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42
Extra Form
설교제목 산상에서
설교본문 눅 9:28-3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2-23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223m.mp3

20200223m

9:28-36

산상에서

 

(9:28-36, 개정)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은 산상변모주일입니다. 주님이 산상에서 용모가 변화된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요즘은 교회가 이런 절기를 잘 지키지 않습니다. 아마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해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산상변모주일은 초기 기독교 시절부터 지켰습니다. 4세기 때 이미 교부들이 이 날을 기념했다는 기록이 있고, 9세기 때도 이 절기에 관한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 날은 보통 교회당 전체를 흰색으로 데코레이션합니다. 주님이 산상에서 광채를 발한 사건을 그렇게 연출한 겁니다.

 

본문 28절 상반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주님이 산상에서 용모가 변한 사건이 이 말씀을 하신 후 8일 쯤 후에 일어났다는 겁니다. 이 말씀은 무엇일까요? 27절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26절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이 모든 것은 주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8일쯤 지나 산상변모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특히 27절은 말 많고 탈 많았던 구절입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던 현장에서 바로 이 27절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자기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이 오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그들의 지도를 받았던 초대교회는 매우 종말론적이었습니다. 27절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이며 토지며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쳤습니다. 교회는 부랴부랴 집사들을 세워 그 돈을 관리하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관리했습니다. 그때는 복음을 글로 남겨야 할 필요조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했는데도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않자 서둘러 성경을 편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쓰고, 편집해서 성경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일 먼저 나온 성경이 마가복음인데, 이것조차도 주님이 승천하신 후 40년이 지나서 나왔습니다. 누가나 마태는 주님 승천 후 50년이 지나서 나왔습니다. 요한복음은 그 다음에 나왔습니다. 바울서신이 복음서보다 나중에 나왔을 것 같지만, 바울서신이 훨씬 빨리 기록되었습니다. 이게 다 생전에 주님의 재림을 볼 사람도 있다고 하신 27절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하신 말씀이 과연 임박한 재림에 관한 말씀이었을까요? 28절 상반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그러니까 27절 말씀 후 8일 정도가 지난 건데, 성경은 27절과 28절 말씀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오늘 본문이 바로 27절 말씀의 체험이고, 주님 재림 때의 모형입니다. 8일 전 주님이 27절에서 하신 말씀이 제자들 생전에 다시 오겠다는 말씀이라기보다는 28절 이하에 나오는 변화산 체험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게 옳습니다. 당시 주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에서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영광, 구름 같은 단어는 주님의 재림을 묘사하는 단어들입니다. 변화산에서 주님의 모습이 재림하실 때의 모습으로 변모된 겁니다. 재림할 때의 모습을 주님이 앞당겨 제자들 앞에서 연출하신 겁니다.

 

거기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대표합니다. 구약시대의 대표 두 인물이 주님과 만나 산상회담을 한 겁니다. 이것은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장차 주님이 재림하시면, 죽은 자는 신비한 부활체로 다시 살아나 주님을 영접하고, 산 사람은 산 채로 신비한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그렇게 재림하신 주님을 영접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세는 비스가산에서 죽었으니까 주님 재림 시 다시 살아나 영접할 모든 죽은 자들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죽지 않고 불수레를 타고 하늘에 갔으니까 살아서 주님 재림을 맞을 자들을 대표합니다. 변화산상의 모세와 엘리야는 훗날 주님의 재림 때에 죽은 자와 산 자를 상징하고 대표합니다. 따라서 당시 변화산 체험이야말로 장차 있을 주님의 재림 사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주님이 제자들 앞에서 미리 소환하고, 연출하신 종말론적 계시사건입니다. 훗날 주님이 재림하실 때도 광채가 나는 용모로 영광 중에 오신다고 했는데, 변화산에서 그런 모습을 앞당겨 보이신 것입니다. 당시 그 광경이 얼마나 황홀했으면 베드로가 주님께 여기가 좋으니까 여기에 초막을 짓고 살자고 했습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서 본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핵심 트리오가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입니다. 주님이 왜 그들을 가까이하셨을까요? 편애는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이 상대적으로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소화할 수 없는 사건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537절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가시는 장면입니다. 주님이 그때 이들 트리오 외에는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감당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주님이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마가복음 24장을 보면, 이들 트리오를 기도하는 자리에 데리고 가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들 트리오만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26절과 27절에서 말씀하신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계시하시며 몇 가지 중요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우선 기도훈련입니다. 28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주님이 건강을 위해 등산하러 산에 가신 게 아니라 기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29절도 보면, 기도할 때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에게 기도하면 이렇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이 변화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체험케 하려고 그들을 산상으로 이끄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이 기도하시기 위해 산으로 가셨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사실 일상에서는 기도하고 싶어도 잘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 주님이 그들을 산상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과의 교감이 보다 깊이 이뤄질 수 있음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가끔은 산에 올라야 합니다. 일상을 벗어나 집중해서 기도하며 주님과 보다 깊은 교감을 체험하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변화됩니다. 우리 모습에서, 우리 인격에서 빛이 납니다. 소진된 우리 영성이 회복되고, 그만큼 우리가 세상에서 씩씩하고 용감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은 신비체험을 위해서입니다. 30절 이하입니다.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제자들은 산상에서 주님의 변화되신 용모와 광채뿐만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주님과 대화하고 산상 회담을 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실로 놀라운 영적 체험이고, 일생일대의 체험이었습니다. 전설 같은 모세와 엘리야가 자기들 눈앞에서 예수님과 회담을 하고 있으니 그들이 얼마나 놀라웠겠습니까. 신앙 세계에는 이러한 초자연적 체험이 존재합니다. 우리도 가끔은 그런 신비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 신앙이 보다 깊어지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도 이것을 인정하셨기에 제자들로 하여금 신비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이 제자들이 영적 황홀경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신비체험이 믿는 자에게 필요함을 인정하고 산상에서 신비체험을 하게 하셨지만, 그 체험 속에 믿는 자가 안주하는 것은 원치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거기서 살자는 베드로의 제안을 물리치고 산 아래로, 일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신비체험을 하면 거기에 눌러 앉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9절에서 이 장면을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주님이 판단하실 때, 적어도 이 세 사람만큼은 신비체험을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신비체험을 하게 하셨지만, 다른 사람은 감당 못한다고 생각해서 함구령을 내리신 겁니다. 신비체험을 한 후 점쟁이가 되지 말라는 게 주님의 당부요 조치입니다. 여러분, 올해는 우리가 변화산에 반드시 올라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시험에 들지 않으면서 신앙생활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의 영성도 깊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훈련을 위해서입니다. 35절입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마태복음 175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이것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구름 속에서 들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산 아래 복잡한 일상 속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산 위에서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산 위는 그야말로 성소였습니다. 사실 세상은 너무 소란하고 어지럽습니다. 우리가 세상 한복판에서 살 때도 주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은 세미하기에 잡스럽고 요란한 세상 소리에 파묻혀 우리가 잘 듣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처럼 가끔 산에 올라야 합니다. 변화산에 올라가면 우리도 얼마든지 생생한 하나님의 육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은혜를 갈급해 하고, 음성을 사모하면 우리도 그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우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3절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올해 우리 교단과 우리 교회 표어가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입니다. 부디 변화산에서 들이는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을 우리가 듣는 체험을 합시다. 골방으로 가든지, 산에 오르든지 합시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머리를 숙입시다. 그럴 때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올해도 생생한 하나님의 육성을 듣는 뜨거운 체험을 합시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빛나고 믿음이 깊어지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