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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내 몸에 지닌 예수의 흔적
설교본문 갈 6:17-18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3-01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301m.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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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주님의 날인 이 아침 저희들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고 이렇게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많이 당황스럽사오나 이 자리에도 성령이 함께 하심을 믿사오니 저희의 이 조촐한 주일예배, 가정예배가 주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저희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신 주님, 지금 온 세상을 위협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로부터 저희와 우리 사회를 지켜주시옵소서. 날마다 확진자들이 늘어가고, 사람들의 공포심도 더욱 커져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 사태를 수습하시고 종료하실 수 있사오니 부디 이 나라를 구해 주시옵소서. 확진자들을 안수하사 하루 속히 호전되고 온전하게 회복되게 하시고, 방역당국, 의료진들, 호송 담당자들, 자원봉사자들의 노고와 희생도 기억하사 그들의 안전과 건강도 책임져 주시옵소서. 


주님, 이번 기회에 저희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깊이 회개하게 하시옵소서. 

재 위에 앉아 회개했던 사순절 전통의 근신과 기도생활을 본받아 그동안 탐욕과 이기적으로 살며 자연과 환경을 훼손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며 살지 못한 모든  허물을 자복하는 기회로 삼게 해주시옵소서. 또한 저희가 얼마나 작고 연약한 존재들인가도 새삼 깨닫게 하사 늘 겸허하게 살게 해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로 악성 이단집단인 신천지의 실체와 그 전모도 드러났사오니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각심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이 초유의 사태가 하루 빨리 종식되어 저희가 다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다윗은 다른 곳에서 보내는 천 날보다 주의 집에서 보내는 하루가 더 복되고 아름답다고 했는데 저희도 이번 기회에 교회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 된 일인지를 깊이 체험하며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갈 6:17-18

내 몸에 지닌 예수의 흔적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오늘은 삼일절 101주년 기념주일이자, 올해 사순절 첫째주일입니다. 이 뜻 깊은 주일을 우리가 교회에서 지키지 못하고 가정예배로 대체하게 되어 당황스럽고 안타깝습니다. 금주 뿐 아니라 내주에도 가정예배로 모입니다.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아 애로가 많을텐데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가 하루 속히 소멸되어 우리가 다 교회로 복귀해서 정상적으로 주일을 지키며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본문 17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은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의 흔적은 원어로는 스티그마입니다. 스티커가 이 그리스어에서 온 말입니다. 스티그마는 불에 달군 쇠인장으로 말이나 짐승의 엉덩이에 찍었던 화인을 가리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짐승들 뿐만 아니라 노예나 전쟁포로, 신전의 물건을 훔친 파렴치범의 이마나 어깨에 화인을 찍었는데 그것을 스티그마라고 했습니다. 요즘도 불법주차하면 스티커를 붙입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17세기 미국에서는 간통죄를 범하면 평생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살았습니다. 나다나엘 호손의 <주홍글씨>가 바로 그런 내용의 소설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상습 성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웁니다. 이것은 현대판 스티그마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자기 몸에 지니고 있다고 한 예수의 스티그마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바울이 정말 문신처럼 자기 몸 어디엔가 예수라고 새긴 화인을 찍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중세 수도사들 가운데는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쇠인장으로 왼쪽 가슴에 예수라고 화인을 찍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로서는 바울이 자기 몸에 있다고 고백한 스티그마가 실제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만큼은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우선 바울은 자기 자신이 확실한 주님의 소유임을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스티그마란 곧 소유를 뜻하는 낙인이요 화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이나 희랍인들이 짐승들에게 화인을 찍은 것은 소유권을 분명히 하려는 조치였습니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에 낙인을 합니다. 이 작품이 내 작품이라는 인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스티그마를 보고 추사의 글씨, 이중섭의 그림, 박수근의 그림, 천경자의 그림인지를 압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짐승의 표 666이란 숫자가 나옵니다. 마귀가 자기 백성의 이마에 마귀의 고유한 숫자인 666이란 스티그마를 찍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마에 666이란 스티커가 붙은 사람은 모두 마귀에 속한 그의 백성입니다. 왜 666일까요? 사탄, 마귀, 적그리스도여서 그냥 6이 아니라 666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마에 777이란 스티그마를 받습니다. 왜 777일까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셔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사람은 그 이마에 777아니면 666이란 스티그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777 스티그마를 가진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고, 666이란 스티그마를 가진 사람은 다 사탄의 소유입니다. 조직원들이 그 몸에 어떤 문신을 가졌느냐가 그의 소속을 뜻합니다. 일본의 야쿠자나 한국의 범서방파냐를 스티그마가 결정합니다. 스티그마는 그가 어디에 속하느냐의 싸인입니다. 스티그마가 그의 소속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말은 예수님의 777이란 싸인을 가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울뿐 아니라 우리의 이마에도 777이란 스티그마가 찍혀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 눈에는 안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주님의 보혈로 찍은 스티그마가 선명히 보입니다. 인천공항에 설치된 X선 카메라도 누가 몸 속에 무엇을 감추고 들어오는지 훤히 들여다봅니다. 주님도 우리의 스티그마를 정확히 보시고 당신의 소유로 친히 관리하십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우리 몸에 주님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하며 주님에 대한 보다 깊은 소속감과 뜨거운 연대감을 느끼며 사는 성도가 됩니다. 


