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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설교본문 창 2:15-17, 3:1-7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6-07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607m.mp3



20200607m

창 2:15-17, 3: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창 2:15-17, 개정)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3:1-7, 개정)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말씀의 주제는 선악과입니다. 선악과에 대해서 의문이나 할 말이 많습니다. 살인이 아니라 과일 하나 따 먹은 것 가지고 사람을 에덴에서 쫓아낸 것은 너무 한 것이 아닌가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토록 위험한 것이었다면 동산 가장자리나 눈에 안 띄는 곳에 둘 것이지 왜 동산 중앙에 두셨느냐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굳이 선악과를 만들어 인간을 불행하게 하신 의도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마저도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 있다면, 선악과 사건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위험한 과일이면 주변에 철조망이라도 쳐두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선악과에 관한 한 사람들은 끝까지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싶어 합니다. 


우선 죄는 그게 살인죄든 과일 하나를 범한 죄든 치명적입니다. 죄는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겁니다. 독은 많이 먹어야 죽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서 죄보다 더 무서운 독은 없습니다. 죄의 독은 곧 뱀의 독입니다. 죄의 독은 그 양이 비록 과일 하나에 불과하다 해도 온 우주와 전 인유를 저주와 죽음에 빠트릴 수 있을 만큼 치명적입니다. 선악과가 동산 가장자리가 아니라 동산 중앙에 있었다는 것은 시험이나 유혹이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다는 뜻입니다. 유혹과 시험은 우리가 오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그 유혹과 시험을 피하지 못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이 아예 선악과를 범하지 못하도록 창조할 수도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로봇나 기계로 만들지 않고 인격적 주체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판단과 선택과 결단에 맡기십니다. 그 선택과 결단에 대해 책임을 물으십니다. 결산과 심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이란 것을 기계적이거나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예배할 때 몇 째 줄에 앉을 것인지,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얼마의 헌금을 할 것인지를 하나님은 예정하시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기계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입력한 것대로 작동하는 기계 말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보다 큰 틀을 말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그 큰 틀 안에서 주체적 선택과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총론이라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각론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을 배신하고 대적할 수 있는 자유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타락할 자유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사실을 다 아시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때문에 우리가 타락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미리 정하셨지만, 그 운명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고 결정하는지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선택과 결단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우리 자신이 져야 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2장 17절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이 과연 죽었습니까?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천수를 누렸습니다. 창세가 5장 4절 이하를 보면 아담은 930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면 선악과를 먹는 날에 반드시 죽는다는 경고는 무엇입니까? 겁주느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우선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육체적 죽음을 잠잔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표현할까요? 누구나 훗날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죽음에서 깨어나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죽음은 진정한 의미에서 죽음이라고 보지 않고 잠잔다고 한 것입니다. 본문도 육체적 죽음이 아닌 영적 죽음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영혼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영혼은 불멸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성경은 영적 죽음을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경고가 바로 정녕 죽는다 입니다. 창세기 3장 8절입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기에 중요한 동사 2개는 피했다와 숨었다 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고 피해 숨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파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찾고 부르시는데,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고 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바로 영적 죽음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것이니까 진정한 죽음입니다. 


일찍이 선악과를 범하고 달아나기 시작한 인류는 오늘날까지도 도피행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어디서부터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지조차도 모릅니다. 너무 멀리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까마득하고 낯설어졌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졌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 자명해졌습니다. 요즘은 당신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글쎄요 하면서 원숭이에게서 왔다고 들었다고 답합니다. 이것이 완벽한 영적 죽음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생, 이것이 영적 죽음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망가뜨려 무조건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범함 사건은 인간의 지적 파국도 불렀습니다. 3장 7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동안 그들은 벗고 있었지만 벗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벗었다와 입었다는 것은 상대적 개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한 번도 입은 적이 없기에 벗은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범하고 나자 엉뚱하게도 자신들이 벗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죄가 가져다준 지적 능력의 왜곡입니다. 죄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 모르면 행복하고 안전한 악한 사실들, 악한 세계에 눈을 뜨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미혹 당하게 하고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하체를 가렸습니다. 이것 모두는 인식의 왜곡입니다. 죄가 알 필요가 없는 것을 알게 하고, 하지 않아도 좋을 엉뚱한 짓을 하게 만듭니다. 인류가 마약을 만들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파괴했습니까? 그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빠질 일이 없는데 그 맛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못 빠져나옵니다. 아는 게 문제가 된 경우입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로 하여금 악한 방법, 악한 정보, 악한 사람, 악한 세계를 알게 만듭니다. 기어이 마귀는 우리를 멸망하게 만듭니다. 선악과를 범해서 지적 능력의 타락이 가져다 준 쓴 열매입니다. 


다음은 인간관계의 파탄입니다. 창세기 3장 11절 하반절입니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라고 답했습니다. 여자뿐 아니라 그를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도 책임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데리고 아담에게 오자, 아담은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고 하며 좋아했는데, 범죄한 후에는 여자 탓이라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둘 사이에 파국이 온 것입니다. 성경은 그 주범을 죄라고 합니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 사이에는 살인까지 벌어집니다. 이것은 죄가 가져다 준 인간관계의 파국입니다. 


자연환경의 파국도 초래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 조건에서 살 수 있도록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실 만큼 완벽히 자연환경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이때부터 자연과 생태환경의 운명이 인간에게 이첩되었습니다. 자연환경은 인간 삶의 요람이니 잘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인간과 자연은 공동 운명체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죄에 빠지면 자연도 악해지고 독해집니다. 그렇게 인간과 자연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8절입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인간이 선악과를 범하기 전에는 땅에 가시덤불이나 엉겅퀴, 독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돌연변이가 발생합니다. 졸지에 자연계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살벌한 세계로 재편되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자연과 환경의 반격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간은 하나님의 위임을 받들어 자연을 관리하기는커녕 무자비한 폭군으로 살아왔습니다. 온갖 기상이변과 자연재해,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 같은 치명적 감염병은 환경파괴가 부른 재앙입니다. 우리의 죄악이 초래한 쓴 열매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지금도 신음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땅의 저주가 인간의 타락으로 초래했다면, 그 회복도 인간 회복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범하고 하나님을 피해 달아난 인간들이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 집으로 복귀해야, 자연도 그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이 인간의 회복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인간이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 자연의 회복이나 치유는 없습니다. 코로나19도 근본적으로 사람이 바뀌어야 소멸될 것입니다. 사람이 안 바뀌면 더 치명적인 변종이 나타날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 선악과를 범한 원초의 죄악은 치명적 영적 죽음을 초래했고, 지적 파탄, 인간관계의 파국, 환경의 파탄 등 총체적인 죽음의 문화를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찍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절대 범해서는 안 될 선악과가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내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 같아도 범해서는 안 될 선악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선악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유혹을 해도 절대 따 먹지 마십시오. 마귀에게 뱀에게 넘어가 그것을 범하지 마십시다. 그래서 파국이나 파멸, 죽음이 아니라 행복과 복을 누리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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