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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죄는 삼사 대 은혜는 천 대
설교본문 출 20:3-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5-03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503m.mp3

20200503m

출 20:3-6

죄는 삼사 대 은혜는 천 대


(출 20:3-6, 개정)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본문 5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것은 죄는 삼사 대까지 갚고, 은혜는 천 대까지 베푸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 그저 성경에 나오는 말씀 정도로 생각하고 실감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유전은 부모의 형질이나 특성이 자손에게 대물림 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부모를 닮고, 후손은 조상을 닮습니다. 그런데 휴전은 얼굴이나 체형 같은 생물학적 유전뿐만 아니라 지능이나 재능, 성격, 정서, 인간성, 도덕성 같은 정신적 유전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죄와 은혜, 축복 같은 영적 대물림도 있습니다. 병원에서 건강검진 받을 때 문진표를 작성합니다. 가족 가운데 질환자를 파악하는 이유는 유전적 질환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도 저주도 불행도 은혜와 축복도 그렇습니다. 모두 다 가족력이요 가계력입니다. 이것은 당대로 끝나지 않고 후손에게 대물림 됩니다.


사실 생물학적이거나 정신적 유전보다 영적 유전이 훨씬 더 심각하고 무섭습니다. 여러분, 마치 잠이나 꿈 같은 잠재의식 현상이 실은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암시이듯이 생물학적 유전과 정신적 유전이야말로 영적 유전의 실제를 깨닫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라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지금도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나쁜 내력 때문에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술로 패가망신 했는데 아들도 아버지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학습된 탓도 있지만, 그 이전에 일종의 유전현상입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했는데 그토록 증오하던 도박을 자기가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전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아브라함이 미인이던 아내 사라 때문에 신변에 위협을 느끼자 아내를 누이로 속여 위기를 모면합니다. 후에 그의 아들 이삭도 아내 리브가의 미모 때문에 곤경에 처하자 아버지와 똑같이 처신합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도 보십시오. 염소를 잡아 자기가 사냥한 들짐승의 고기라며 별미를 만들고, 그 염소가죽으로 몸에 두르고 형 에서를 가장해 나이 많아 앞을 보지 못하던 아비에게 장자에게 내리던 축복기도를 가로챕니다. 야곱 역시도 후에 아들들에게 똑같이 당합니다. 아들들이 요셉을 애굽 상인에게 팔아넘기고 염소를 잡아서 요셉의 겉옷에 피를 묻힌 다음 아버지에게 보이며 들짐승이 요셉을 해쳤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것은 다 우연을 가장한 거짓의 유전이고 죄의 대물림이자 악순환입니다. 


우리는 생물학적이거나 정신적 유전에 대해서는 염려하면서도 영적 유전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부모의 삶과 신앙이 후손의 삶에 얼마나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중요한 변수가 되는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부모의 죄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아담의 죄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가 범한 죄 때문에 내가 벌을 받아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부모가 당뇨병이어서 자식도 당뇨병이듯이 아담이 죄를 지었기에 나도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됩니다. 아비가 죄를 지었기에 그 자손이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유전의 질서이고 대물림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은 경건한 가계를 만들지만, 경건치 못한 사람은 저주받은 가계를 대물림합니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섭습니까. 이것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헤롯의 가문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탄생하실 때 유대의 통치자가 헤롯대왕입니다. 그는 막 태어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두 살 아래의 아이를 죽인 포악무도한 왕입니다. 그 다음이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자신의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았고, 세례요한이 그것을 꾸짖자 세례요한의 목을 잘라 쟁반에 담아 선물한 아비보다 훨씬 잔혹한 왕입니다. 그 다음이 헤롯 아그립바입니다. 그는 야고보를 살해하고 베드로마저 죽이려고 감옥에 가둔 이입니다. 그 다음이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 바울을 체포해 신문하다가 바울에게 로마 시민권이 있음을 확인한 후 황제에게 바울을 보낸 왕입니다. 헤롯 가문은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서 끝나고 맙니다. 헤롯 아그립바 2세는 로마에 의해 퇴위된 뒤 베스비우스산으로 귀양 갔다가 화산 폭발로 거기서 끝나고 맙니다. 


