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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말씀으로 새로워지려면
설교본문 느 8:5-1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2-09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209m.mp3

20200209m

느 8:5-12

말씀으로 새로워지려면


(느 8:5-12, 개정)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올해 우리 교회와 교단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의 주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가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말씀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결단을 해야 합니까? 


본문은 주전 444년, 유대 월력으로 7월 1일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2절입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민간력으로는 1월 1일입니다. 그러니까 정월 초하룻날입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 남동쪽 수문 앞 광장에 백성을 소집했습니다. 3절을 보면 새벽부터 정오까지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며 해석해 주었다고 합니다. 모세 5경을 본문으로 긴 설교를 했다는 뜻입니다. 5절을 보면 당시 백성들이 자리에 일어나서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요즘 우리는 길어야 30분 정도 설교하는데도 편한 자세로 말씀을 듣는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야외 광장에서 6시간 이상 서서 에스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자세부터 오늘 우리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하자 그들이 다 손을 들고 아멘하며 말씀을 받았습니다. 6절입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당시 그들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나 귀로 듣지 않고 가슴으로 받았습니다. 아멘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한 공감과 순종을 다짐하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선포되는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며, 그 말씀에 대해 순종을 결단하고, 그 말씀이 제게서 성취되게 해주십사는 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가 진심으로 아멘하며 용납하는 말씀만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설교를 듣는데, 어째서 어떤 이에게는 은혜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아무 감동이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전적으로 아멘에 달렸습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은 선포되는 말씀이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멘하며 받습니다. 하나님의 생생한 육성으로 믿고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감동과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 말씀이 그에게 무한한 복이 됩니다. 사실상 이런 자세로 말씀을 받는 이는 드뭅니다. 대개는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기보다는 그저 주일이니까 목회자가 설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성도에게 선포하는 일반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관적으로 자기에게 대입하지 않습니다. 말씀 좋다고 공감하고 긍정하기는 하지만 여기까지만 있습니다. 그 이상의 깊은 은혜나 심금을 울리며 나로 하여금 결단하고 변화하게 하는 말씀으로 받지는 않습니다. 아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진심어린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하면 그 선포되는 말씀이 내 영혼에 선한 영향력을 줍니다. 아멘이란 강요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 말씀이야말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메시지라는 깊은 확신이 있을 때만 내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멘입니다. 그러한 깊은 긍정이 있으면 선포되는 말씀이 나에게 새로운 것입니다. 


지난 송구영신 때 올해의 말씀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떠셨습니까? 올해의 말씀도 하나님이 나를 콕 찍어 주셨음을 확신하고 이것 붙잡고 올 한 해를 지내면 이 말씀이 엄청나게 복이 됩니다. 목회자가 나눠주니까 어쩌다가 이 말씀이 실수로 내게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은 한낱 쓰레기일 뿐입니다. 말씀 카드 한 장 나눠주는 게 미신이라고 생각하면 미신일 뿐입니다. 이것 붙잡고 한 해 동안 기도하는 겁니다. 이처럼 진심어린 아멘이 중요합니다. 그 옛날 에스라 선지자의 설교를 들으며 아멘 아멘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늘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 진심으로 화답해야 그 말씀이 새로워집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를 새롭게 합니다. 


다음은 백성들이 다 울었다고 합니다. 9절입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그들이 왜 울었을까요? 그들이 말씀을 듣는데 자신의 죄가 생각나고, 양심이 찔리고, 깊은 반성의 마음이 발동해서 모두가 참회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그들은 자복하고 회개한 것입니다. 말씀의 빛 앞에서 드러난 자기의 치부가 너무 부끄러워서 가슴을 치며 운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은 우리 영혼의 거울입니다. 자기 얼굴에 검정이 묻어도 거울을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집니다. 거울을 봐야 합니다.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에 비추어야 비로소 우리의 심령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죄 짓지 않는 사람은 없기에, 말씀에 비추면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모순과 죄를 보게 되고, 울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집니다. 베드로는 남 달리 죄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그를 찾아와 주님의 빛 앞에 섰을 때, 그는 자신이 죄인이니 자신을 떠나달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주님이 그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마지막에도 말씀 앞에서 웁니다. 마태복음 26장 74절 이하입니다.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말씀은 이렇게 좌우의 날 선 검보다 더 예리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심령 골수를 쪼개어 우리의 죄를 다 드러내기에 우리를 회개하고 자복하게 하여 가슴을 치며 울게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악을 쓰던 예루살렘 사람들이 오순절 후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회개합니다(행 2장). 에스라의 설교를 듣고 백성들이 얼마나 가슴을 치며 울었던지, 느헤미야 등이 자제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말씀 앞에서 반드시 이러한 회개와 통회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할 때 그것을 피하지 맙시다. 울며 회개합시다. 이것은 성령이 주시는 감동이기에 성령이 우리를 울게 할 때는 울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투명해집니다. 


백성들은 다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12절입니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에스라가 전해 준 말씀을 깨닫고 그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세상에서 말씀으로 인한 기쁨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요? 말씀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희열보다 더 한 게 있을까요? 여러분은 말씀으로 인한 기쁨과 보람, 행복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부홣하신 주님을 체험합니다. 그는 유대교 전사에서 기독교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런 후 그는 소아시아 지방을 순회하며 수많은 교회를 개척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늘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로마서 7장입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데 도리어 악을 행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육신으로는 죄를 섬기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곤고한 사람인데 누가 이 사망에서 자신을 구해낼까 라는 것입니다. 사도가 된 지 십 수 년이 지났음에도 말도 안 되는 모순과 이율배반 때문에 바울은 늘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로마서 8장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생명의 법이 죄의 법, 사망의 법에서 그를 해방했다’는 사실을 바울은 깨닫습니다. 더는 정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생명의 법, 성령의 법에 저촉만 받기 때문입니다. 비록 옛 삶의 습성 때문에 수십 년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지만, 우리는 죄의 법,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도 피뢰침 아래에 있으면 벼락을 맞지 않듯이, 십자가 아래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죄가 많아도 저주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7장 마지막 절까지 괴로워했는데, 8장에 와서 이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너무 기뻐서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자기 입의 꿀송이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올해는 말씀을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합시다. 그래야 복이 있습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내게 깨달음이 되지 않고 허공에 흩어지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스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던 것은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2절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우리도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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