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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설교본문 요 21:18-2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6-14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614m.mp3




20200614m

요 21:18-23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요 21:18-23, 개정)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한국 기독교는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100년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개신교는 미국 북장로회가 파송한 의료 선교사 알렌이 입국한 1884년을 원년으로 삼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36년 전입니다. 가톨릭은 조선 천주교를 창립한 1784년을 한국 가톨릭의 기원으로 삼습니다. 한국 교회도 신구교가 모두 순교로 시작되었습니다. 100년 앞선 가톨릭도 100년 후반인 개신교도 모두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출신의 교부 터툴리안은 주후 212년에 순교합니다만, 평소 그는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혹은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보십시오.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스데반과 야고보 사도 같은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초대 로마교회도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로마교회 같은 경우 콜로세움이나 카타콤에서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나왔는지 모릅니다. 그 피 위에 로마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부터 세계 교회로 복음이 뻗어나갔습니다. 


한국 교회도 순교 위에 세워졌습니다. 가톨릭은 1784년에 조선 천주교가 창립되는데, 당시 역관 김범우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집이 지금의 명동성당 자리입니다. 당시 함께 한 창립멤버가 이벽, 이승훈, 정약용, 정약전 등이 있습니다. 1785년에 그들이 모두 잡혀갑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다 양반이어서 풀려나는데, 김범우는 역관이어서 중인이었기에 풀려나지 못합니다. 그는 심한 고문을 받고 경남 밀양의 단장으로 귀양을 갑니다. 2년 만인 1787년 9월 14일에 37세를 일기로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죽습니다. 가톨릭은 김범우를 한국 가톨릭의 첫 순교자로 세웠습니다. 흔히 우리는 첫 순교자로 김대건 신부로 알지만, 그는 한국인 신부로서 첫 순교를 한 사람입니다. 김범우의 영세명은 토마스입니다. 1784년에 가톨릭에 첫 입문한 그는 당시 이승훈에게 영세를 받습니다. 그때 받은 영세명이 토마스입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 뒤에 출범한 개신교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개신교사의 첫 순교자는 신비하게도 역시 토마스입니다.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 목사입니다. 그는 알렌 선교사보다 18년이나 앞선 1866년에 중국에서 조선의 대동강으로 들어오다가 관군들에게 참수당합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 개신교가 출범하기도 전에 순교한 것입니다. 그는 1840년 9월 7일 영국 웨일즈 라가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는 옥스퍼드 의대에서 장학생으로 데려가려고 공을 들였는데 그는 런던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합니다. 그는 1863년 6월 4일에 아버지가 목회하던 고향 교회에서 24세에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 안수받기 1년 전에 잉글랜드 영주의 외동딸 캐롤라인과 결혼합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해 8월에 런던 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부인과 함께 선교사로서 중국 상해에 도착합니다. 그 이듬해 아내가 첫 아이를 출산하다가 사망합니다. 토마스 선교사도 이미 중국에 나와 있던 선임 선교사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습니다. 사역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선교본부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1865년 1-8월까지 청나라 해상세관의 통역관을 하다가 거기서 조선 상인 두 사람을 만납니다. 그때 그는 조선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조선에는 지금 5만 명 가량의 천주교 신자가 있고, 11명의 외국 사제가 있고, 천주교의 기도문은 있지만 아직 한글로 된 성경은 없고, 개신 교회도 없다는 정보를 듣습니다. 이런 정보는 그를 흥분하게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이야말로 자신이 꼭 가야할 선교지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당장 그해 9월에 세관 통역직을 버리고,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지원을 받아 선교지 답사차 조선을 방문합니다. 1865년 9월 13일이었습니다. 선교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백령도 근처의 작은 섬에 도착해 두 달 반 가량 조선말을 익히고, 가지고 온 한문 성경 200권을 배포하고 돌아갑니다. 그런 후 그는 런던 선교회로부터 정식 파송을 받아 배편을 찾았는데, 그때 만난 배가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습니다. 1866년 8월 9일에 토마스 선교사는 제2차 조선 선교여행길에 오릅니다. 제너럴 셔먼호는 중국 출항 1주일 만에 대동강 입구 용강 주영포에 도착해서 평양 쪽으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8월 27일에 평양 한사정에 정박하고 조선과의 통상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외국인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나쁜 때였습니다. 결국 무력충돌이 발생합니다. 