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설교제목 비운의 무화과나무
설교본문 막 11:12-2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4-05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405m.mp3

20200405m

11:12-24

비운의 무화과나무

 

(11:12-24, 개정)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오늘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한 날입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이 거기로 쏟아져 나와 승리와 평화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 하며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기에, 이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열렬히 주님을 환영하며 받긴 예루살렘 사람들이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목요일에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대신 유명한 강도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주님이 금요일 오전 9, 유대 시간으로는 제3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6시간 고통하시다가 오후 3, 유대 시간으로 제9시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난주간 금요일을 성 금요일이라고 명명합니다. 주님이 운명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오늘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고난주간 월요일 아침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오늘 수많은 사람의 환영 속에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저녁에는 성 밖 베다니 나사로 집에서 주무십니다. 그런 후 고난주간 월요일 아침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바로 그때 벌어진 사건이 본문의 무화과나무 저주사건입니다.

 

주님이 월요일 아침 일찍 성으로 들어가다가 시장끼를 느끼십니다. 나사로의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길가 한 무화과나무에 다가가셔서 열매를 찾았으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잎사귀는 무성해서 그럴 듯 했는데 막상 다가가보니 어디에도 열매가 없었습니다. 원래 길가의 무화과는 나그네들, 순례자들을 위한 겁니다. 율법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예루살렘 가두의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던 겁니다. 실망하신 주님이 이렇게 하십니다. 14절입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제자들은 주님의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 후 이튿날 아침, 화요일 아침에 그곳을 지나다 봤더니 그 나무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20절 이하입니다.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사실 우리가 이 사건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선 그동안 주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보십시오. 모두 살리고, 고치고, 회복시키고, 구원하신 것들입니다. 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희망적인 이적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사건은 멀쩡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해 그 뿌리까지 말라죽게 한 경우입니다. 아무리 미물이지만 살아 있는 나무를 저주해서 죽인다는 것은 평소 주님의 정서나 성품과 맞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의 필요 때문에 기적을 행한 적은 없습니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고도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사건은 당신께서 시장해서 열매를 찾다가 열매가 없으니 저주한 사건입니다. 더 황당한 것도 있습니다. 13절 하반절입니다.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아직 계절적으로 무화과가 달릴 시기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습니까. 주님이 제 철도 아닌 무화과나무에게서 열매를 찾으셨고, 그럼에도 그 나무를 저주해 뿌리까지 마르게 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옳을까요?

 

설마 주님이 너무 배가 고파 이성을 잃었거나, 무화과 철을 잘못 아시고 실수한 것은 아니겠지요.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주님이 시장해서 우발적으로 벌인 헤프닝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의도된 퍼포먼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꿎은 무화과나무를 희생양 삼아 뭔가 전할 메시지가 있었기에 고의적으로 연출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어떤 필요와 메시지가 있으셨을까요?

 

이 사건에는 열매는 하나도 없으면서도 잎사귀는 무성했던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분노와 비판과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그야말로 잎사귀뿐이었습니다. 잎사귀로 치장만 했지 어디에도 열매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예루살렘 가두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최후의 경종을 울리신 것입니다. 겉만 번지르한 그들에게 실물로, 입체적으로 교훈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하필 왜 무화과나무입니까?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언제나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를 희생양 삼으신 것입니다.

 

당시 주님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찾으신 열매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예배의 열매입니다. 15절을 보면, 주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다음 곧장 성전으로 들어가십니다. 거기서 돈 바꾸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비둘기며 돈은 백성들이 성전에서 예배할 때 바치던 제물과 예물, 헌물들이었습니다. 외국돈을 유대 돈으로 바꾸어 하나님 성전에 헌금을 바친 겁니다. 주님이 그것들을 다 몰아내고 상을 둘러엎었다는 것은 당시 성전의 예배가 타락하고 세속화되어 모든 것이 장삿속으로 변질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성전은 크고 더없이 화려했고 예배는 거창했으나 주님이 보실 때 그것들은 무성한 잎사귀만 있을 뿐 정작 열매는 없는 모습입니다. 오죽하면 주님이 성전을 보고 강도의 소굴이라고 하셨겠습니까? 주님이 기대하는 예배는 돈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내 몸과 삶, 내 존재를 바치는 제사입니다. 그것이 산 제사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영적 제사입니다. 짐승과 돈만 바치는 제사는 죽은 제사입니다. 요즘도 우리가 헌금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돈을 바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내 존재와 삶, 내 믿음을 담아 바치는 것, 주님에 대한 내 사람을 담아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예배요 주님이 바라는 참된 헌상입니다.

