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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설교본문 시 91:1-11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2-02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202m.mp3

20200202m

시 91:1-11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시 91:1-11, 개정)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편 91편은 작자 미상입니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성경을 70인역이라고 합니다. 70인역에는 91편이 다윗의 찬양시로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시편 91편을 다윗의 시로 믿어왔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는 시편 91편이 누구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내용이 중요합니다. 


2절입니다. “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피난처나 요새는 전쟁 용어입니다. 어느 시대나 전쟁처럼 참혹하고 처절하고 긴박하고 비극적인 사건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의 작자는 실제 전쟁 중이거나 전쟁과도 같은 절박한 처지에 몰려서 이런 내용의 호소와 고백을 하나님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누구나 피난길에 오릅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지금도 피난처를 찾는 사람이 340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지금도 바다 위를 떠돌거나 난민수용소에서 어렵게 연명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중국 우한의 우리 교민들도 극적으로 우리나라로 피난 온 것입니다. 이처럼 전쟁 상황에서 피난처는 생명의 요건입니다. 


본문은 여호와가 우리의 완벽한 도피처라고 합니다. 사람이 급조한 피난처는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언제나 우리의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해 주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여호와가 요새라고도 합니다. 피난처가 민간인의 보루라면, 요새는 군인들의 최후 보루입니다. 요새가 없으면 작전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성 전체를 요새화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의 여리고성도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였습니다. 남한산성도 1300년 동안 함락된 적이 없는 요새였습니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백기를 든 것은 성이 뚫려서가 아니라 성 안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여호와가 우리의 요새라고 합니다. 다윗은 시편 18편에서도 같은 내용을 합니다. 46편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읍시다. 주님을 우리의 든든한 요새로 고백합시다. 그래야만 우리 인생이 안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주님을 우리의 요새로 고백하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보장을 받습니까?

우선 사냥꾼의 올무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 3절입니다.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올무는 덫입니다. 특히 올가미로 만든 덫을 올무라고 합니다. 사냥꾼이 짐승이 다니는 산길에 가늘고 강한 와이어로 올가미를 설치합니다. 거기에 산토끼며 노루, 멧돼지 같은 짐승이 잡힙니다. 거기에 한 번 걸리면 어떤 짐승도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점점 더 올가미가 조여들어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더구나 본문의 올무는 새 사냥꾼의 올무라고 합니다. 새는 예민하고 빠르기에 완벽한 덫이 아니고서는 잡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올무 중에서 가장 치밀한 올무가 새 사냥꾼의 올무입니다. 그런데 새 사냥꾼의 올무가 도처에 널렸습니다. 요즘은 누구도 새 사냥꾼의 표적이 되면 안 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보이스 피싱에 당할까 싶지만, 작년 한 해 우리나라의 보이스 피싱 피해액이 3440억입니다. 경기 남부지방만 1200억입니다. 진심으로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 안전하게 자신을 지키고 싶습니까? 주님이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며 ‘내가 어린 양을 이리에게로 내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정말 그런 곳입니다. 이리가 득실득실한 곳입니다. 부디 주님을 피난처로 삼읍시다. 주님을 우리의 요새로 고백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그가 우리를 새 사냥꾼의 올무로부터 확실하게 지키고 안전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6절 상반절도 보십시오.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 사스나 메르스, 신종플루 등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 작은 바이러스 앞에서 전 세계인이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히브리어로는 <데베르>인데 직역하면 치명적 질병입니다. 암이나 성인병도 마찬가집니다. 이것들은 무서운 복병들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우리의 피난처와 요새로 삼으면 능히 피할 수 있고, 건짐을 받습니다. 본문의 피난처는 도피성을 의미합니다. 그곳은 살인을 저질러도 그곳으로 피하면 함부로 해칠 수 없는 절대 성역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도피성으로 삼아 그분의 날개 아래로 피하면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추격해 해치지 못합니다. 


10절 이하입니다.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각종 재앙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으면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재앙은 자연재해, 천재지변뿐만 아니라 끔찍한 인재도 다 포함됩니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도 이념적 재앙입니다. 경제적 재앙도 있습니다. IMF 사태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이런 것들로부터 막아주시겠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8절입니다.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지금 나를 잡으려고 웅크리고 있는 복병들을 하나님이 치사 그들을 응징하심을 똑똑히 보게 한다는 약속입니다. 도피성은 의인이 숨는 곳이 아니라 죄인의 피난처입니다. 허물과 죄가 많아도 하나님의 품을 도피성으로 삼읍시다. 주님을 요새로 삼고 그 품에 안깁시다. 올해도 천 명이 내 오른쪽에서 쓰러지고, 만 명이 내 왼쪽에서 엎드러져도 우리는 하나님이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이제 시편 91편의 결론인 16절 말씀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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