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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가 절망할 수 없는 이유
설교본문 습 3:14-20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7-12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712m.mp3



20200712m

습 3:14-20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가 절망할 수 없는 이유


(습 3:14-20, 개정)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난 주 WHO가 코로나 블루(Corona-Blue) 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와 우울하다는 뜻의 Blue가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이것은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이라는 뜻인데, 이게 세계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 이전과 비교할 때 우울증 환자가 최저 9%에서 24%까지 늘었고, 평균 17.6%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각 국은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자국민의 정신건강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권고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블루 환자들이 많이 증가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올 5월말 현재 과목별 진료비를 산출한 결과를 보면 정신과 진료비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늘었다고 합니다. 다른 과 진료비는 지난해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고 합니다. 소아청소년과는 67%, 이비인후과 45% 감소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블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통계로 확인된 것입니다. 교회 활동, 동호회 활동, 문화 활동, 여행 등 각종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우울감, 고립감, 절망감,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 굉장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사전 관리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특별히 코로나 블루를 가장 경계해야 할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자살률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13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통계청이 1년에 한 번만 발표하던 자살률을 올해부터는 매월 발표하고 있습니다. 올 통계를 보면, 1-5월까지의 평균이 1072명이고, 이것을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월 40명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이든 다른 문제로 인한 선택이든 누구나 극도의 절망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스바냐 선지자 시대, 그러니까 BC 630년경의 유다 사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권력가들의 폭정과 관료들의 부패, 지도자들의 타락이 g하늘을 찔렀습니다. 므낫세 이후 50년이 넘도록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미가서 3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는데도 통치자들은 그들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발랐다고 합니다. 재판관은 뇌물을 받고 판결하고, 제사장은 오로지 삯을 위해 제사를 집례하고, 도처에 악한 무리들이 남의 피를 흘리기 위해 매복하고, 올무로 형제를 잡기 위해 어두운 곳에 잠복하고, 심지어 품에 안긴 아내도 믿지 못하는 극단적 불신 사회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완전히 타락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태양신을 숭배했다고 합니다.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두었다고 합니다. 대놓고 하나님 대신 우상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러니 현실이 얼마나 절망스럽고,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에도 소수의 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본문 앞 12절과 13절 상반절에 그런 남은 자들이 나옵니다. 14절에도 시온의 딸, 예루살렘의 딸이 남은 자를 가리킵니다. 세상이 다 미쳐 돌아가는 중에도, 다 배신하고 다 변절하고 다 타락하고 다 절망하며 자포자기 해도 여전히 신앙 양심을 지키며 영혼을 팔지 않은 소수의 남은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절망적인 시간이 오래 지속되니까 극도의 피로감 때문에 이제는 남은 자인 그들마저도 서서히 지쳐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스바냐를 통해 소수의 남은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시기 위해 하신 말씀이 본문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마찬가집니다. 어느 나라나 다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나날이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있고, 매달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습니다. 어디를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실로 암담한 상황입니다. 믿는 자들의 신앙도 점점 더 흔들리고 침체되어 교회를 떠나는 신자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본문이 말씀하는 남은 자는 바로 우리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암담한 코로나 시대의 시온의 딸이요 예루살렘의 딸들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16절 하반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이 말씀은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어깨를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자포자기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14절을 보시면 좌절보다는 차라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어째서 우리가 이 참혹한 코로나 시대에도 좌절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5절 상반절을 보시면 여호와가 우리의 형벌을 제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냉정히 말하면, 우리는 절망할 마땅한 이유는 죄뿐입니다. 흔히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심지어 온 가족이 돈 때문에 동반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선택입니다. 하지만 절망, 좌절, 자살의 합당한 동기는 오직 죄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죄는 치명적입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코로나19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죗값입니까?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제자들이 처음부터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보고 주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본인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주님은 본인도 아니고 부모 죄 때문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졸지에 죽은 사람이나 빌라도에게 무고하게 희생된 갈릴리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렇게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주님은 모든 비극과 죽음이 죗값이라는 고정관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행과 비극적인 죽음이 죗값이라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7월 6일에 UN환경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 지구촌을 위협한 감염병들, 사스, 에볼라, 코로나 등은 다 동물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국지적 감염병의 75%도 자연으로부터 왔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분별한 자연파괴 행위로 인간과 동물 간의 거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접점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인류가 계속 생태계를 파괴하고 동물의 영역을 침범하면 향후에는 이러한 심각한 전염과 감염병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이 아니라 유엔보고서도 치명적 감염병이 인류의 죗값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유엔보고서의 과학적 결론입니다. 전염병은 죗값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럼에도 본문이 우리 남은 자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러므로 남은 자들은 한숨 쉬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오히려 노래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 남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죄 용서를 못 받았다면 절망할 만도 하지만 남은 자들은 주님의 보혈로 다 씻음을 받은 자들이기에 함부로 절망하거나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죄 용서를 받은 자가 절망하거나 자살하는 것은 바보짓이고 억울한 노릇입니다. 부디 힘든 가운데도 감사하며 마음으로 노래하고 기뻐합시다. 내 죄와 형벌을 다 제거하였다는 주님의 말씀을 허투루 듣지 않고 진지하게 듣고 아멘하며 힘을 내어 담대히 삽시다. 


우리가 절대 좌절할 수 없는 이유는 지금도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기뻐하시고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7절 하반절입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얼마나 황송하고 불가사의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잠잠히 사랑하고, 나로 인해 즐거워하고 감격하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해도 될까 말까한데, 하나님이 우리를 짝사랑하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느라 하나님께 눈길도 한 번 안 주는데,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이 우리를 못 견딜 만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대체 무엇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해달라고 호소하고 계신 것일까요? 대체 우리는 무슨 권리로 하나님의 사랑에 이토록 무심할까요? 하기야 자식이 부모 생각하는 것 봤습니까? 부모는 버림받아 시설에 있으면서도 밤낮 자식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맹목적 입니다. 그러니 제발 슬픈 표정 짓지 말고, 어깨를 늘어뜨리지 말고, 누구보다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받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듬뿍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어디를 가나 기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손 가정의 자녀들은 늘 주눅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지금도 나로 인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데 왜 절망하십니까?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그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그러니 더욱 용감하게 삽시다. 


한번은 루터가 종교개혁이 힘들어 다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에 빠집니다. 어느 날 극도로 지쳐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상복을 입고 그를 맞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 묻습니다. 왜 상복을 입고 있느냐? 아내는 정색을 하며 하나님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루터가 그 무슨 망발이냐고 소리 질렀습니다. 아내 카타리나가 말합니다. 하나님이 안 돌아가셨다는 말입니까?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신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왜 당신은 그토록 낙담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을 수 있습니까? 지금 당신을 보니 하나님은 분명 돌아기신 게 맞습니다. 루터가 큰 충격을 받고 그날 밤새 회개합니다. 그렇게 거의 포기하다시피한 종교개혁을 완수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힘을 내고 용감하고 담대하게 사는 이 코로나 시대의 진정한 남은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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