다음으로 바울이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주님을 위해 당한 고난의 흔적을 가졌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웠다는 진술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예수의 흔적이라고 말한 것은 자기 몸 어디엔가 주님의 십자가의 흔적, 고난의 흔적이 있다는 고백입니다. 성 프랜시스의 전기를 보면, 한번은 그가 높은 산에 올라가 여러 날 고행하며 기도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온몸에 엄청난 전율과 고통이 오면서 양손과 양발에 성흔이 생겼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못자국의 성흔이 자기 몸에 그대로 나타났다는 신비체험의 고백입니다. 프랜시스는 이것을 자기 온몸으로 체험한 후 주님의 십자가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 이하를 보면, 주님의 최후 심판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저 같은 직업적 종교인입니다. 그들의 이력이나 스펙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유명한 목사 노릇을 했고, 기도원 원장을 했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며 숱한 기적과 권능을 행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 과장이 아니라 사실일 것입니다. 어느 면전이라고 최후심판 현장에서 감히 거짓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주님은 놀랍게도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큰 교회에서 목사 노릇을 하고, 수천수만이 모이는 기도원에서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를 고쳤는데 주님은 불법이라고 하십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런 행위를 통해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 영광만 누렸지, 누구도 자신을 부인하며 제 십자가를 충실히 지다가 온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몸 어디에도 주님의 고난의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게 다 불법이고 사기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몸에 십자가의 흔적, 고난의 스티그마가 없으면 다 불법이고, 가짜고, 사이비입니다. 주님의 흔적이란 곧 고난의 흔적, 십자가의 흔적을 말하는데, 그들은 평생 예수를 팔아 호의호식하고, 복음을 팔아 영광만 누렸지 그 어떤 고난과 희생, 손해도 본 게 없기 때문에 그들의 몸에는 어디에도 에수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와는 상관이 없으니, 내게 속하지 않았으니 다 내게서 떠나라’고 선고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바울은 참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나오는 그의 고백을 보면, 수도 없이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아 기절하기도 하고, 항해를 하다 몇 차례 파선하기도 하고, 강도나 동족, 이방인에게 온갖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실제 그의 몸은 어디 한 군데도 성치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의 십자가의 흔적입니다. 여러분, 몸과 마음에 주님을 위해 당한 고난의 흔적이 있어야 진짜 주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큰일을 하고, 대단한 실적을 냈다 하더라도 고난의 흔적, 아픔의 흉터가 없으면 그 사람을 가짜일 공산이 큽니다. 괜히 마지막 심판 때 왜 나를 모른다고 하느냐고,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 왜 나를 떠나라고 하느냐며 주님께 항의하며 대들지 마시고, 바울처럼 늘 자신의 몸에 십자가의 흔적, 고난의 스티그마를 지니고 삽시다. 반면에 주님 때문에 마음에 모진 상처를 입었거나 주님 때문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영혼의 깊은 아픔을 지니고 사는 분 계시면, 그것이 주님의 스티그마임을 믿으시고, 억울해하지 마시고 오히려 감사하시며 깊은 트라우마를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라는 영화는 제가 은혜를 많이 받은 영화입니다. 계속 사람을 해치는 식인상어를 잡기 위해 해안경비대장, 상어잡이 전문가인 선장, 해양학자가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갑니다. 상어를 찾아다니며 몇날 며칠을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하루는 술판을 벌이다 자신의 상어잡이 무용담을 얘기하며 저마다 상어에게 물린 상처를 자랑하는데, 해안경비대장은 뭍에서 일해서 영광의 상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난감해하고 쩔쩔매는 장면이 제게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훗날 우리가 주님 앞에 갔을 때도 그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들 자기 몸을 뒤지며 주님의 고난의 스티그마를 찾느라 쩔쩔맬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 아무런 흠집도 아무런 상처도 없이 예수를 믿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절대 모든 고난을 요리조리 다 피해가며 믿는 게 복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녀야 합니다. 고난의 흔적, 십자가의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보면, 천신만고 끝에 그 긴 구원의 여정을 다 끝낸 기독도가 마지막에 독백합니다. ‘나는 이 모든 흉한 상처와 아픈 흔적들을 그대로 주님 앞까지 가져가리라.’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때는 우리 몸에 남아 있는 주님의 스티그마가 우리의 자랑스런 훈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억합시다. 우리 몸에 호랑이나 용, 하트 문신 같은 것은 없어도 상관 없지만, 반드시 주님의 스티그마, 십자가희 흔적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끄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라는 최후의 선고를 듣지 않습니다. 


부디 이 은혜로운 절기인 사순절, 모두가 주님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며 바울처럼 늘 자신의 몸에 주님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