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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안식 후 첫날 새벽
설교본문 눅 24:1-1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4-12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200412m.mp3

20200412m

눅 24:1-12

안식 후 첫날 새벽


(눅 24:1-12, 개정)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본문 1절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 새벽이라고 합니다. 안식 후 첫날이면, 안식일이 토요일이니까 일요일입니다. 주님이 안식 후 첫날인 바로 오늘,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일요일이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 주님의 날입니다. 지금도 유대교나 안식교, 심지어는 안상홍의 하나님 교회는 안식일을 고수합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관련이 있는 성일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쉬셨기에 그의 택하신 백성들도 이레가 되는 날에는 쉬면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념하는 성일이 바로 토요일인 안식일입니다. 그러면 요즘 우리가 성일로 지키는 주일은 창조사역이 아니라 주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신 구원과 관련된 성일입니다. 주님이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창조와 관련된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을 성일로 지키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당신의 독생자인 주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예배로써 영광을 돌립니다. 구약 시대 때는 당연히 창조와 관련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게 옳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인 복음시대에는 더는 안식일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주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이미 사도시대 때부터 기독교의 성일이 안식일에서 주일로 이행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안식일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율법적이고 비복음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안식일을 성수한다, 주일을 성수한다고 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과 주일을 성수하는 것입니까? 그야말로 안식하는 겁니다. 노동을 금하고 쉬는 것입니다. 옛날 하나님이 엿새 동안 우주를 창조하고 이레째 쉬신 것처럼 우리도 쉬는 게 안식일 성수요 주일성수입니다. 하나님이 쉬셨기에 우리도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맹목적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쉬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우리 삶으로, 온몸으로 실천적으로 고백하기 위해섭니다. 실제 쉬면서 하나님에 창조사역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레째 쉬셨습니까?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하셔서 피곤해서 쉬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엿새 동안 일하심으로써 이 세상을 완벽히 창조하셨기에 더는 하실 일이 없어서 쉬신 겁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더는 하실 일이 없을 만큼 이 세상을 완벽히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우리도 모든 것에서 손을 떼고 쉬면서 하나님의 완전하신 창조사역에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완전했습니다. 더는 사역이 필요없음을 우리의 삶으로 고백하는 것, 이것이 안식일 성수입니다. 


주일성수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이 십자가와 부활로써 이룩하신 우리의 구원이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어떤 노력이나 노동도 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쉼으로써 우리의 고백을 실천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이든 주일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쉬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이루어졌다면 그것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며칠 만에 일어난 사건입니까? 주님은 금요일 오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니 사흘 만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있었는데, 주님의 영혼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인류의 모든 죄악을 홀로 지고,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하고 운명하신 주님의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가셨을까요? 천국입니까? 


당시 주님은 의인으로 돌아가셨습니까? 아니면 죄인으로 돌아가셨습니까? 주님은 천하에 둘도 없는 죄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죄인이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괴로워하셨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시며 땀방울을 핏방울처럼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그렇게 두렵고 놀라워하며 슬퍼하고,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십자가 고통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십자가 고통이 최악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이 죄인으로 죽는 한 절대 지옥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지옥, 의인은 천국이라는 게 하나님의 공의의 철칙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 모든 죄를 홀로 지시고 죽으셨기에 당연히 지옥으로 가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지옥의 형벌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교리의 가장 불편한 진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도 중요하기에 불편해도 한 번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진리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운명하신 후 사흘 동안 육신과 영혼이 같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민간신앙처럼 사흘 간 주님의 영혼이 구천을 떠돈 것도 아닙니다. 죄인이니까 지옥으로 가셨습니다. 차마 주님이 지옥가셨다고 믿거나 고백은 못하시겠습니까? 용납이 안 되십니까? 너무 불경스럽고 신성모독하는 것 같아서 그것만큼은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믿음 좋은 게 아니라 도리어 주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훗날 죽어서 여러분이 직접 지옥을 가셔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님이 죽어 내 죗값을 치르기 위해 내 대신 지옥에 가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사람만 지옥의 형벌이 면제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 이하입니다.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주님이 영으로 옥에 가셨다고 합니다. 옥이라는 말은 그리스말로 <플라카이>로서 감옥이란 뜻입니다. 19절은 해석상 논란을 빚어왔고, 난해한 말씀 중 하나입니다. 감옥이란 말이 천국이나 연옥을 뜻할까요? 지옥을 가리킵니다. 베드로 사도도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 사흘간 지옥에 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도 마찬가집니다. 사도신경은 이미 2세기부터 교회가 사용한 신앙고백인데, 주후 750년에 교회가 새삼 공인했습니다. 그때 채택한 사도신경 원본을 라틴말로 <포르마 레쳅타>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말 사도신경에는 한 문장이 빠져있습니다. 우리 사도신경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음에 한 문장이 빠졌습니다. 원본에는 장사되어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이 대목을 빼고 고백했습니다. 차마 주님이 지옥에 가셨다고는 고백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대목은 대단히 중요한 기독교 구원론의 백미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이 그때 지옥을 가지 않으셨다면 필히 우리가 가야 할 곳입니다. 그런데 이미 주님이 우리 대신 가셨기에 우리는 오직 천국 갈 일만 남은 겁니다. 이것이 대속의 진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진수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그가 지옥에 가심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가톨릭은 이 대목을 지옥이란 말 대신에 저승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래도 개신교보다는 낫습니다. 아무튼 원래는 있었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빼버린 주님이 지옥에 가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꼭 기억하십시오.


당시 주님이 지옥에 가셔서 얼마동안 계셨느냐면 사흘간입니다. 우리 죗값을 갚기 위해 가신 것이라면 왜 고작 삼일입니까? 본문 7절에도 제3일이라고 합니다. 왜 사흘일까요? 그것은 불과 사흘간의 지옥살이로도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죗값을 갚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틀은 부족하고 나흘은 불필요했기 때문에 정확히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괜히 사흘이 아닙니다. 사흘이 꼭 필요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자신의 죄 때문에 지옥에 갔다면 영원히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죗값을 다 갚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흘이면 됩니다. 그만큼 주님의 몸값이 비쌉니다. 하나님의 독자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피는 보혈입니다. 주님께는 사흘이면 족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지옥행,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통해 우리의 죄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셨음을 의심치 말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더 이상 지옥은 없습니다. 이 사실을 확신합시다. 주님의 부활이야 말로 우리 운명과 부활의 가장 확실한 보증이자 담보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의 성호를 찬양하며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부디 우리 대신 저주받아 십자가에 달리시고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의 영생의 복이 여러분께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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