9월 2일에는 제너럴 셔먼호가 양각도 모래톱에 좌초하고 맙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불 타는 셔먼호 갑판 위에서 중국에서 가져온 성경을 강가로 내던지고, 마지막 한 권은 가슴에 품고 뛰어내리는데, 결국 그는 조선군에게 생포되고 맙니다. 격분한 조선 군관들이 승선자 모두를 살해하고 토마스 선교사도 처단합니다. 당시 형집행관이 박춘권이었습니다. 박춘권이 칼을 뽑자 토마스 선교사는 급히 자기 품에서 성경책을 꺼내 그에게 건넵니다. 그런 후  토마스는 마지막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박춘권이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칩니다. 영국인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 땅을 제대로 밟아 보지 못한 채 꽃다운 27세의 나이로 순교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성경을 받고 목을 친 박춘권은 그후 33년 후에 1889년에 평양교회의 영수(장로)가 되었습니다. 토마스가 던진 성경을 받은 장사포의 홍신길은 후에 서가교회를 설립했고, 석호정 만경대에서 성경을 받은 최치량은 평양교회를 설립했고, 받은 성경을 벽지로 바른 영문 주사 박영식은 후에 자기 집을 널다리교회의 예배처로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평양은 해방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릴만큼 한국 기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한국 최초의 신학교도 평양신학교, 초기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도 그 평양신학교 출신입니다. 우리 교단의 장로회신학대학도 그 평양신학교의 후신입니다. 그러니까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의 피가 흐르는 대동강물을 마신 사람들이 그리 오래지 않아 기독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1866년 1월 12일에 토마스 선교사가 런던 선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바다 건너 조선에 선교사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꼭 저를 그리고 보내주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대동강변에서 토마스의 목을 친 박춘권의 진술입니다. ‘내가 여러 서양 사람을 죽이는 중에 한 사람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내가 그의 목을 베려하자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눈을 감고 무삼 말을 한참 한 후에 붉은 베를 입힌 책을 가지고 웃으며 나에게 받으라고 권했다. 내가 그를 죽이는 사람이기는 하였으나 그 책은 받지 않을 수 없어 받아 집으로 가져왔노라.’ 그가 그 책을 읽고 장로가 된 겁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한국 교회는 이렇게 구교가 신교의 첫 순교자가 토마스입니다. 토마스의 순교의 피 위에 한국 기독교가 세워졌습니다. 토마스라는 이름은 사도의 이름입니다. 12제자 가운데 하나인 도마입니다. 토마스의 우리말 번역이 도마입니다. 도마는 의심이 많은 제자였습니다. 한 번은 도마가 없을 때 주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셨는데, 도마는 자기가 주님 손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창자국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도마가 있을 때 나타나신 주님이 도마에게 손가락과 손을 넣어보라고 합니다. 그때 도마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주님은 나를 보고 믿는 것보다 안 보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합니다. 도마는 태국의 파티야와 인도 남동부 코르만델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인도에서 순교합니다. 인도 남부지방에는 도마(토마스)와 관련된 성지가 많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첫 순교자는 스데반입니다. 12사도 가운데 첫 순교자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그 대목은 사도행전 12장 1절 이하에 나옵니다.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이 사건 후에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로 갑니다. 로마에는 이미 바울의 영향으로 교회가 조직되어 성장하고 있었고, 로마 황제들의 기독교 박해가 갈수록 심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외경 베드로행전에 따르면, 주후 67년 네로의 극심한 박해 때 로마 교회 신자들의 간곡한 권고를 받아 베드로는 은밀히 로마를 탈출하는데, 로마 외곽에서 로마 시가지를 향해 급히 가고 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베드로 자신은 로마를 등지고 가고 있는데, 주님은 로마를 향해 급하게 들어가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러 로마로 간다고 대답하십니다. 베드로는 통곡을 하며 그 길로 로마로 가서 십자가를 지겠다고 합니다. 그는 자진해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립니다. 폴란드 소설가 센키에비치가 노벨상을 받은 작품인 <쿠오바디스>와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도 베드로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릴 수 있단 말인가. 나를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십시오. 


오늘 본문이 베드로의 그런 최후를 미리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바티칸 언덕에 묻혔고, 그후 가톨릭 교회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좇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역사상 가장 큰 교회인 베드로 성당을 짓고, 그를 초대 교황으로 추대합니다. 베드로 성당과 베드로 광장을 교황청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사실 주님이 하신 말씀인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은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 곧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말씀입니다. 


초대 교회의 위대한 순교자들과 한국 교회 초기의 순교자들을 기억합시다. 그들의 믿음을 계승합시다. 다음 세대에도 순교자들의 믿음을 전수합시다. 순교 신앙으로 늘 승리합시다. 지금 겪는 코로나19도 극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