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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쓴 물을 만나다
설교본문 출 15:22-2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3-15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315m.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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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코로나> 재앙이 여전하여 오늘도 저희가 이렇게 주일예배를 교회가 아닌 가정에서 드립니다.


이 조촐한 가정 제단을 축복하사 이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저희에게는 무한한 위로와 축복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코로나19>가 온통 저희들의 삶의 평온을 깨뜨렸습니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안개처럼 스멀스멀 저희의 생활에 스며들어 모든 걸 바꿔놓고 말았습니다. 낯선이들은 물론이고 서로 잘 아는 이웃이나 성도들끼리도 접촉을 꺼리는 최악의 불신사회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주님, 일찍이 가공할 풍랑 앞에서 두려워하며 안절부절 못하던 제자들을 향해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셨던 그 위로의 음성을 들려주시옵소서.  또 <고요하라, 잠잠하라!>며 풍랑을 제압하셨던 그 권능의 말씀으로 지금 저희를 괴롭히는 이 <코로나> 사태를 조속히 잠재워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만물의 영장임을 자랑했던 인간의 오만과 허영심을 돌아보며 눈에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게 하시옵소서. 


치료받고 있는 확진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하루 속히 회복되게 하시고, 의료진들, 방역 당국자들, 자원 봉사자들, 그리고 꼭 필요한 물품과 정성어린 성금으로 힘을 보태는 모든 국민들에게도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저희들 잠시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영상에 집중할 수 있게 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은혜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저희가 다 교회에 모여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00315m

출 15:22-26

쓴 물을 만나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여러분, 오늘 본문 앞장인 출애굽기 14장의 내용은 홍해 도하입니다. 그런 후 15장 말씀이 이어집니다. 15장은 처음부터 노래로 시작합니다. 1-18까지는 모세의 노래, 19-21절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노래입니다. 그 내용은 홍해 기적에 대한 감사의 노래, 구원의 노래, 기쁨과 승리의 노래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눈앞에는 검붉은 홍해가, 양쪽에는 바위산들입니다. 뒤에는 성난 애굽의 전차군단이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바로가 마지막 장자 재앙에 굴복해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굽을 허용했지만, 막상 그들이 애굽을 떠나자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래서 전차 부대를 풀어 그들을 잡아오라고 한 겁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바다 가운데 극적으로 길을 내시고, 모두가 안전하게 도강하게 하십니다. 대신에 애굽 군대는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수장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4장 27절 이하입니다.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이 극적인 장면을 그 현장에서 지켜봤으니 얼마나 통쾌했겠습니까. 그래서 부른 노래가 15장 1-21절까지 길게 이어지는 기쁨과 감사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절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22절 이하입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너고, 자기들을 뒤쫓던 애굽 군대가 수장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승리의 노래를 부를 때까지는 좋았는데, 그런 지 사흘 만에 물이 없어 극심한 고통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마라에서 샘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그 물이 소태처럼 써서 도저히 마실 수 없었습니다. 염분이 너무 많아 짜다 못해 사약처럼 쓴 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물은 마시면 복통으로 당장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마라는 쓰다는 뜻입니다. 룻기 1장 20절을 보면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이제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합니다. 거기 각주를 보면 나오미는 그 뜻이 희, 기쁨이라 되어 있고, 마라는 괴로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홍해 도하라는 큰 기적과 구원을 체험하고, 나오미의 노래, 즉 기쁨과 희락의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은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나 고통을 당하며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여정이었고, 오늘날 우리의 세상살이입니다. 물론 홍해도, 마라도 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입니다.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홍해 감격을 오래 누리게 하시지 않고 불과 사흘 만에 마라의 쓴물을 만나게 하셨을까요?