모든 불행이나 아픔이 내 당대에서 끝나고 자식 세대에서는 달라지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결코 거저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죄와 저주의 대물림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노아의 아들 함과 그 후손 가나안 족속의 경우를 보십시오. 가나안은 지명이 아니라 노아 손자의 이름입니다. 팔레스틴의 옛 이름이 가나안입니다. 함과 가나안 족속이 왜 저주를 받았습니까? 창세기 9장을 보면,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자는 아비 노아를 둘째 아들 함이 비난하고 흉을 봤기 때문입니다. 첫째와 셋째 아들은 뒷걸음질로 아비의 치부를 가려주었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흉을 보며 다녔습니다. 잠에서 깬 노아가 함의 행실을 알고 그가 저주를 받아 형제들의 종의 종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잘못은 함이 했는데 저주는 함뿐만 아니라 가나안 족속에게까지 선언됩니다. 훗날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가나안의 모든 이들, 어린아이나 짐승들까지도 멸절하라고 명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저주받은 함과 가나안 족속의 최후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람이 있습니다. 오직 한 사람, 그 저주에서 공식적으로 열외된 사람이 있습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입니다. 라합은 가나안 족속의 창녀였습니다. 그녀는 어린아이와 짐승들까지도 다 죽이라는 명령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습니다. 그녀는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과 결혼해 오벳, 오벳은 이새, 이새는 다윗을 낳았으며, 그 가계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습니다. 저주가 아니라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대물림입니까? 그렇다면 라합은 그 질긴 저주의 대물림을 끊고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파격적인 은혜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나를 사랑하는 자는 천 대까지 은혜를 누린다는 말씀대로, 그녀의 믿음에 있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이 모든 저주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라합은 비록 저주받은 가나안 족속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구원의 반열에 들었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조상까지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주는 항상 죄의 결과입니다. 죄의 유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으면 저주와 불행의 악순환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습니다. 저주의 유전질서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이전에는 다 그랬습니다. 온갖 더러운 귀신, 온갖 저주와 재앙이 우리의 가계와 가정을 지배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는 함부로 이사도 못했습니다. 반드시 귀신에게 가서 날짜를 받아와야 이사를 가든지 결혼을 하든지 사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일이 점쟁이에게서 날을 받아 와야 모든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그 모든 저주에서 놓여났습니다. 우리의 운명과 가계에서 모든 귀신과 저주의 기운이 다 물러갔습니다. 집안을 말끔히 청소하고 대대로 유전되던 악한 저주를 다 믿음으로 끊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런데 거기까지는 좋은데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운명과 가정과 가계를 잘 지키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 다시 마귀와 저주가 우리의 가계를 넘보거나 해코지 못 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중요한 책무이자 과제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 이하입니다.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분명히 조상 대대로 진치고 있던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더는 그 가계에 귀신은 없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소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귀신을 보십시오. 돌아다니다가 혹시나 하며 그 집에 와 봅니다. 그런데 그 집이 청소된 채로 텅 비어 있습니다. 우리가 늘 실패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분명히 저주의 고리를 끊고, 마귀를 완벽하게 쫓아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마귀에게 농락당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씻었으면 내 몸을 비워둘 게 아니라 성령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내 몸과 심령이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령의 전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나와 내 가정을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청소만 하고, 귀신만 쫓아냈지 내 심령을 텅 빈 채 방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귀에게 다시 당하고 맙니다. 그런 집을 보면 악령이 당장 가서 더 혹독한 귀신 일곱을 데려와 그 집을 점령하여 이전보다 그 형편이 더 비참해진다고 합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마치시며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이 악한 세대가 그렇게 되리라” 마지막 시대의 사람들이 이런 위기에 빠진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조상의 망령된 행실과 저주로부터 자유하기를 바라신다면, 진심으로 여러분의 자손이 잘 되고 천 대까지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면, 귀신들로부터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를 지키기를 원하신다면,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지 마시고 주님을 믿으십시오. 소제된 집을 방치하지 마시고 성령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이것이 유일한 비책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자손이 천 대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사는 절대적 비결임을 깨달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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