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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힐링을 위하여
설교본문 막 16:5-8, 요 21:3-17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4-19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419m.mp3

20200419m

막 16:5-8, 요 21:3-17

힐링을 위하여


(막 16:5-8, 개정)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요 21:3-17, 개정)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안식 후 첫날 새벽, 향품을 가지고 주님의 무덤을 찾아간 몇몇 여인에게 청년의 모습을 한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마가복음 16장 6절 이하입니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마태복음 28장 6절 이하도 그렇습니다. “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렇다면 주님이 왜 부활하신 예루살렘이 아닌 먼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충격에 빠진 제자들이 아직 숨어 있고, 주님을 따르던 여인들도 큰 슬픔에 빠져 머물고 있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다시 보자고 하셨을까요? 한 마디로 치유를 위해서였습니다. 상처받은 영혼들의 힐링을 위해서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루살렘은 어디까지나 대결의 장소이지 힐링의 장소는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로마정권과 유대 정부 지도자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야합해서 주님을 십자가에 매단 곳입니다. 아직 주님의 피가 마르지도 않은 곳입니다. 거짓이 진리를 누르고, 증오가 사랑을 유린하고, 죽음이 삶을 조롱한 곳입니다. 만일 주님이 예루살렘 어딘가에서 만나자고 하셨다면, 분노에 차 있던 제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제자들은 드디어 복수를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대결의 장소, 분노와 투쟁의 장소가 아닌 먼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것입니다. 갈릴리는 어떤 곳입니까? 제자들의 고향이자 3년 전 만난 첫 사랑의 장소입니다. 거기는 대립과 갈등, 죽음 이전의 장소입니다. 사랑과 복종과 신뢰가 지배하던 추억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것입니다. 거기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처음 사랑과 초심을 회복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충격이 너무도 크고 좌절을 겪어서 심신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어떤 부부가 그들이 처음 만나서 프로포즈를 했던 첫 사랑의 장소를 찾아가서 서로 화해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듯이, 주님도 굳이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으로 가서 제자들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자들이 낙향해서 옛 직업인 어부로 되돌아갔다는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제자들이 주님을 뵙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것입니까? 요한복음에 의하면 제자들은 이미 부활하신 주님을 최소 2번을 만난 후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 이하입니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과의 첫 번째 해후입니다. 20장 26절 이하입니다.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것이 두 번째 만남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물고기 잡으러 옛 직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원래 제자들은 더 이상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며 주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다시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되돌아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에 대한 실망이나 회의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 때문에 낙향한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자신들의 실패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더 심했습니다. 어지간히 큰소리를 쳤어야죠. 그는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안 버리고, 옥에도 같이 가고, 죽는 데까지도 가겠다고 했습니다만, 그는 결국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여종 앞에서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그 상처가 쉽게 아물었겠습니까?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진 것입니다. 자기 같은 사람은 갈릴리 촌구석에서 물고기나 잡는 게 맞다고 생각하여 낙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갈릴리에 나가봤지만 고기 잡는 것마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밤새 그물을 내렸으나 소득이 없고, 새벽녘에 철수하려는데 주님이 그 바닷가에 나타나신 겁니다. 제자들은 기억도 못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심한 좌절과 트라우마 때문에 낙향했지만, 주님은 그들을 치유하시려고 갈릴리로 오셨습니다. 주님이 그 새벽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도저히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잡았다고 합니다. 


이 장면이 왠지 낯익지 않으십니까? 제자들이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도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소득이 없었는데, 주님이 그때도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두 배에 가득찰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느닷없이 베드로가 엎드려 ‘나는 죄인이니 나를 떠나소서’라고 했고, 주님은 그들을 사람을 낚는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그 3년 전과 같은 설정으로 초심을 일깨우고 계십니다. 


본문 15절 이하에 보면 주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장면입니다. 주님은 처음 사랑을 회복시키려고 베드로에게 세 번을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을 보면, 주님이 베드로를 그냥 사랑하느냐고 물으시지 않고,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사람들’에 각주가 붙어 있습니다. 각주는 ‘또는 이것들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헬라어는 이 사람들보다 또는 이것들보다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베드로의 동료들이나 형제들입니다. 이것들이라고 하면, 그물 가득 끌어올린 물고기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주님을 가장 사랑해주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내 아내, 남편, 부모, 자식, 친구, 애인보다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의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가 많은 물고기보다, 많은 소유보다, 많은 돈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이 사람들보다, 이것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활하셔서 먼 갈릴리까지 나를 찾아오셔서 진지하게 묻고 계신 이 말씀, 그것도 세 번씩이나 확인하시는 주님의 물음에 답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 그러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응답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이 다시 베드로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처음 사랑뿐 아니라 첫 소명도 새롭게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결혼한 지 30년도 넘은 부부가 서로 쳐다보며 눈물을 글썽인다면 그것은 이상합니다만, 우리가 주님에 대한 사랑만큼은 한결같아야 합니다. 늘 첫 사랑처럼 설레고 두근거리고 행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우리는 갈수록 데면데면하고 감동도 없고 무덤덤합니다. 바닥까지 곤두박질했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처음 열정과 소명을 되찾읍시다. 이것을 주님이 바라십니다. 우리가 각자의 갈릴리, 자기만의 첫 사랑의 장소에서 다시 한 번 부활하신 주님을 뜨거운 감격으로 뵙고, 트라우마도 치유받고, 가슴을 다시 덮힙시다. 그 옛날 제자들처럼 우리 모두 새 출발하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