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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주님이 우시다
설교본문 눅 19:41-4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3-08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308m.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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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코로나 19>로 인해 금주도 이렇게 주일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립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사 이 예배가 주님께 영광이 되고 저희에게는 위로와 축복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나라가 여전히 신음하며 고통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코로나 19> 확진자, 사망자가 늘고 있고, 가까운 제생병원 마저도  확진자 발생으로 진료를 중단했다는 소식입니다. 하루속히 이 땅을 <코로나 19>로부터 구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피난처요 요새>라고 고백하는 자는 <새 사냥꾼의 올무와 심한 전염병으로부터 건져주신다>(시 90:3)고 하셨사오니 저희의 기도를 들으사 이 몹쓸 재앙으로부터 저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낮의 해도, 밤의 달도 저희를 상하지 못하게 하시고 저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히 지키신다고 하셨사오니 하루라도 빨리 이 재앙이 물러가 저희 모두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오늘도 확진자들을 찾아가사 안수해 주시고, 자가 격리자들을 위로해 주시며, 의료진들, 방역당국, 호송 담당자들, 많은 자원 봉사자들을 격려하사 그들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번 기회에 저희들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게 하시옵소서. 교만과 탐욕과 게으름과 이기적인 삶을 돌아보게 하시고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지 못한 허물도 자복하고 기도에 소홀하고 좀 더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한 생활도 회개하게 하사 다 사함을 얻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저희의 병든 마음과 영혼을 치유해 주시옵소서.

저희의 병든 사회와 병든 땅을 고쳐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고통스런 이 <코로나 19> 국면이 마감되어 모두가 감사하고 근신하며 더욱 열심히 살아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00308m

눅 19:41-44

주님이 우시다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성경에는 주님이 웃으셨다거나 남을 웃기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셨다는 기록은 여러 번 나옵니다. 우선 친구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우셨습니다. 그때 주님이 피땀 흘려 기도하셨다고 했지 언제 울었다고 했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5장 7절을 보면, 당시 주님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도 주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길에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셨습니다. 본문 41절을 보면, 주님이 가까이 오서 성을 보시며 우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신 것은 우정의 눈물, 연민의 눈물이었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눈물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흘리신 대속의 눈물이고,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신 것은 조국의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는 애국애족의 눈물입니다. 사순절 둘째주일 오늘은 주님의 감람산 눈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의 울음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주님의 눈물은 지도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예루살렘의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분노의 눈물입니다. 본문을 마태복음 23장에도 나오는데, 주님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37절)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인들의 타락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사회 지도층의 부정 부패가 극에 달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로마에 붙어 나라를 팔아 먹었고, 종교 지도자들은 바른 말하는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면서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에만 미쳐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데, 지도자들은 사두개파니 바리새파니 헤롯당이니 하며 날마다 서로 싸우고 고의적으로 지역 감정을 부추겨 북부인 갈릴리 지방과 중부지방인 사마리아 지방, 남부 유다지방 사람들이 서로 왕래도 못하고 서로 철천지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헤롯에 대해서는 여우라고 하셨고, 종교지도자들을 향해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우리나라를 바라보신다면, 이 분당 쯤에서, 아니면 남한산성이나 청계산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신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웃으실까요? 우실까요? 우리나라 정치인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주님이 칭찬하실까요? 책망하실까요? 저는 주님이 대한민국아 하시면서 많이 우실 것 같고, 화 있을진저 너희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하며 크게 분노하실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나 정치인에 대한 냉소주의가 심합니다만, 우리나라는 특히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가운데 벌거숭이 임금님이란 동화가 있습니다. 임금은 임금인데 벌거숭이입니다. 망신살 뻐친 임금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감옥에 있습니다. 현지 대통령도 탄핵하자며 150만 이상이 청원했습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장관이나 국회의원도 다 벌거숭이입니다. 그 덕분에 국민들도 완전히 거지 왕자들입니다. 거지 왕자라는 동화 아시지요? 