지금 여러분이나 주변에 그런 분들 안 계십니까? 한 때는 홍해를 건너고 애굽 군대의 멸망을 지켜보며 잘 나갔는데, 지금은 인생의 쓰디 쓴 고배를 마시고 괴로워하는 분들, 홍해에서 개가를 부른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나 힘들어 하고 괴로워하며 절망하시는 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좋은 날도 있지만,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아니 이 지구촌 모든 나라가 코로나19라는 쓰디 쓴 물을 만나 정말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재앙이 없습니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도 교회가 아니라 각자 집에서 예배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사순절 기간입니다. 주님이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기도가 바로 그런 기도입니다. 이 코로나19라는 고통의 쓴 잔이 하루라도 빨리 저희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는 게 우리의 한결 같은 바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마라의 쓴 물이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이 만나는 고통의 쓴 잔은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본문은 우선 그것을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합니다. 본문 25절 하반절입니다. “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여호와가 마라에서 쓴 물로 그들을 시험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너희가 통쾌한 승리를 맛볼 때뿐만 아니라 쓴 물을 마실 때도 여전히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르며 사는가 아닌가를 시험해보기 위해 너희를 고통의 자리로 이끌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극심한 기갈과 인생의 쓴 잔을 통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평안할 때는 모릅니다. 하지만 고배를 마실 때 그 사람의 모든 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일이 잘 풀리고, 돈을 잘 벌고, 싸움에서 승리할 때는 기쁘다고 방방 뜹니다. 그러나 사흘 길을 걸어갔으나 발견한 물이 지독한 쓴 물이면 당장 본색을 드러냅니다. 낯색이 변하면서 온갖 원성을 쏟아냅니다. 그때 모습이 그 사람의 진정한 민낯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24절입니다. “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백성이 모세를 원망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마라의 진정한 의미가 하나님의 시험에 있다면, 당시 이스라엘은 전혀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시험에서 낙제한 겁니다. 여러분, 광야 같은 세상을 살다 마라를 만날 때, 잘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추한 인간성을 드러내며 있는 대로 나의 불신앙을 폭로할 게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발휘하며 주님처럼 이 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라고 기도해야 믿음으로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번 코로나19라는 이 세계적인 대재앙을 통해 우리를 단단히 시험하고 계십니다. 주일임에도 교회 출석조차 못하는 이 초유의 혼란 가운데서도 우리가 중심을 잘 지키며 신앙적 위기에 잘 대처하는지를 예의주시하시며 냉정하게 평가하고 계십니다. 이 힘들고 어려운 때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며 사는지, 이웃을 돕고 사랑하고 봉사하고 기도하며 사는지를 꼼꼼히 평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시험은 무조건 잘 봐야 합니다. 그래야 진학도 진급도 자격증도 따고 의사도 판검사도 됩니다. 하나님의 시험도 마찬가집니다. 잘 봐야 그만큼 복됩니다. 특히 이 마라의 시험을 잘 통과해야 하나님의 인정도 받고 큰 은혜를 입습니다. 지금 이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이번에 시험을 잘 치르면 개인도 사회도 나라도 체질이 개선되어 도약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험에서 낙제하면 이전보다 사정이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부디 코로나19가 이 지구촌에 던진 하나님의 큰 시험임을 잊지 마시고, 이번 시험 성적에 따라 개인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고, 희비가 엇갈릴 것을 명심하고 끝까지 시험을 잘 치르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마라의 쓴 물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입니다. 26절 하반절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치료하는 여호와이심을 계시하는 사건이 마라의 쓴 물 사건입니다. 치료하는 여호와, 곧 여호와 라파이심을 드러내는 것이 마라의 쓴 물 사건입니다. 보십시오. 쓴 물 때문에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며 당장이라도 어떻게 할 기세입니다. 모세가 너무 기가막혀 억울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며 그것을 물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그렇게 했더니 그 쓰디 쓴 물이 단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26절 하반절입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사건을 통해 당신께서 치료하는 여호와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로, 맹물을 포도주로, 기갈을 해갈로, 괴로움을 기쁨으로 변화시키고 새롭게 고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병든 육체도, 우리의 황폐해진 정신과 영혼도, 우리의 비뚤어진 인격과 정서도, 우리의 열악한 삶의 조건과 환경도, 우리의 망가진 가정도, 한 사회도, 나라도 민족도 이 지구촌도 다 고치고 새롭게 하실 수 있는 여호와 라파라는 사실, 그 놀라운 사실을 계시하시려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쓴 물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처방으로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키셨습니까? 25절을 다시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한 나무입니다. 이 세상 모든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리키신 특정한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비방인 한 나무는 대체 어떤 나무였을까요? 베드로전서 2장 24절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란 주님이 달리신 나무인 골고다의 십자가입니다. 치료하시는 여호와의 영원한 처방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이 가리키신 십자가가 쓰디 쓴 물, 마시면 복통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비상 같은 물을 단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십자가가 고치고 새롭게 하는 한 나무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주님의 수난기사를 보면 주님 십자가 주위에 온통 마리아들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5절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마태복음 27장 55절 이하입니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이렇게 온통 마리아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리아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일까요? 대단히 우아하고 성스럽고 고상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뜻밖에도 마리아가 마라입니다. 마라의 파생어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의 어원이 마라입니다. 마리아의 뜻도 쓴 것입니다. 마라의 쓴 물처럼 쓴 것이 마리아입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그 즐비한 마리아들, 즉 마라 한복판에 주님의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이 얼마나 계시적입니까? 그야말로 옛날 모세가 마라의 쓴 물에 하나님이 가리키신 한 나무를 던진 형국입니다. 따라서 그 옛날 마라의 쓴 물에 던져진 한 나무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의 모형, 예시, 계시였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는 지금도 광야같은 이 세상에서 쓴 잔을 마시고 고통당하는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처방입니다. 하나님이 특정하신 유일한 한 나무입니다. 지금도 여호와 라파는 반드시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인 십자가를 통해 성취됩니다. 이번에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의 상처와 아픔, 큰 위기와 고통도 오직 하나님이 가리키신 한 나무인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치유되고 수습되리라 믿습니다. 부디 이 사실을 깊이 깨달읍시다. 그래서 지금 코로나19로 고통당하는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사회와 우리 나라외 이 지구촌 한복판에 꼭 하나님의 한 나무인 십자가를 던지셔서 모두가 온전케 되고 새롭게 되며 단물로 변화되고 건강하게 치유되고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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