 

그렇다면 왜 반드시 돈입니까? 왜 우리의 존재와 믿음을 돈에 담아 바칩니까?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고,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돈을 가장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은 오로지 양과 염소와 비둘기와 돈만 바쳤지 거기에 자신의 믿음과 마음을 담을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보실 때 그들의 예배는 언제나 잎사귀뿐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자기 존재를 바쳐야 산 제사인데, 죽은 짐승의 고기만 바쳤기에 다 죽은 제사였습니다. 여러분,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예배는 종교 의식이 아니라 내 존재를 헌상하는 결단입니다. 잎사귀가 아니라 열매를 바치는 행위가 예배입니다. 주님은 결코 잎사귀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보다 진실하고 정직한 예배의 열매를 맺어야 주님이 기뻐하시고, 그 예배를 흠향하십니다.

 

다음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22절 이하입니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당시 예루살렘 사람에게는 참된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체, 경건한 체 하는 외식과 위선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새삼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고,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질 수 있는 믿음의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불도저나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써만 우리 앞에 놓인 저 크고작은 무수한 산들을 바다에 던질 수 있습니다. 설마 내 앞에는 아무런 산도 없다는 분들은 안 계시지요?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올해도 우리 앞에 놓인 무수한 산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으로 저 산들을 다 들어 바다에 던지겠습니까? 명심합시다. 믿음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믿음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부디 무성하고 요란하고 그럴 듯한 잎사귀 말고 오직 참된 믿음의 열매를 충실히 맺읍시다. 그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 앞에 놓인 산들을 바다에 던집시다. 요한복음 158절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이런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다음은 기도의 열매입니다. 2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형식적이고 외식적이며 중언부언하는 기도 말고, 입으로는 기도하지만 마음으로는 응답될 것을 생각하지 않는 불신앙적 기도 말고, 반드시 믿고 기도하여 진정한 기도생활의 열매를 맺읍시다.

 

당시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했습니다. 시장통에서 손을 들고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시위하며 기도했습니다. 금식할 때도 슬픈 표정을 짓고,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선전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위선이고 외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도조차도 위선적이었던 겁니다. 정말 잎사귀만 무성했지 참된 기도의 열매는 없었습니다.

 

주님이 당부하신 기도를 보십시오. 무엇이든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구하기만 했지 아직 받은 게 아닌데, 이미 받은 줄로 확신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기도요,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고, 종달새 알에서 이미 종달새 소리를 듣는 것이고, 엘리야처럼 이미 세찬 빗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선제적 기도입니다. 받기도 전에 받은 것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믿음이 없습니다. 종달새 알에 아무리 귀를 갖다 대도 종달새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해야 거기에 기도 응답의 풍성한 열매가 보장됩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기도합니다. 놀랍게도 믿음이 아닌 불신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믿기 어렵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것이 실제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실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실수로 응답되면 다행입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처음부터 패배주의로, 불신으로 기도합니다. 이것이 설마 이루어지랴 라는 자세로 기도합니다. 참으로 기도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기도다운 기도를 드려볼 수 있을까요?

 

여러분, 주님은 늘 우리의 열매에 목말라 계십니다. 언제나 우리의 열매에 허기져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늘 실망하십니다. 아무리 기대를 가지고 살펴도 열매가 없고, 그럴 듯해서 기대하며 접근해도 열매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늘 좌절하고 슬퍼하십니다. 부디 주님께 기쁨을 드리고, 보람을 드리고, 열매를 드립시다. 예루살렘 가두의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를 기억합시다. 얼마나 때깔이 곱고 잎사귀가 풍성했습니까? 얼마나 훌륭한 신자처럼 보이고 줄기에 든든히 붙어 있는 가지처럼 보였습니까? 그러나 실은 온통 잎사귀뿐이었지 열매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잎사귀로 더는 치장하지 말고, 잎사귀로 시장하신 주님을 속이지 맙시다. 십자가를 앞두고 죄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면서까지 실물로 우리에게 경고하시고 경계하신 주님의 피맺힌 교훈을 마음 깊이 새깁시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주님의 기대에 아름답게 부응합시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