돈을 주십니다. 


주님은 굳이 왜 이렇게 하실까요? 우리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주님이 알아서 다 해주시면 우리가 그걸 감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일상으로 누리는 것 가운데 우리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하나님이 알아서 주시는 것들이 많습니다. 공기나 햇빛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저 자명한 것으로 여기지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공기, 햇빛, 물이 없으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감사하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알아서 거저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악해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온갖 핑계를 다 대며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의 구체적인 기도 없이 하나님이 다 베풀어주시면 우리는 그걸 다 우연이나 재수로 돌리고, 조상의 은덕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조상의 묫자리 잘 써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먼저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처럼 불과 비를 달라며 디테일하게 구하는 게 정답입니다. 그러면 응답도 분명합니다.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라는 독일의 유명한 건축가가 한 말입니다. 아무리 웅장한 건축물이라도 디테일에 실패하면 그것은 실패한 건축물이라는 겁니다. 기도도 마찬가집니다. 디테일하지 않은 기도는 응답도 디테일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주 합심기도 때마다 조목조목 기도제목을 언급합니다. 왜 매주 같은 말을 반복할까 불평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디테일하게 기도하라는 취지에서 그렇게 언급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의 전설인 엘리야의 가르침입니다. 


엘리야는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42절입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유대인들은 주로 서서 기도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기도 자세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거의 요가 수준으로 기도한 겁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그만큼 당시 엘리야의 기도가 간절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댁에 돌아가셔서 이 자세를 한번 취해보십시오. 쉽지 않습니다. 주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도 피땀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엘리야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 5:17-18). 그러므로 간절함은 엘리야의 기도의 또다른 특징입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을 협박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나의 간절함을 금식으로 철야로 표현하는 겁니다. 소나무 뽑을 듯이 붙잡고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간절함으로 기도하지 못합니다. 엘리야도 주님도 그렇게 기도했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땅에 얼굴을 뭍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건조하고 담백하고 깔끔한지 모릅니다. 


주님이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눅 18:7-8) 엘리야는 간절히 기도해서 응답을 얻었습니다. 


엘리야는 확신으로 기도했습니다. 본문 41절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엘리야는 기도하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응답부터 받았습니다. 그는 비도 오기 전에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응답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기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주님은 믿고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만일 기도하고 의심치 않으면 산을 바다에 던질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기도의 치명적 한계는 이런 확신이 아니라 늘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기도한다는 사실입니다. 나 같은 사람의 기도가 응답될까? 어떤 분은 응답 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미 불신과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기도합니다. 여러분, 기도는 확신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확신을 시험해보시고 응답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응답이 자칫 은혜와 복이 아니라 재앙이나 저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응답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 준비되었는지를 주님은 체크하십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 대부분이 불행해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돈벼락을 맞으면 그 행운이 저주가 됩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이혼하거나 노숙자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그런 행운을 감당할 만한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기도응답은 불행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믿음으로 이미 빗소리를 듣는 자에게 비를 주시고, 이미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는 자에게 응답을 허락하십니다. 주님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위대한 기도의 사람 엘리야는 늘 확신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응답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기도합시다. 여러분의 기도가 다 응답 받아서 엘리야처럼 감격하며 신나게 빗속을 달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