주님이 우리나라를 바라보시면 딱 그렇게 벌거숭이 임금과 거지왕자의 나라로 보시며 크게 아쉬워하시고 많이 안타까워하실 것 같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부패한 민족이로다. 너희가 어찌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사 1:5) 지금도 이 나라를 바라보시며, 저 서울을 바라보시며 어디에선가 울고 계실 주님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고난을 기리는 이 사순절에 우리도 다 깊이 회개하며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이 변해야 나라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다음은 민족의 현실 때문에 주님은 우셨습니다. 본문 42절입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주님 시대를 기점으로 지난 10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한시도 평화가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것처럼 이스라엘도 주전 931년에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단된 남북왕조가 다시 바벨론과 앗수르에 각각 다 망하는데, 그런 후 사실상 단 한 번도 독립된 주권국가를 이뤄보지 못한 채 바사와 헬라, 로마의 식민지를 거쳐 주님 시대까지 이르렀는데, 그 기간이 무려 1000년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본문 43절 이하를 보십시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이게 바로 주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초토화 될 것에 대한 주님의 생생한 예언인데, 예루살렘이 포위를 당하고 어린 자식들이 땅에 패대기쳐지고, 결국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망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참혹한 비극을 주님이 지금 미리 내다보시며 이렇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며 우신 것입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그때 전 세계로 흩어져서 무려 2000년 동안이나 나라 없이 유랑하며 어디서나 천덕꾸러기로 살다가 우리나라보다 3년 늦은 1948년에 비로소 그들의 옛 땅에 기적같이 나라를 재건합니다. 주님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우신 지 꼭 1900년 만에 마침내 주권국가를 회복하고 나라를 재건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로 그 운명이 비슷합니다. 우리나라는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었는데, 이스라엘은 북위 32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36년간 일제 치하에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70년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에 해방이 되었는데, 이스라엘은 1948년에 나라를 재건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형편이 비슷합니다. 우리는 북한과 대치하며 늘 안보의 위협을 느끼며 사는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대치 속에서 늘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 삽니다. 


그리스도교는 국경이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국경이 있습니다. 나라가 있고 조국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역사의 방관자들이 아닙니다. 현실도피자들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며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이 나라의 현실을 위해 민족의 운명을 위해 절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윈스턴 처칠의 전기를 보면, 세계 2차 대전 중 한 번은 국회에서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고 있는데, 처칠 수상이 맨 앞자리에 앉아서 계속 눈을 감고 자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앞에서 회의를 주재하던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탕탕 치면서,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지금 나라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인데 수상이라는 사람이 계속 졸기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처칠이 화들짝 놀라 눈을 뜨더니 ‘졸다니요.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 합니까?’ 처칠이 정말 그때 기도했는지, 졸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우리야말로 깨어 제대로 기도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온 것 같습니다. 


스코틀랜드는 메리 여왕이 통치할 때가 가장 어두운 암흑기였습니다. 정치가 표류하고, 종교가 부패하고, 경기가 바닥을 헤매고, 도덕이 완전히 붕괴되어 나라가 총체적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존 녹스라는 개혁가였습니다. ‘그는 주님, 스코틀랜드를 제게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원래 참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개혁운동을 하면서도 처음에는 메리 여왕이 무서워 프랑스로, 스위스로 도망치기까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랜 기도를 통해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단한 기도의 사람, 위대한 개혁가로 거듭났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메리 여왕이 존 녹스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메리 여왕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영국의 100만 대군보다 존 녹스의 기도가 더 무섭다.’ 그렇습니다. 존 녹스의 기도는 마침내 나라를 살리고 스코틀랜드의 사회와 교회를 개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존 녹스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개혁가가 누워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많이 어렵습니다. 안 그래도 여러 가지로 힘든데 <코로나 19> 사태로 나라 사정이 더 말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며 우신 주님처럼 우리도 나라를 위해 눈물로 간구합시다. 그러면 주님이 역사하사 이 모든 위기와 재앙이 물러가고 벌거숭이 임금님과 거지 왕자가 아니라 이 땅 이 나라도 품위 있고 자랑스런 임금님과 행복한 왕자가 사는 아름다운 나라, 건강한 나라로 새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부디 주님의 눈물을 생각하시며 이 나라와 우리 사회와 지금 겪고 있는 위기 극복을 위해 더욱 기도하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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